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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마워숲 Sep 01. 2021

만만한 게 콩나물밥

동물성 식품을 줄이다 #4




 거실에 에어컨을 아무리 세게 틀어놔도 지금 사는 집의 구조상 부엌으로는 냉기가 전혀 전달이 되지 않는다. 부엌을 향해 선풍기를 틀어 봤자 시원해지기는 커녕, 화력에 방해만 될 뿐이다. 너무 더워서 부엌에 서 있기 조차 싫은 날이다. 우리 집 남자는 공방에서 목공 교육을 하는 자영업자이다. 그래서 회사원들과는 조금 다른 생활패턴을 갖고 있다. 오전에 일을 하고 오후에는 좀 시간 여유가 있고 다시 저녁에 일을 하러 나간다. 남들은 남편이 아이 등, 하원을 해주니 좋겠다고 하지만 마냥 좋지만은 않다. 4시에 같이 하원을 해서 집에 오면 4시 30분. 남편은 30분 정도 아이랑 놀아주는 듯하더니 7시 야간 수업을 위한 체력 보충을 위해 잠깐 낮잠을 잔다. 힘이 많이 드는 일이란 걸 알기에 낮잠 자는 거 가지고 뭐라고 할 수도 없다. 그 와중에 아이는 나에게 놀자고 하는데 아침 먹은 설거지가 그대로 있고  해 놓은 밥도 없고, 국도 없다. 친정엄마가 지난번에 오셔서 담가놓은 깍두기와 어제저녁에 만들고 조금 남은 어묵 반찬밖에 보이지 않는다.(그런데도 냉장고는 왜인지 뭔가 가득 차 있다.) 남편이 저녁을 먹고 6시 30분에 나갈 것을 감안하면 나에게 주어진 시간은 단 1시간 30분. 아이에게 간식을 챙겨주고 잠시 조용한 틈을 타 냉장고 문을 열고 서서 한참을 째려본다. 띵똥 띵똥 냉장고 문이 열려있다는 경고음이 들릴 때쯤 어제 사 온 콩나물이 생각났다!


"오빠~ 콩나물밥 할까?"


"응 나는 좋지~~"



아~ 이제 마음에 여유가 가득해진다. 10분 정도 더 뭉그적거려도 될 것 같다. 아이랑 신나게 레고놀이를 하다 잠깐만 부엌에 좀 갔다 올게 라고 말하고 일어나 압력밥솥의 스텐 내솥을 꺼내 든다. 쌀을 두 컵 넣고 씻는다. 콩나물에서 수분이 나올 거니까 물은 평소보다 조금 덜 잡는다. 냉장고에서 콩나물은 꺼내서 두세 번 씻는다. 요즘 콩나물은 콩껍질도 잘 안 나오고 어차피 유기농이나 무농약이니까 대충대충 씻는다. 이때 콩나물의 양은 우리 집은 어른 둘 아이 하나가 한 끼에 먹을 양으로 쌀 두 컵에 콩나물 2/3봉을 사용하는데 내가 주로 사는 콩나물은 300g이니까 200g 정도인 것 같다. 콩나물밥은 금방 했을 때 가장 맛있으니 딱 한 끼 분량만 짓는 걸 추천한다. 씻은 콩나물은 물을 잡아놓은 쌀 위에 수북이 올린다. 그리고 밥솥에 넣어 압력 취사 20분을 시작한다. 이제 양념장을 만들 차례. 간장, 설탕 또는 올리고당, 다진 마늘, 참기름, 깨를 넣고 잘 섞어 아이용 양념장 분량만 따로 덜어둔다. 그리고 다시 기존 양념장에 대파나 쪽파 다진 것과 고춧가루를 추가해 어른용 양념장을 만든다. 간은 맛을 보며 모자란 것을 추가하면서 맞춘다. 뜸 들이는 시간까지 더하면 아직 15분은 남았다. "삐-삐-삐-삐-" 취사가 끝난 알림음이 울렸다. 이제 6분 정도 뜸을 들일 동안 마른김을 꺼낸다. 돌김도 괜찮고 곱창김도 괜찮다. 조미김만 아니면 된다. 김을 4~5장 꺼내 제일 낮은 온도로 맞춘 오븐에 넣고 구워낸다. 오래 두면 금방 타버리니까 오븐 도어를 닫지 말고 한 번씩 뒤집어 가며 검은색이던 김이 초록빛을 띨 때까지 구워준다. 5분이 걸리지 않는다. 다 구운 김을 길게 반을 접고 1/3을 접고 또 1/3을 꾹꾹 눌러 접어 찢어서 자른다. 가위는 필요 없다. 부스러기가 생길 수 있으니 유의하자. 김을 상에 올려놓고 밥솥을 열어본다. 숨이 죽은 콩나물이 김을 모락모락 내는 밥 위에 엉겨 붙어 있다. 주걱으로 몇 번 가볍게 섞어준다. 좀 더 빨리 식을 수 있게 아이 몫을 먼저 그릇에 담고 나서 남편의 그릇에 수북하게 콩나물밥을 넉넉히 담아낸다. 나는 적당히, 콩나물로 살짝 불어난 것을 감안해 평소보다는 많이 담는다. 양념장을 취향껏 올리고 쓱쓱 싹싹 맛있게 비벼 구운 김에 싸서 입 안 가득 욱여넣는다. 제일 먼저 자꾸만 입천장에 달라붙는 구운 김의 바다내음이 치고 들어온다. 뒤 이어 아삭아삭 콩나물 씹는 소리가 입 안 가득 찬다. 그리고 참기름의 고소함과 달콤 짭짤한 양념에 비벼진 고슬고슬한 흰밥의 하모니는 그야말로 집 나간 입맛 돌아오게 하는 맛이다.



"현진 이거 팔아. 이거 파는데 잘 없잖아."


남편이 저렇게 말하는 거 보니 오늘도 맛있나 보다. 하긴 콩나물밥은 참 많이도 했지만 한 번도 실패가 없었다. 남편은 늘 두 그릇을 뚝딱하고, 더 놀고 싶어 밥이 먹기 싫은 다섯 살 아들도 콩나물밥이라고 하면 식탁에 앉아 자기 몫을 싹싹 해치운다. 별로 한 게 없어서 민망할 정도인데 저런 얘기까지 듣게 해주는 요리는 아마 콩나물밥밖에 없을 것 같다. 채식 지향 식단을 하면서 다 세어보진 않았지만 아마도 최다 횟수를 기록할 것 같은 콩나물밥. 소고기 고명 없이 만들면 비건 메뉴이기도 하면서 요리시간과 과정도 단출하고, 재료비도 아주 착한 메뉴이다. 만만한 콩나물밥이 있어 오늘 저녁 한 끼도 채식으로 감사히 해결했다. 요리가 하기 싫은 날, 불 앞에 서 있기 싫은 날엔 슈퍼에서 콩나물 한 봉지만 사 오자. 아, 혹시 집에 돌김이 없다면 돌김도 같이 장바구니에 담아야 한다는 걸 잊지 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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