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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 살아왔고 또 잘 살아갈 우리.

“우리의 결혼기념일 축하합니다. 그리고 사랑합니다.”

by 뽀득여사

1999년 11월 6일.

26년 전 그날은 유난히 따스한 햇살이 가득했었다. 계절은 늦가을이었지만 봄날 같은 날씨였던 그날.

2025년 11월 6일도 전날의 쌀쌀함과는 달리 햇살이 따스했다. 마치 축복의 빛을 비춰주는 것처럼.


이른 아침, 남편의 카톡 메시지가 울린다. 새벽 일찍 출근하는 남편은 늘 내가 일어나는 시간에 맞춰 매일 모닝 메시지를 보낸다. 오늘은 특별히 우리의 스물여섯 번째 결혼기념일을 축하하는 문장이 덧붙여져 있다. 아침부터 기분이 좋다. 남편에게 답장을 하고 ‘최고의 남편상’ 이모티콘도 덧붙여본다.


“나 내일 상담이 늦게까지 있어서 퇴근이 늦어. 어쩌지?”
“걱정하지 마, 내가 먼저 와서 준비해 놓을게!”
“미안해서 어쩌지.”
“무슨, 너무 기대하면 안 되는데.”
“기대하지 말라니까, 기대되는 걸.”


전날, 목요일은 특히 늦게 일이 끝나는 날이라 난감해하던 나에게 활짝 웃으며 걱정 말라는 남편의 모습에 나도 덩달아 웃음이 났었다.
목요일은 유난히 상담이 많기도 하고 에너지가 많이 소진되는 그룹상담이 있는 날이라 퇴근 무렵이면 늘 녹초가 되기 일쑤였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점점 퇴근 시간이 가까워질수록 오히려 에너지가 올라가는 기분이었다. 또 한편으로는 조금이라도 빨리 가서 남편을 도와줘야겠다는 조바심도 났다.


주차장으로 달려가며 나는 남편에게 전화를 했다.
“오빠, 얼른 갈게. 참, 가는 길에 케이크 사 갈까?”
“당연히 케이크도 준비했지. 걱정 말고 조심해서 와.”

뭔가를 분주히 하고 있는지, 살짝 숨이 가쁜 남편의 목소리에 고마움과 사랑이 올라온다. 남편도 퇴근해서 얼마나 혼자 급하게 준비하고 있을지 생각하니 마음이 급해졌다. 그 마음을 아는지 오늘따라 퇴근길의 신호등도 바로바로 바뀌며 집으로 가는 길을 도와주는 것 같았다.



“오빠, 나 왔어.”

“응, 어서 와.”

남편은 소매를 걷어 부치고 주방에서 햇살처럼 웃으며 두 팔을 벌린다. 둘 중에 먼저 퇴근하는 사람이 늘 나중에 오는 사람을 두 팔 벌려 안아준다. 식탁에는 이미 근사한 식사와 케이크가 준비되어 있었다.


“우와, 너무 근사하다. 감동이야.”
“그냥 간단히 준비했어.”

살짝 수줍어하는 남편이 귀엽다. 우리는 스물여섯 개의 초를 밝히고, 둘이 손잡고 ‘결혼기념일 축하합니다~’로 노래를 부르고 함께 초를 불었다. 그리고 서로에게 진심으로 건네는 말.


“우리의 결혼기념일 너무 축하합니다. 그리고 사랑합니다.”


건강을 위해 치킨스테이크를 오븐에 구워서 내가 좋아하는 접시에 플레이팅을 했다고 하며 살짝 긴장된 얼굴로 나를 바라보는 남편의 모습이 얼마나 귀여운지, 아직 입에 넣기도 전에 “우와, 너무 맛있다.”라는 말이 먼저 나왔다.


“우리 너무 신기하다. 너랑 나랑 둘 다 노화지수가 똑같이 나왔어.”
“그러게. 정말 신기하다. 둘 다 0.87이야.”

오늘 마침 얼마 전 받았던 건강검진 결과가 도착했다. 다행히 남편과 나 모두 건강에 이상이 없고, 전반적인 수치도 좋은 편이었다. 특히 둘 다 노화지수가 0.87로 동일하게 나온 게 너무 놀라웠다. 남편은 백 명 중 8등, 나는 9등이었다.


“우리가 이렇게 함께 건강하다는 것이 너무 감사해.”
“그래, 우리 지금처럼 앞으로도 건강하고 행복하게 잘 살아가자.”


남편과 나는 와인잔을 부딪치며 활짝 웃었다.

부부라는 이름으로 우리는 스물여섯 해를 살아왔다.


스물여섯 해 전 오늘. 우리는 서로의 손을 꼭 잡고 “평생 함께하자”라고 약속했었다.
그때는 그 말의 무게를 몰랐다. ‘함께’라는 말속에 얼마나 많은 인내와 웃음, 그리고 눈물이 들어있는지를.
시간이 지나며 우리는 그 약속의 진짜 의미를 조금씩 배워왔다.

서로의 젊음이 사라져 가고, 머리카락 사이로 하얀빛이 비치기 시작한 지금,
나는 그 모든 시간이 감사하다.
함께 나이 들어간다는 건 단순히 나이를 더하는 게 아니라
서로의 변화를 이해하고 받아들이는 일이라는 걸,
이제야 조금 알 것 같다.


젊은 날엔 서로를 설득하려 했지만,
이제는 그냥 들어주는 법을 배웠다.
서로의 단점을 고치려 애쓰던 시간 대신,
그 단점을 품고도 여전히 웃을 수 있게 되었다.
결혼이란 결국, ‘변화시키는 일’이 아니라
‘함께 변해가는 일’이었다.


우리는 여전히 매일 아침 인사를 나누고,
하루의 끝에 “오늘도 수고했어”라는 따뜻한 말을 건넨다.
그 작은 반복들이 쌓여 지금의 우리가 되었다.
이제는 특별한 날이 아니어도 좋다.
서로의 얼굴을 바라보며 식탁에 앉아 밥을 먹는 이 평범한 순간이,
어쩌면 가장 완벽한 축하일지도 모른다.


스물여섯 해가 흘렀다.
그리고 우리는 여전히 서로에게 아침인사로 하루를 시작한다.


잘 살아왔고, 또 잘 살아갈 우리.

오늘의 햇살처럼, 내일도 그렇게 따뜻하길.




https://youtu.be/I2I37rsp3RA?si=eRKUgSgeKiiqRgsX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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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요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