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짝 내려놓으니 내게 돌아왔다.
“앗, 어디 갔지?”
안경을 꾹 눌러 쓰고 침침한 눈을 부릅뜨며 방바닥, 거실, 주방, 심지어 현관까지 바닥 투어를 했다.
퇴근후 늦은 저녁, 바닥만큼이나 몸도 마음도 지쳐있었고 야속하게도 작은 금귀걸이 한 짝은 세상의 모든 바닥과 나를 피해 다니기라도 하듯 모습을 감춰버렸다.
“아휴, 요즘 금값이 얼만데…”
혹시 옷을 갈아입다가 옷에 끼었을까 싶어서 벗어 놓은 옷들을 낱낱이 뒤져보았지만 역시 없었다. 맥이 빠지는 그 순간에 마음 한편에서 묘한 기분이 스멀 올라왔다.
‘그래도… 왠지 다시 나타날 것 같은데?’
근거도 없고 설명도 안 되지만, 사람 마음에는 때때로 이렇게 어설픈 희망이 들어앉는다. 잃어버렸는데도, 이상하게 ‘돌아올 것만 같은’ 느낌.
그리고 정말 다음 날, 욕실 바닥에서 그 귀걸이를 발견했다.
어젯밤엔 눈 씻고 찾아도 없던 바로 그 자리에서였다.
귀걸이가 밤새 발이라도 달려 숨어 있다가, 새벽녘에 슬쩍 자기 자리로 돌아오기라도 한 걸까?
황당하면서도 고맙고, 무엇보다 다시 보게 되어 기쁘기만 했다.
“이상하다. 분명히 어제는 못 봤는데…”
중얼거리다 문득 생각이 스쳤다.
‘분명히’라는 말은, 정말 분명할 때만 쓰는 걸까?
우리는 사실 분명하지 않은 상황에서도 ‘분명히’를 습관처럼 붙인다.
‘분명히 이럴 거야.’
‘분명히 아닐 거야.’
확신이라는 것은 어쩌면 불안을 잠시 눌러두기 위해 우리가 덧입히는 작은 안전장치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 갑옷이 너무 두꺼우면, 오히려 내 안의 여지를 보지 못하게 한다.
살다 보면, 어떤 것들은 잃어버린 것이 아니라 단지 내 시야에서 잠시 가려져 있을 뿐이라는 사실을 잊는다. 마음이 조급하고 시야가 좁아져 있을 때 보이지 않다가도, 마음의 초점이 살짝 풀리는 순간 비로소 모습을 드러내는 것들. 사람도, 해답도, 기회도 그렇다.
또 한 가지 재미있는 사실은, 내가 귀걸이에 ‘미련 반, 포기 반’의 마음으로 잠시 내려놓았을 때 그것이 돌아왔다는 점이다.
가끔 너무 꽉 쥐고 있을 때는 멀어지고, 조금 힘을 빼는 순간 오히려 다시 찾아오는 것들이 있다. 관계도 그렇고, 운도 그렇고, 마음도 그렇다.
우리는 사소한 실수나 실책에도 쉽게 자책하곤 한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고 보면, 별일 아닌 일이 되거나, 다른 방식으로 자연스럽게 해결되기도 한다.
삶은 원래 조금 흘리고, 조금 빠뜨리고, 그래서 다시 찾아오며 굴러가는 것인지도 모른다.
잃어버린 것이 모두 사라지는 건 아니다.
어떤 것들은 제자리를 찾아 돌아오기도 한다.
물론 모든 것이 귀걸이처럼 착하게 돌아오는 건 아니지만, 시간과 나의 상태가 맞아떨어지는 순간, 불쑥 내 손바닥 위에 놓이는 것들도 있다.
이렇게 생각하니 잃어버림도 조금은 견딜 만해졌다.
내가 통제할 수 없는 것들 앞에서 힘을 빼고 살아보자는 마음도 생긴다.
어쩌면 오늘은 없던 무언가가, 내일 욕실 바닥 한 귀퉁이에서 반짝이며 나를 반겨줄지도 모른다.
사소한 것들의 사라짐과 돌아옴은, 단순히 물리적 사건이 아니라 마음을 조금 느슨하게 만드는 삶의 방식이라는 것.
억지로 붙잡으려 하기보다, 살짝 내려놓고 기다리는 순간 비로소 돌아오는 것들이 있다는 사실.
인생은 그렇게 사라졌다 나타났다를 반복하며,
조금 웃기고, 조금 얄밉고, 조금 따뜻하다.
되돌아온 금귀걸이 한 짝처럼.
양쪽 귓불에 대롱거리는 귀걸이를 살짝 만지며 속삭여본다.
“내게 돌아와 줘서 고마워.”
** 이 글은 오마이뉴스에도 실렸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