빗과 가위

'컷팅보다 빗질이 먼저'

by 뽀득여사

마음이 유난히 조급한 날이었다. 그날따라 그새 자란 앞머리가 유독 거슬렸다. 빗질을 대충 하고 가위를 성급하게 들었다. 한 번에 끝내고 싶었다. 늘 하던 일이니 괜찮을 거라 생각했다.
첫 컷이 어긋났다.

“이 정도는 괜찮아.”

다시 한번 더 잘랐다. 그런데 선이 더 삐뚤어졌다. 삐뚤어진 걸 바로잡겠다고 또 조금 잘랐다. 그렇게 자르고 또 자르다 보니, 앞머리는 어느새 눈썹 위까지 올라가 있었다.
되돌릴 수 없는 상태가 되어서야 손이 멈췄다.

거울 속 나를 보니 웃어야 할지, 한숨을 쉬어야 할지 알 수 없었다. 한참 동안 짧고 삐뚤어진 앞머리를 바라보고 있었다. 앞머리는 그날의 내 마음을 그대로 닮아 있었다. 조급했고, 성급했고, 멈추는 법을 몰랐다.


그때 알았다. 앞머리를 망치는 건 가위가 아니라, 준비되지 않은 마음이라는 것을.



나는 십 년이 넘게 앞머리를 스스로 자른다. 삼 년이면 서당개도 풍월을 읊는다고 하지 않던가. 이제는 앞머리 컷팅에도 나름의 노하우가 생겼다.
앞머리를 자를 때 가장 중요한 것은 가위가 아니다. 그보다 먼저, 아주 촘촘한 빗으로 머릿결을 충분히 정리하는 일이다. 결이 엉킨 채로 자르면 길이는 맞아도 선은 흐트러진다. 마음이 급할수록 결과는 늘 어긋난다.

그런데 며칠 전, 나는 이런 시행착오를 다시 한 것이다. 며칠째 눈썹 위로 올라가 있는 앞머리를 볼 때마다 혼자 되뇐다.

자르기 전에 반드시 빗질이 중요하다는 것을.



우리의 삶도 꼭 그렇다.
우리는 종종 불필요한 것들을 정리하고 싶어 한다. 나를 소진시키는 관계, 반복되는 후회, 이유 없이 가라앉는 감정들. 그럴 때마다 나는 단호해져야 한다고 믿었다. 끊어내야 하고, 정리해야 하고, 결단을 내려야 한다고. 하지만 준비되지 않은 컷팅은 늘 또 다른 상처를 남겼다. 덜어냈다고 생각했는데, 마음은 오히려 더 어수선해졌다.

그제야 깨달았다. 문제는 무엇을 잘라낼지의 문제가 아니라, 어떤 상태로 가위를 드느냐의 문제라는 것을.


삶에도 빗질이 필요하다는 것을.




나만의 정서적 빗질.
그 방법은 정해져 있지 않다. 어떤 날은 오래 걷는 산책이 되고, 어떤 날은 몇 페이지의 책이 된다. 음악을 틀어놓고 멍하니 앉아 있는 시간, 혹은 조심스럽게 마음을 나눌 수 있는 한 사람과의 대화일 수도 있다. 중요한 것은 문제를 성급하게 해결하려 애쓰지 않는 것이다. 그저 마음의 결을 먼저 가지런히 정리하는 일이다.


정서적 빗질을 하고 나면, 마음의 결이 달라진다. 감정의 뭉침이 풀리고, 생각의 속도가 느려진다. 그제야 나는 맑아진 렌즈로 나를 바라볼 수 있다. 무엇이 진짜 나를 소진시키는지, 무엇은 불편하지만 필요한 과정인지, 지금 잘라야 할 것은 무엇이고 아직 남겨두어야 할 것은 무엇인지가 조금씩 보이기 시작한다.

그다음에야 가위를 든다.
충동이 아니라 선택으로, 분노가 아니라 이해로. 필요 없는 것은 과감하게, 그러나 꼭 필요한 것까지 잘라내지 않도록 조심스럽게. 그렇게 자른 후에도 마음이 무너지지 않는 이유는, 이미 충분히 빗질을 했기 때문이다.


앞머리는 다시 자라지만, 삶에서 잘라낸 것들은 흔적을 남긴다. 그래서 나는 예전보다 훨씬 신중해졌다. 충분히 정리한 후에만 가위를 들기로 했다. 마음이 스스로 납득할 수 있을 때까지 기다리기로 했다.

오늘도 거울 앞에서 빗질을 한다.
이마 위로 가지런히 떨어지는 머리카락을 바라보며 생각한다. 내가 다듬고 있는 것은 앞머리의 선이 아니라, 어쩌면 내 삶의 태도일지도 모른다고.


마음에도 빗과 가위가 있다.
그리고 대부분의 경우, 우리가 더 연습해야 할 것은
잘라내는 용기보다,
충분히 빗질할 수 있는 인내다.




** 이 글은 오마이뉴스에도 게재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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