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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마워숲 Jul 17. 2021

매일 버터를 먹던 나는 왜 채식을 하게 되었나

동물성 식품을 줄이다#2

 성공한 사람들을 연구한 자기 계발서를 보면 거의 대부분이 '이타적인 마음'이 그 사람을 성공으로 이끌었다. 고 말하며 네가 사람들을 위해서 세상을 위해서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인지 고민해보라는 내용이 꽤 자주 등장한다. 음. 그래? 그럼 나는 뭘 할 수 있을까? 어릴 때 꿈은 그림으로 세상을 아름답게 만드는 거였는데... 그래! 그림으로 세상을 깨끗하게 만드는 거야! 어느 날 갑자기  호기롭게 제로 웨이스트 그림 계정을 만들었다. 첫 피드는 라벨 분리를 위해 기다리고 있는 병들을 그린 거였다. 내용은 정말 대단할 것도 없는, 라벨을 분리하지 않으면 분리배출을 못하니 저렇게 유리병이 쌓이고 있다 얼른 라벨 분리를 해야겠다 뭐 이런 내용이었다. 그렇게 시작된 나의 원대했던 제로 웨이스트 계정은 나 이렇게 분리수거 잘한다, 나 지퍼백도 안 쓴다, 나는 천연수세미로 설거지한다 이런 아주 소소한 제로 웨이스트 피드를 올리고 있었다. 이게 다였다. 그러다 어느 날 문득 내가 진짜 제로 웨이스트를 실천하는 게 맞는 건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일주일만 지나도 일회용 플라스틱 더미가 눈덩이처럼 불어나 있고, 마트 가서 장이라도 한번 보고 오면 나는 비닐을 사러 마트에 간 거였나 싶을 정도로 많은 비닐이 나왔다. 그야말로 '현타'가 온 것이다. #제로 웨이스트라는 태그를 내 피드에 쓰기가 민망할 정도였다. 내 삶과 제로 웨이스트는 관계가 없어 보였다. '진정성'이라는 단어 앞에서 나의 제로 웨이스트 계정은 일시정지 상태가 되었다.


제로웨이스트를 주제로 올리던 계정의 그림들


 제로 웨이스트의 그림을 주로 올리다 보니 내 계정에 들어와서 좋아요를 눌러주는 사람도, 팔로우를 하는 사람도 대부분이 친환경적인 삶을 실천을 하는 사람들이었다. 친환경적인 삶 중에는 나처럼 제로 웨이스트만을 하는 사람도 있고, 더불어 메탄가스 발생을 많이 하는 소, 돼지의 섭취를 지양하는 채식인들도 더러 있었다. 그들 중에는 매우 강하게 육식을 거부하고 채식을 독려하는 계정도 있었다. 그즈음 나는 다이어트를 목적으로 (당시에는 다이어트가 아닌 건강이 목적이라고 생각했다) 키토 제닉(*저탄수화물 고지방) 식단을 몇 달간 이어오고 있었다. 한번 하면 제대로 하는 스타일이라 온갖 키토 제닉 요리와 키토 제닉 디저트를 만들며 키토식 식단에 열정적이었다. 아침에 눈을 뜨면 물을 끓이고 남편이 로스팅해 온 원두를 갈고 스테인리스 필터에 넣어 핸드드립으로 커피를 추출한다. 추출한 커피를 믹서에 넣고 버터 두 큰 술을 넣고 MCT 오일 한 큰 술을 넣고 윙~ 갈아 한잔 쭉 마시면 점심까지 허기짐을 느끼지 않을 수 있는 방탄 커피가 완성된다. 이렇게 아침마다 버터를 먹고, 요리할 때도 버터를 아낌없이 쓰고, 가끔 출출하면 그냥 버터 한 조각을 먹기도 했으니 500g짜리 목초 버터는 우리 집 냉장고에서 2주도 안돼서 떨어지곤 했다. 어디 버터뿐인가 점심은 늘 '고기'가 많은 메뉴가 있는 식당을 찾았고 저녁 메뉴를 정할 땐 오늘은 소, 돼지, 닭고기 중 뭘 요리할까?를 정하는 게 우선순위였다. 그런 내가 보기에 다소 불편한 영상들을 피드에 올리는 그 계정이 처음에는 좀 부담스러웠고, 모른 척하고 싶었다. 대부분 낙농업계나 축산업계의 폐해를 부분 적으로 보여주는 영상들이었는데 어느 날 보게 된 피드는 잔상처럼 계속 내 머릿속에 남아 나를 괴롭혔다. 원형으로 줄지어 선 젖소들이 있고 젖소들의 몸에서부터 시작되는 줄 같은 것이 원의 중심에서 만나고 있었다. 젖소들이 착유 중인 사진이었다. 갑자기 소름이 돋았다. 모유 수유를 했던 지난날이 떠오르면서 착유를 당하기 위해 동그랗게 다닥다닥 붙어서 있는 젖소들의 모습이 이제 막 출산하고 유축기를 이용하는 유축하는 엄마들의 모습으로 대체되었다. 내가 며칠 전에 아이를 출산했는데 나의 젖은 내 아이가 아닌 다른 이의 일시적 미각 만족과 영양(실제로 영양에 좋지도 않다고 생각한다.)을 위해 착유된다고 생각하니 끔찍했다. 이런 기분으로 계속 키토 제닉 식단을 유지할 수가 없었다. 그때부터 '채식'을 공부했다. 카더라 통신 말고, 검증할 수 있는 진짜 정보가 필요했다. 그때 어떤 분의 책 추천 피드를 보게 되었다.  '어느 채식 의사의 고백' 제목이 일단 진짜 진실을 말해줄 것만 같았다. 채식의 허와 실이 있다면 허와 실을 모두 다 말해주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 어느 때보다 집중해서 책을 읽었다. 책을 읽고 채식의 합리적이고 타당한 이유를 찾아야만 했다. 왜냐? 나는 유아기의 아이를 키우는 엄마였고 엄마가 채식을 한다고 하면 "그래도 자라나는 아이는 먹어야지?" 할 거니까 그에 대한 나의 흔들리지 않을 스스로도 납득할만한 증거가 필요했다. 지방 섭취만이 건강한 식단이라고 생각해서 고구마 감자도 안 먹던 나 스스로에게도 채식의 대한, 탄수화물에 대한 오해를 풀고 싶었다.   다행히 책 속에는 매우 과학적인 연구 결과들로 우리가 채식을 한다고 할 때 흔히 걱정하는 '단백질 공급원'이나, 영양 불균형에 대해 채식이 결코 부족하지 않음을, 동물성 단백질이  식물성 단백질보다 우월한 점이 없음을 보여줬다. 그리고 비정제 탄수화물은 죄가 없음을 알려주었고, 탄수화물이 식단의 70%인 채식으로 암환자를 치료한 내용들도 다루고 있었기에 '내가 먹는 게 곧 나의 건강을 좌우한다는 생각을 갖고 있던 내가 설득당하기에는 충분했다.


채식 식단 일주일 하고는 나 비건입니다~ 고기 말고 채소 먹어요~~라고 콘텐츠를 만들 만큼 낯짝이 두껍지 않았던 탓에 내가 채식 식단을 유지할 수 있는 사람인지 확인의 시간이 필요했다. 한 달 정도였을까 고기 생각이 전혀 나지 않고,  채식 식단을 그런대로 잘 유지하고 있었다. 제로 웨이스트보다 훨씬 쉬웠다. 적어도 나는 그랬다. 비건은 내 의지로 결정할 수 있는 게 많았지만 제로 웨이스트는 내 의지만으로는 안될 때가 많았다. 어려웠다.(그래서 나는 제로웨이스터분들을 정말로 존경한다.) 나의 선택으로 육식 소비가 만들어내는 메탄가스를 줄일 수 있다면 이것 역시 기후 위기에 도움이 될 수 있으니 나는 제로 웨이스트 생활은 못해도 레스 웨이스트와, 비건 생활로 지구 환경에 공헌하게 된다고 생각하니 다시 시작할 힘이 생겼다. 그렇게 나의 제로 웨이스트 계정의 명맥을 이어가기 위해 시작한 채식 생활은 어느덧 한 달 뒤면 1년이 된다. 막상 해보니 할만하고, 가끔 가족들은 외식 때 육식을 하지만 이전보다 매우 많이 줄었고, 나 역시도 '절대 비건' 이 아닌 '되도록 비건'을 지향하고 있어서 어쩔 수 없는 경우(시댁에 간다던지.. )나, 아주 소량이 사용된 경우에는 드물게 육식을 하게 되기도 한다.




"완벽한 1명의 비건 보다 하루에 한 끼 정도는 고기 없는 식단을 하는 10명이 지구에는 더 도움이 된다." 고 한다.

내가 다른 사람의 피드를 보고 채식을 알아볼 생각을 하게 된 것처럼 내가 쓴 글로 인해 오늘 하루, 오늘 한 끼는  고기를 안 먹겠노라 선택하는 사람이 있었으면 하는 마음으로 브런치 작가 신청도 하게 되었다.  고기를 끊으라는 게 아니다.  버터를 먹지 말라는 게 아니다. (사람은 그리 쉽게 바뀌지 않는다, 먹는 것도 그렇다.) 일주일에 한 번 치킨을 먹었다면 한 달에 한 번으로 줄여보고, 소고기 먹을 바엔 메탄가스 배출이 상대적으로 낮은 돼지고기를 먹는다던지 하는 '선택'을 할 수 있다.  그리고 내가 고기를 먹지 않게 된 '비결'이 하나 있는데, ‘만약에 정육점이 없다면?’이라는 생각을 해봤는데 그러면 내가 고기를 먹기 위해 거쳐야 하는 과정에 대해 자연스럽게 떠올리게 되었다. 생각한 것이 머릿속에 너무나 생생하게 이미지화되곤 하는 나는 그래서 그냥 고기를 먹지 않는 것을 선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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