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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삼계탕 맛있던데요

나를 위한 한 그릇.

by 뽀득여사

혼자 커피 마시기 잘하고,
혼자 브런치 카페도 잘 간다.
혼자 산책도 잘하고,
혼자 서점에도 잘 간다.
혼자 쇼핑도 잘한다.

혼자를 즐기는 편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혼자 있는 걸 두려워하지도 않는다.


다만, 혼자 삼계탕을 먹으러 간 적은 없었다.

그런데 얼마 전, 나는 혼삼계탕을 먹었다.

가을을 타는 데다가, 막 갱년기의 티켓을 끊고 갱년기 열차에 탑승한 상태다.
아직 본격적으로 출발하지는 않았지만, 행선지도, 경로도 이미 파악이 된 여행길.
티켓을 물릴 수도, 취소할 수도 없는 여정이다.


하필이면 가을이다.
만년 가을소녀였던 내가 이제는 ‘가을 갱년기녀’가 되어버렸으니,
마음이 평안할 리가 없다.

가을을 탈 거라는 건 알고 있었지만,
이번 가을은 마음뿐 아니라 몸까지 함께 흔들린다.




며칠 전, 유난히 공기가 쓸쓸하고 바람 끝이 가벼워진 날이었다.
그날의 나는 하루 사이 훌쩍 짙어진 가을빛 속에서 이상한 허기를 느꼈다.
그게 마음의 허기인지, 위장의 허기인지는 모르겠지만
뭔가 뜨끈하고 든든한 것이 간절했다.

그때 가장 먼저 떠오른 건 삼계탕이었다.


우리 동네 들깨삼계탕집.

가족과 종종 가던 곳이라 익숙한 메뉴, 익숙한 풍경이었다.
뽀얀 국물에 부드럽게 익은 닭살, 고소한 들깨 향.
그릇을 비우면 이마에 송골송골 맺히는 땀방울이
그날 하루의 피로를 대신 씻어내 주던 곳이었다.

아직 저녁을 먹기에는 이른 시간이었다.
보통 같으면 남편에게 전화해
“오늘 저녁에 삼계탕 먹으러 갈래?” 하고 물어봤을 것이다.

그런데 그날, 나는 내 마음, 또는 위장에서 느껴지는 허기를 참고 싶지 않았다.
나는 망설이지 않고 삼계탕집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혼자 먹는 삼계탕, ‘혼삼계탕’을 하고 싶었다.

5시가 되기 전의 삼계탕집은 한가로웠다.
‘몇 분이신가요?’라고 묻는 직원분에게
‘한 명이요’라고 말하는 내 목소리가 조금은 낯설었지만,
왠지 괜찮았다.

김이 모락모락 오르는 들깨삼계탕이 내 앞에 놓였다.
걸쭉한 들깨국물 안에 뽀얀 삼계탕이 숨 쉬듯 하얀 김을 피워 올렸다.
진한 들깨 향이 내 코끝과 마음을 동시에 데워주었다.

그 순간, 뜨거운 삼계탕 옹기그릇과 내가 조용히 조우하는 기분이 들었다.


‘나를 위한 거구나!’


늘 ‘누구의 엄마’, ‘누구의 아내’, ‘누구의 딸’, ‘누구의 상담가’로 존재하던 나.
그 시간들이 길고도 익숙하게 내 삶이 되어 있었다.

내 앞에 놓인 들깨삼계탕은 오로지 나를 위한 것이었다.


야들야들한 닭다리를 젓가락으로 들어 깨소금을 살짝 찍었다.
옹기그릇 속에서 쉽게 식지 않는 들깨죽과 찹쌀을 소담하게 한 숟가락 떠
후후 여러 번 불고 입안에 넣었다.

적당히 익은 큼지막한 깍두기를 오독오독 씹었다.
이번에는 하얀 닭가슴살을 한 젓가락 크게 뜯어 한입에 넣었다.

서두르지 않고, 오로지 맛있게 먹었다.
오롯이 ‘나’를 위한 식사였다.


누구의 시선도, 누구의 간섭도 없이
그저 내 허기와 내 마음의 빈틈을 채워주는 시간이었다.

국물 한 숟가락, 살코기 한 점.
뜨거운 김 사이로 ‘나를 돌본다’는 감각이 천천히 배어왔다.

내 이마에 땀이 송골송골 맺힐 즈음,
어느새 옹기그릇은 깨끗이 비워져 있었다.



갱년기라는 낯선 여정을 앞두고
이 한 그릇의 따뜻함이 마치 나를 격려하는 듯했다.

‘괜찮아, 이제는 조금 느려도 돼. 누군가의 누구이기 전에, 그냥 너 자신으로 살아도 괜찮아.’


삼계탕 한 그릇을 다 비우고 나니 밖에는 어느새 햇살은 기울고 저녁바람이 불어오고 있었다.

내 몸과 마음의 허기가 삼계탕 옹기그릇처럼 채워져서일까. 가을 저녁 바람이 시원하게 느껴졌다.


혼자라는 말속에는 외로움만 있는 게 아니다.

조용히 나를 들여다볼 여백이 있고,
오롯이 나에게 집중할 수 있는 온기가 있다.

혼삼계탕은 단순히 한 끼 식사가 아니었다.
누구의 엄마도, 아내도 아닌,
‘나 이수정’이라는 사람에게 건넨 따뜻한 위로 한 그릇이었다.




**이 글은 오마이뉴스에도 실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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