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기온이 어제와 다르다. 뽀득여사는 가게 문을 여는 손끝이 차게 느껴졌다. 아가도 몸서리를 ‘부르르’ 떨더니 꼬리를 털고는 다시금 모포 속으로 머리를 쏙 밀어 넣었다.
“가을님이 벌써 떠날 채비를 하시려나.”
뽀득여사는 아쉬움에 아침공기를 ‘후후’ 폐 깊숙이 들이마셔본다. 뽀득여사는 겨자색 앙고라 카디건을 여며 쥐고는 가게 앞에서 한참을 서 있었다. 교복을 입고 등교하는 중고등학생들, 좀 늦은 출근길에 바삐 걸어가는 직장인들, 가벼운 차림으로 반려견과 산책하는 사람…. 뽀득여사는 따뜻한 커피잔을 손에 쥐고는 뜨거운 커피를 ‘후’ 불며 이 골목의 늦가을 아침을 즐기고 있었다.
“할머니, 할머니 굿모닝이요!”
순간 눈앞의 시야가 쨍하게 선명해지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새미로구나. 역시 새미의 목소리는 정말 맑고 예뻐. 커다란 수정구슬이 또르르르 굴러가는 소리야.”
“역시 할머니는 최고예요. 우리 엄마는 제 목소리가 너무 크다며 늘 ‘볼륨을 줄여’라고 하시거든요. 아파트 엘리베이터에서 제 옆구리를 꽉 꼬집기도 하셨어요.”
“어머 왜?”
“저는 잘 모르겠는데, 제가 너무 큰 소리로 엘리베이터에서 떠들었다고요. 에휴, 어떻게 하면 우리 엄마처럼 조용 조용 말할 수 있을까요. 엄마처럼 말하려면 목이 아파요. 그리고 목소리가 바람 빠진 소리처럼 나서 싫거든요. 입술도 요렇게 오므려야 하고요.”
새미는 입술을 오종종하게 오므리더니 금세 함박웃음을 지으며 가지런한 이를 다 드러내며 ‘깔깔깔’ 웃었다. 새미의 웃음바이러스에 속수무책인 뽀득여사는 새미를 보며 같이 소리 내어 웃었다. 상쾌한 늦가을 아침.
“참 그거 아세요? 우리 멋쟁이 할아버지요. 결심하셨대요.” “응? 무슨 결심?”
뽀득 여사는 순간 마음이 살랑 움직이는 것을 누르고는 모른 척하며 물었다.
“우리 할아버지요. 이제 한국에 사실거래요. 쭈욱.”
“그래? 왜 멜버른으로 돌아가시지 않고?”
‘아차차! 새미는 내가 새미 할아버지를 만난 것을 모르잖아.’ 뽀득여사는 조금 당황했다. 그러나 다행히 새미는 눈치채지 못했다.
“할아버지가 한국의 가을을 계속 보고 싶으시대요. 멜버린(새미는 종종 단어의 자음 또는 모음 하나 정도를 바꿔서 말하는 귀여운 습관이 있다)도 좋지만 한국이 더 좋으시대요. 이제는.”
“음, 그러시구나. 그렇지. 한국의 이 가을을 보렴. 얼마나 아름답니.”
“네. 지금은 우리 집에 계시는데 곧 이사하신대요.”
“이사? 멀리 가시는 거야?”
‘아차차’ 뽀득여사는 속으로 ‘주책이야 정말’을 외치며 입을 꾹 다물었다. 자신도 모르게 ‘멀리 이사 가지 않았으면’ 하는 속마음을 새미에게 들킨 것 만 같아서 다시금 목덜미가 빨개지는 것이 느껴졌다. 다행히 해맑은 새미는 또 개의치 않는다.
“아니요. 우리 옆 동으로 이사하시는 거예요. 할아버지는 그게 좋은 거래요. 사랑하는 사람도 필요한 거리가 있다고 하셨어요. 가끔 할아버지는 어려운 말씀을 하시는데요. 엄마도 할아버지 말씀이 맞다고 하셨어요.”
“그래, 우리 새미 좋겠구나.”
“참, 할아버지한테 할머니 얘기 했거든요. 뽀득거울가게도요. 할아버지가 꼭 와보고 싶으시대요.”
“어머 그래? 그래 새미랑 같이 오시면 좋지.”
뽀득여사는 상쾌한 늦가을 아침바람이 붉어진 볼을 식혀줘서 다행이라는 생각을 하면서 새미를 보고 미소를 지었다. 새미는 늘 그렇듯이 통통한 손을 높이 흔들며 ‘또 올게요.’를 외치며 골목을 총총총 달려갔다.
‘할머니, 오늘은 할머니가 젊어 보여요.’ ‘내 눈은 못 속인다니까요. 오늘 좋은 일 있으시죠? 아까부터 콧노래도 계속 부르시고. 할머니, 오늘이 무슨 날 이에요? 궁금해요. 꾸잉.’ 아가는 톡톡톡 앙증맞은 앞다리 뒷다리를 부지런히 움직이며 뽀득여사의 주위를 돌며 눈을 반쯤 뜨면서 말을 건다.
“아니야. 아가야! 어제와 같은 평범한 날이야. 물론 평범하고 감사하고 행복한 날이지. 늘 그렇듯이.”
‘아닌데. 오늘 할머니는 좀 더 행복해 보이시는걸요.’
“그렇게 보이니? 그렇다며 좋아. 오늘은 어제보다 ‘좀 더 감사하고 행복하고 특별한 날’이라고 하자.”
‘그럼 이렇게 좀 더 감사하고 행복하고 특별한 날에는 그에 걸맞은 특식을 주실 건가요?’
“호호호, 아가는 정말 특별하면서도 평범한 아기돼지야. 기-승-전은 철학적이고 특별하지. 그리고는 결에는 평범해지지. 그래서 너무 귀여워.”
뽀득여사는 귀여운 아가의 엉덩이를 토닥토닥해 주고는 ‘아가의 특식’을 준비해 주었다.
뉘엿뉘엿 지는 해와 함께 뽀득여사의 평화로운(물론 오늘은 기분이 살짝 업되어 있었고) 하루가 지나고 있을 무렵, 조용히 가게의 문이 열렸다.
목에서부터 무릎선까지 단정히 베이지색 버버리 단추를 채우고 허리 벨트를 단정히 묶은 여성이 들어왔다. 화장은 옅었지만 브라운컬러의 자연스러운 단발웨이브에 작은 진주 귀걸이를 한 모습을 한 전형적인 커리어우먼의 모습이었다.
“안녕하세요? 인사가 늦었습니다. 저는 건너편 5단지에 사는 새미 엄마입니다. 우리 새미가 늘 여기 사장님 이야기를 하거든요. 새미를 늘 예뻐해 주시는 것 같아서 꼭 와서 인사드리고 싶었어요.”
세련된 이미지에 딱 어울리는 음성으로 새미 엄마는 조용히 고개를 숙이며 인사를 하였다. 뽀득여사는 미소와 함께 초록 소파로 안내하고는 따뜻하고 향기로운 커피를 권했다.분명 첫 이미지는 사뭇 다른 모녀인 것 같지만 가까이 마주 앉은 새미 엄마의 얼굴에는 묘하게 새미가 스며 있었다.
“우리 새미가 사장님 영업에 방해가 되지는 않는지 걱정이 되었어요.”
“무슨 말씀을요. 우리 새미 덕분에 제가 얼마나 즐거운데요. 새미의 맑은 마음과 미소가 너무 예뻐요. 며칠 안 오면 궁금하고 보고 싶고 그런 걸요.”
“그렇게 말씀해 주시니 안심되고 감사해요. 늘 냇가에 내어 놓은 아이 같아서 걱정이 많거든요. 또 제가 혼자새미를 키우며 일을 계속해서 늘 전전긍긍하며 키워왔어요. 더구나 우리 새미는 ….”
새미 엄마는 끝말을 흐리더니 금세 얼굴빛이 살짝 어두워졌다.
“사장님도 눈치채셨겠지만 우리 새미가 조금…, 네 아주 조금 다르잖아요. 음, 아직도 어린애 같아요. 그게….”
“네. 새미는 다르지요. 특별한 아이지요.”
새미 엄마는 뽀득여사의 ‘특별한 아이’라는 말에 약간의 경계와 방어의 눈빛으로 뽀득여사를 바라보았다.
“특별한 아이지요. 새미는 누구보다도 맑고 순수하고 예쁜 아이지요.”
뽀득여사의 말을 조용히 듣고 있는 새미 엄마의 표정에서 복잡한 미소가 얼굴에 번졌다. 커피잔을 쥔 새미 엄마의 손가락이 유난히 길고 가늘었다. 뽀득여사는 가늘고 긴 새미 엄마의 손가락에 커피잔이 너무 무겁겠다 싶었다. 뽀득여사의 마음이 들키기라도 한 듯 새미엄마는 두 손으로 커피잔을 감싸 쥐고는 조용히 커피를 입에 가져다 댔다.
“새미가 조금 다르다는 것을, 새미 두 돌 정도부터 조금씩 알게 되었어요. 걸음마도 두 돌이 다 되어서야 조금씩 되더라고요. 새미는 두 돌이 넘어서도 말을 하지 못했어요. 옹알이도 적었고 하루종일 도형블록만 만지작거렸어요. 너무 예쁜 아기였지만…. 엄마를 보기보다는 허공을 보며 혼자 웃고 불러도 돌아보지 않고…. 불안하고 무서웠어요. 하지만 ‘아닐 거야, 아닐 거야’하는 마음으로 기다렸지만…. 결국 세 돌이 한참 넘어서야 병원에서 발달장애라는 진단을 받았어요.”
읊조리듯이 이야기를 꺼내는 새미엄마를 뽀득여사는 따뜻한 눈빛으로 조용히 들어주었다. 그 어떤 말보다 ‘온 마음으로 들어주기’가 필요한 순간이라는 것을 뽀득여사는 알고 있었다.
“유명하다는 선생님들을 찾아다니며 발달치료에 매달렸어요. 어느 날은 ‘다 잘 될 거다’ 싶어서 기대에 부풀다가 어느 날은 ‘다 소용없다’ 싶어서 나락으로 떨어지는 기분이 널을 뛰었어요. 어느 날은 멍한 아이의 눈빛이 너무 미워서 방문을 닫고 들어가서 ‘딱 이대로 죽어버렸으면 좋겠다’ 싶어서 몇 시간을 이불을 뒤집고 쓰고 있다가 정신이 번쩍 들어서 방문을 벌컥 열고 나왔는데 아이는 그 자리 그 눈빛 그대로 앉아 있더라고요. 아이를 품에 안고 엉엉 울었어요.”
뽀득여사는 새미엄마의 가늘고 긴 손가락, 그 여윈 손을 잡아주고 싶었지만 새미엄마의 빈 머그잔에 향이 진한 커피를 다시 채워주는 것으로 대신했다.
“감사합니다. 우리 새미가 왜 그렇게 사장님을 그리고 이 가게를 좋아하는지 알 것 같아요. 이런 표현은 좀 쑥스럽지만, 뭐랄까요. 따뜻한 품에 안겨있는 기분이 들어요. 너무 오랜만에 느껴보는 따뜻함이요.”
“저는 단지 따뜻한 커피를 채워드렸을 뿐인걸요. 그리고 이렇게 마주 앉아 있을 뿐이고요.”
“채워지는 거요. 맞아요. 바로 그거예요. 사장님과 마주 앉아 이렇게 이야기를 나누는 게, 이 깊숙한 곳이 채워지는 기분이 들어요. 그동안 꽤 오랫동안 비워져 있었나 봐요.”
새미엄마는 가늘고 여윈 손을 가슴에 얹고는 촉촉해진 눈빛으로 뽀득여사를 바라보았다.
“저는 그동안 우리 새미의 부족한 부분에만 매달려 있었던 것 같아요. 그리고 이 험한 세상에 새미를 어찌 내어 놓겠나 싶은 불안과 걱정 때문에 늘 노심초사했었어요. 아마 우리 새미가 이 엄마를 ‘잔소리쟁이’라고 흉 많이 봤을 거예요. 사실이거든요. 이것도 고쳐줘야 하고 저것도 고쳐줘야 하고…. 고쳐주어야 하는 게 한 두 가지가 아니라는 생각에….”
“엄마니까요. 새미를 이 세상 누구보다 사랑하는 엄마니까 그러시는 거잖아요. 새미도 그걸 알고 있을 거예요. 새미는 엄마처럼 되고 싶다는 말을 많이 하는걸요.”
“어머, 우리 새미가 그런 말도 했어요? 제 눈에는 늘 너무 철부지 같아서…. 그래도 새미는 저의 전부예요.”
새미엄마는 눈가가 촉촉했지만 입가에는 미소를 머금으며 뽀득여사를 보며 웃었다. 뽀득여사는 ‘새미가 엄마를 닮았구나’라는 생각을 하였다. 따뜻하고 순수한 마음이 그대로 전달되었다.
“새미가 다섯 살 때 새미아빠와 헤어졌어요. 워낙 바람 같은 사람이었어요. 야생의 기질이 강한 새가 새장 속에 갇힌 격이었지요. 가정이라는 테두리가 그 사람에게는 구속과 속박이었을 거예요. 당시에는 ‘그게 그렇게 어렵냐, 남들 다 그렇게 사는데 뭐가 그리 잘났냐’ 싶은 마음에 미워하기도 하고 그거밖에 안 되는 사람을 남편이라고 믿고 살았나 싶어서 제 자신이 한없이 바보같이 느껴져서 힘들었어요. 비참하더라고요. 그때는 새미도 안보였어요.”
“살다 보면 끝도 없는 나락으로 떨어지는 것 같은 때가 있지요. 손을 뻗어서 넝쿨이라도 잡아야 되는데 손을 뻗을 힘조차 없을 때가 있죠.”
“네, 딱 그런 느낌이었어요. 그렇게 내려가고 내려가다가 어느 날 새미가 보이더라고요. 우리 착한 새미는 늘 제 옆에서 제 손을 잡고 있었는데 한참을 나락으로 내려가다가, 어느 날 문득 우리 새미의 따뜻한 손이, 눈빛이 저를 정신 차리게 하더라고요.”
“우리가 살다 보면, 때로는 억지로 넝쿨을 잡고 애써 기어 올라오지 않아도 그냥 중력에 몸을 맡기고 내려가다 보면 어느 순간 마치 트램펄린에 발이 닿아서 다시 붕 떠오르는 때가 있는 것 같아요. 나락의 바닥에 쿵 머리 박고 죽는 게 아니라 그 바닥이 다시 떠오르게 해주는 트램펄린 일 때가 있지요.”
“네 맞아요. 트램펄린이요. 그래서 그렇게 저는 새미 손을 잡고 지금까지 살아오고 있어요. 그런데 요즘은 제가 우리 새미의 손을 언제까지 잡고 트램펄린을 뛰어야 하는 건지 고민이에요.”
“트램펄린을 상상해 보니, 트램펄린은 같이 손을 잡고 뛰는 것보다는 서로 적당한 거리에서 서로를 보면서 뛰는 게 더 재미있을 것 같네요. 서로 부딪히지도 않고요. 사랑하는 사람은 적당한 거리가 있는 것이 더 좋지 않을까요?”
“어머, 사랑하는 사람은 적당한 거리가 있어야 한다는 말을 또 듣네요. 며칠 전에 우리 아버지가 똑같은 말씀을 하셨었거든요. 신기해요.”
뽀득여사는 입가를 가리며 웃는 새미엄마의 가늘고 여린 손을 바라보며 빙그레 웃었다.
새미엄마는 ‘새미에 이어서 자신도 뽀득여사를 귀찮게 해 드릴 것 같은 예감이 든다’며 수줍게 인사를 하고는 가게를 떠났다. 뽀득여사는 새미엄마가 마시던 커피 잔을 정리하며 ‘역시 새미는 엄마를 많이 닮았어’라고 되뇌며 미소를 지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