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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마워숲 Aug 12. 2021

여름, 채소가 맛있는 계절

동물성 식품을 줄이다 #3




 애호박 두 개, 가지 두 개를 장바구니에 담는다. 그리고 유리병에 들어있는 시판 토마토소스도 담는다. 이렇게 3가지 품목을 한 번에 살 때는 이미 메뉴가 정해져 있다. 프랑스식  채소 요리 라따뚜이를 하기 위함이다. 평소라면 애호박 2개, 가지 2개를 세 식구가 한 끼에 다 먹지 못할 테지만 메뉴가 라따뚜이라면 얘기가 달라진다.



애호박이랑 가지를 동글 납작하게 모두 썬다. 두께는 개인 취향에 따라 달라지겠지만 3mm~5mm  정도 두께로 썬다. 썰어둔 가지와 애호박은 한쪽에 놔두고 오븐을 180도로 예열을 시작한다. 그리고 프라이팬 예열을 시작함과 동시에 냉장고에서 꺼내 놓은 양파의 껍질을 까고 반을 잘라 잘게 다진다. 올리브 오일을 한 바퀴 두르고 다진 양파와 냉동실에 있던 다진 마늘 한 큰 술을 넣어 볶는다. 볶아지면서 달큰해진 양파와 풍미를 더해줄 마늘향이 벌써부터 입맛을 당기게 한다. 라따뚜이를 만들 팬이 좀 작거나 가지보다 애호박이 많다면 양파와 마늘을 볶을 때 애호박도 잘게 썰어 함께 볶기도 한다. 양파와 마늘이 갈색빛을 내며 적당히 볶아지면  토마토소스를 넣고 같이 한소끔 끓여준다. 이제 오븐용기나 무쇠 팬 등 오븐에 들어가도 되는 용기에 만들어둔 토마토소스를 넣고 동글동글한 애호박/가지/애호박/가지 순으로 소스에 꽂듯이 빼곡하게 넣어준다.  원형의 용기라면 예쁜 꽃 모양이 될 것이고, 사각용기라면 경쾌한  줄무늬가 생긴다. (이 과정은 어린 자녀와 함께 해도 좋다) 꽃 모양 위로, 또는 줄무늬 위로 올리브 오일을 휙 둘러주고 예열된 오븐에 넣는다. 이제 20분만 기다리면 된다. 킁킁킁 몇 분 지나지 않았는데 벌써부터 맛있는 냄새가 난다. 아직 다 익지 않았을 게 뻔한데도 몇 번씩 오븐을 열어보게 되는 맛있는 냄새다.  고기가 없어도, 치즈를 뿌리지 않아도 충분히 아니, 너무 맛있고 예쁘기까지 한 라따뚜이. 바게트나 통밀빵을 곁들이거나 아이용으로는 글루텐프리 푸실리를 삶아서 라따뚜이 소스를 곁들여 내면 근사한 프랑스식 채소 요리가 완성된다.

 한 가지 팁을 보태자면 너무 배고플 때는 이 요리를 오븐에서 꺼내자마자 식탁으로 가져가면 안 된다. 식구들 입천장이 다 까질 수 있다.



사시사철 애호박을 살 수 있고, 가지도 살 수 있는 시대이지만 애호박, 가지는 여름이 제철인 채소다. 여름이 가장 맛있어지는 계절이다. 어디 애호박, 가지뿐인가. 포슬포슬 감자가 집에 있으면 세상 든든하다. 아침에 일어났는데 어린이 식구가 배가 고프다고 아우성인데 하필 해놓은 밥이 없다. 당장 쌀을 씻어서 밥통에 밥을 하기에는 시간도 마음의 여유도 없다. 그럴 땐 감자 두 알(크기가 작다면 세알)을 집어 든다. "엄마가 감자 팬케이크 해줄게 조금만 기다려줘" 감자 껍질을 깎고 가늘게 채 썬다. 프라이팬 예열을 시작한다. 볼에 채 썬 감자를 넣고 전분가루나 밀가루를 한 큰 술 넣는다. 소금을 조금 넣고(어른이 먹을 거라면 후추도) 양파가루를 한 작은 술 정도 넣으면 더 맛있어진다. 물은 넣지 않고 감자에 전분가루를 코팅하는 정도로만 섞어준다. 그동안 예열이 된 프라이팬에 오일을 두르고 채 썬 감자를 부침개처럼 노릇노릇 부쳐낸다. 팬케이크 사이즈 정도로 크지 않게 살짝 도톰하게 반죽을 올린다. 나중에는 숨이 죽고 감자가 서로서로 달라붙어서 납작해진다. 중간에 뚜껑을 덮으면 더 빨리 익는다. 전체적으로 노릇노릇하고, 바깥으로 갈수록 갈색빛이 나고 바삭바삭한 느낌이다. 뜨거우니까 조금 이따 먹으라고 하고 식탁에 올려둔다. 아이는 감자 팬케이크가 식을 때까지 기다리지 못하고 바삭한 부분 먼저 손으로 조금씩 뜯어 맛을 보고는 이내 후후 불어가며 감자 팬케이크 두장을 순식간에 먹어치운다. 운동을 하고 들어온 남편이 마지막 한 장을 먹으며 왜 이것밖에 안했냐며  더 만들어 달라고 한다. 국을 끓일 재료가 마땅히 없을 땐 감잣국을 끓인다. 들어가는 재료는 멸치, 다시마, 감자, 대파 소금 후추뿐이다. 어릴 때 엄마가 해주시던 감잣국은 멸치 육수를 내고 감자와 대파를 넣고 마지막에 계란을 풀어 넣는 건데 지금은 계란은 넣지 않고 끓인다. 아이가 계란 알레르기가 있기도 하고, 동물성 식품을 줄이기 위함도 있다. 계란을 넣지 않으면 오히려 깔끔하고 개운한 맛이다. 양파랑 감자가 넉넉히 있다면 냉장고 자투리 채소들을 이것저것 꺼내 카레를 끓인다.  브로콜리, 파프리카, 밤호박, 당근 등 그날그날 냉장고에 있는 채소를 활용한다. 채식 카레가루를 넣기 전에 토마토퓌레를 넣거나 방울토마토를 넣고 채소 카레를 끓여낸다. 토마토가 만들어내는 감칠맛으로 인해 고기의 빈자리가 느껴지지 않는 맛있는 카레다.





채소만으로도 맛있는 한 끼를  차려내는 것은 어려운 일도, 두려워할 일도 아니다. 실은 내가 채식을 시작하기 전 막연한 두려움이 있었다. 언제나 식사 메뉴를 정할 때 오늘 메인이 될 요리의 주 재료인 육류를 먼저 고르고 나머지 곁들일 음식으로서 채소 메뉴를 정해왔기 때문에 채소가 메인인 요리에 대한 걱정이 있었다. 그때 도움이 되었던 책 두 가지가 있다.

[따뜻한 식사 :강하라 저]

따뜻한 식사는 요리하지 않는 식사를 소개하거나 요리를 하더라도 요리의 과정이 매우 심플한 것들 위주여서 요즘같이 불 앞에 있기 싫은 더운 날 보면 좋은 책이다. 또한 두 아이를 키우면서 채식 생활을 하고 있는 점 등에서 아이를 키우며 채식을 하는 것에 대한 고민 등을 해소할 수 있었던 책이다.


[재료의 산책 :요니 저]

 재료의 산책은 홍대 앞 비건 카페 수카라를 운영했던 요니 님의 책이다. 비건책인줄 알고 샀는데 육류가 조금 사용된 메뉴도 들어있었다. 저자가 유제품을 먹지 못해서 대체 유제품을 만드는 레시피도 참고할 수 있고, 가장 좋은 점은 봄, 여름, 가을, 겨울 각 계절마다 한 권씩 편집되어 있어서 가을이면 가을에 어떤 채소가 나고 이 채소가 주재료인 레시피들이 소개되어 있다. 장 보러 가기 전 그 계절 편을 휘리릭 훑어보고 가면 평소에 잘 안 사던 채소도 사볼 수 있을 것 같다.





2020년 8월에 시작한 채식 지향, 이제 딱 1년이 되었다. 완벽한 비건을 추구하지 않아서였을 수도 있지만 어쩌면 채소가 맛있는 여름에 시작했기에 키토 제닉* 식단을 하던 내가 1년째 고기 없는 식단을 유지할 수 있었을지도 모른다. 육류는 어떤 종류던 간에 향신료로 전처리를 하거나, 강한 양념을 해야 하지만 채소는 그렇지 않다. 소금 조차 뿌리지 않고 굽거나 삶아도 맛있다. 물론 소금을 가미하면 단맛이 배가되어 훨씬 맛있다.


 혹시 환경을 위해 한 끼 채식이나 채식 지향을 고민 중이라면 여름에 시작해보길 권하고 싶다. 채소가 맛있는 여름에 시작한다면 채식을 금방 좋아하게 될지도 모른다. 완벽할 필요 없고, 거창할 필요도 없다. 일주일에 하루만 채식 데이로 정해도 된다. 그리고 걱정할 필요도 없다. 채소 요리는 생각보다도 훨씬 맛있으니까.



*키토제닉) 식단에서 지방의 비율을 7-80%로 유지하는 고지방 저탄수화물 식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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