지나간 시간들에 대한 그리움
오전 10시 누가 오라는 것도 아니고 일찍 수업이 있는 것도 아닌데 내 출근 시간은 늘 오전 10시다
오후에 수업이 시작하는데 그리 일찍 나가서 뭐 하냐고 묻는 사람들도 있지만 일이 있던 없든 간에 30여 년간 특별한 일이 없으면 늘 그 시간을 지켜온 거 같다.
와서 혼자 텅 빈 무용실을 보고 있노라면 새삼 뜨겁게 춤추던 젊은 시절이 생각나기도 하고 이곳에 와서 무용을 배우고 꿈꿨던 수많은 아이들이 파노라마처럼 내 눈앞에 그려진다.
지금은 벌써 40대가 넘었거나 되어가는 오래된 제자들 그리고 온기가 아직 남아 있는 갓 졸업한 새내기 제자들까지 생각하면 정말 많은 제자들이 내 곁을 스쳐 지나가고 또 그중에 몇 명은 내 곁에서 아이들을 가르치며 나와 함께 하고 있다.
그중 가장 생각나는 제자를 얘기하라면 게을러 터지거나 꾀부리는 아이들에게 모범적인 예를 얘기하려면 꼭 지금까지도 모범의 사례가 되고 회자되는 우리 주니가(가명) 있다.
똘망 똥망하고 맑은 눈을 가졌던 아이 긴 머리를 아래로 질끈 묶고 누구보다도 열심히 땀 흘리며 하던 아이였다. 무용의 가능성이 많이 보여서 부모님께 무용을 전공하기를 권했지만 2000년대만 해도 무용을 하면 특별한 계층에 있는 사람들이나 하는 거고 돈도 많이 든다는 생각으로 아예 손사래를 저었던 시절이다.
"무슨 우리 주니가 무용을 해요 그냥 취미로 하는 거지" 이렇게 치부하며 무용하고 싶다던 아이의 간절한 눈망울에도 불구하고 무용 그만 시키겠다고 손목을 끌고 가던 부모님이었다
그 후 주니를 잊어버린 만큼 세월이 많이 흘렀는데 어느 날 갑자기 주니 엄마라며 전화 한 통에 내 맘이 무너지고 말았다. 엄마와 같이 온 주니의 모습은 내가 예전에 알았던 그 맑고 예뻤던 아이가 아니고 머리는 사자 머리에 눈은 누가 날 건드려봐 하듯 살기로 가득 차 있었다.
맘이 아팠다 애가 왜 이지경이 되었냐고 주니 엄마께 화를 내며 소리쳤다 나도 주니도 주니엄마도 한참을 울었던 거 같다 더 이상 갈 데가 없다고 한 아이 목숨 살려주는 셈 치고 다시 무용하게끔 해달라고 애절하게 나를 쳐다보던 주니와 주니 엄마를 도저히 뿌리칠 수가 없어 힘들고 어려운 고난의 시간을 각오하며 다시 시작하자고 했다. 그 순간부터 주니가 달라지기 시작했다. 하고 싶었던 무용을 하게 되고 자신의 삶의 목표가 생기니 늦기는 했지만 주니가 자신과의 처절한 싸움을 너무도 잘해주었다.
10번이던 20번이던 계속 같은 동작을 반복해도 토를 하면서까지도 해내던 주니가 다시 무용시작한 지 2년 반 만에 인간승리를 하던 날 나랑 부둥켜안고 울었었다 아무도 주니가 무용을 해서 그 어려운 한양대 에리카 무용과에 합격하리라 기대하지 않았다 다만 최선을 다해보자고 고3 담임이 대학 원서를 쓸 때 네가 한양대 붙음 내손에 장지 진다고 애에게 비웃듯 얘기했다는 얘기에 분노하고 그래 어디 장지지게 해줄 테니 두고 보자고 이를 갈았었는데 한양대 합격소식에 내가 그 담임에게 장 지지라고 얘기하라고 주니에게 말했지만 이긴 자의 여유랄까" 그러라 줘 선생님" 하고 멋쩍게 웃던 주니가 어느새 두 아들의 엄마가 되었다.
무용이 발판이 되어서 필라 테스 자격증을 따고 누구보다도 유능한 강사가 되어 지금 활동하고 있다.
항상 주니를 생각하면 아이들이 갖고 있는 달란트들이 다 다르고 모두가 공부를 잘하고 좋아할 수 없는데 부모님들은 자기 아이가 공부를 잘하기 원하고 또 공부만 하면 다 해결되는 듯 착각하고 있다. 절대 그렇지 않은데
꼭 무용을 해야 하는 아이들이 있다 다른 것보다 무용을 하면 행복하고 공부는 안 해도 무용학원 오는 걸 좋아하고 심성이 활기차고 승부욕이 있는 아이들은 그 기질이 무용과 아주 잘 맞는다고 해야 할까 재능이 없어도 얼마든지 본인 의지에 따라 변화되고 발전될 수 있기에 아이들은 무한한 가능성이 있는 아이들이기에 함부로 판단해서는 안된다는 게 내 지론이다.
아직도 주니와 같은 아이들이 있다 여전히 아이들이 하고자 하는 것보다 부모님들의 강요나 선택으로 잘할 수 있는 대도 불구하고 무용을 오래 하지 못하고 그만두는 아이들이 세월이 갈수록 영어나 국어 수학에 떠밀려서 자신이 하고자 하는 걸 내려놓는 아이들이 과연 맞는 걸까? 예체능이 학과시간에 줄어들고 그 시간을 영어 수학으로 채우는 것이 인간이 세상을 살아가는데 정말 그리 필요한 것인지 자문해 본다.
얘들아! 결코 행복은 성적순이 아니란다. 자신이 진정 좋아하는 걸 하면서 사는 게 진정한 행복이라 말하고 싶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