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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뽀득여사 Dec 13. 2024

치유소설. 뽀득여사의 거울가게(8)

제7화 불독할매의 새 거울

불독할매의 이야기.

매달 10일은 불독할매에게는 아침에 눈을 뜰 때부터 마음가짐이 달라진다. 다른 날 보다 더욱 거룩하고 더욱 당당해지고 더욱 불독할매의 두둑한 볼 살이 부풀어 오르는 날. 바로 상가임대료 입금일인 것이다. 엄밀히 말하자면 불독할매의 볼 살은 대략 매달 10일 되기 이틀 전부터 조금씩 두둑이 차오르고 눈빛에는 결연한 의지가 타오르는 것이다. 

‘어디 보자. 제니헤어가 지난달 앓는 소리를 내며 나흘이나 지나서 입금했더랬지. 어림없지. 연체는 사절, 체납은 근절이지. 암 그렇고 말고.’


뽀득여사의 거울가게가 있는 상가건물주인 불독할매는 악덕건물주라고 보기에는 어렵다. 재작년부터 이 상가지역 근방의 아파트시세가 오르면서 자연스럽게 인근상가의 임대료가 오르는 분위기일 때 불독할매는 별 신경을 쓰지 않았다. 처음 계약한 임대료를 올리지도 깎지도 않고 그대로 밀고 나가는 것이었다. 이 점을 임차인들도 아는 바이기에 불독할매가 두둑한 볼 살을 흔들어대며 호령을 해도 두툼한 허리춤에 손을 짚고 ‘연체 사절, 체납 근절’을 소리 높여 외칠 때도 ‘그러려니’하고는 넘어갈 수 있는 것이다.





불독할매는 꽉 찬 보름달 마냥 오늘따라 두둑하게 오른 볼 살을 더욱 당당하게 흔들며 아침을 맞이했다. 곡조가 변형된 흘러간 노래의 한 대목을 무한 반복하며 콧노래를 흥얼거린다. 

‘오늘 같은 날은 고스톱으로 치자면 흔들고 고를 또 먹은 거라고 볼 수 있지.’


불독할매는 오늘 임대료가 들어오는 날이자 지방에서 살고 있는 금쪽같은 외아들네가 모처럼 올라오기로 되어 있는 날인 것이다. 사십이 한참 넘도록 변변한 직장도 없는 데다 장가를 못 가서 애태우던 아들이 별안간 상당히 배가 불러온 갓 스무 살을 갓 넘긴 경상도 시골처녀를 데려왔을 때 불독할매는 웃어야 할지 울어야 할지 황당했지만 이내 웃기로 했다. 그리고 아들이 처가네 쪽으로 내려가야겠다고 할 때도 웃기로 했다. 총각귀신으로 늙을 줄 알았는데 ‘왠 굴러온 복덩이냐’란 생각에 그저 ‘좋다 좋다’했다. 그런데 막상 경상도 하고도 매번 들어도 낯설기만 한 어떤 시골 동네로 들어가더니 1년에 아들네 얼굴보기가 ‘가뭄에 콩나기’이다. 


철딱서니 없는 딸내미 고등학교 졸업하자마자 배부르게 만든 천하의 도둑놈(그것도 늙은 도둑놈)을 사위라고 인정해 주는 조건으로 처가네 과수원 일을 돕기로 하고 들어간 처가살이 중인 터라 아들네라고 찾아가기도 쉽지 않은 터였다. 

그래도 ‘좋다 좋다’ 했는데, 떡두꺼비 같은 손주 녀석이 떡하니 세상에 나오고 나니, 불독할매는 고 녀석의 얼굴이 눈앞에 아른거려서 한걸음에 달려가고 싶은 맘이 굴뚝인 것이다. 불독할매의 안방 가장 좋은 자리에 걸려있는 아들 갓난쟁이 적 사진 옆에는 금쪽같은 손주 녀석의 백일 사진이 나란히 자리 잡았다. 


‘아이고, 신통혀라. 씨도둑은 못 한다니께. 어쩌믄 저리 판박이일까. 아이고 이쁜 거.’

불독할매는 마디가 굵고 큼직한 주름진 손으로 손주의 사진을 쓱쓱 문지르며 웃고 또 웃어보는 것이다. 아들내미가 세 돌도 되기 전에 사고로 남편은 허망하게도 세상을 떴다. 그리고 불독할매는 앞뒤 볼 겨를이 없이 팔을 걷어 부치고 살아내야만 했다. 그렇게 사십 년이 훌쩍 지났다.  



느지막한 가을이라 저녁 여섯 시가 넘어가자 금세 어둑어둑 해진다. 동네 상가는 아기자기한 간판 네온등들이 켜지면서 운치 있는 늦가을밤 채비를 하기 시작했다. 해가 진 늦가을 밤공기는 꽤나 쌀쌀하다. 옷깃을 여미며 종종걸음으로 집으로 돌아가는 발걸음들이 어떤 이는 무겁고 어떤 이는 가볍다. 

그 가운데 상당히 무거운 발음을 옮기는 또 한 사람이 있었으니 바로 불독할매 인 것이다. 아침에 그렇게 당당하게 두둑하게 차올랐던 볼은 웬일인지 힘없이 축 늘어져 있다. 


오늘은 점심 나절 즈음 뽀득여사의 가게는 물론이요, 몇 달 전 들어온 2층 피아노학원 그리고 장사가 ‘되네 안 되네’ 우는 소리 하던 제니헤어까지 임대료가 착착 들어온 터인데, 불독할매의 볼살의 바람을 ‘훅’ 뺀 것은 다름 아닌 눈 빠지게 기다리던 아들네가 바람을 맞힌 것이다. 

갓 백일 넘은 금쪽같은 손주 녀석이 아침부터 기침에 설사를 한다며 채비를 하다가 다시 눌러앉았다는 것이었다. 전화를 끊고는 불독할매는 순간 빵빵한 풍선에 송곳이 닿아 ‘펑’ 터져버린 듯 부풀던 마음이 쪼그라들고 말았다.

금쪽같은 손주 녀석이 아프다니 대놓고 서운한 맘을 드러내지도 못하고 ‘아이고 워쩌다 그랬다냐.’를 반복하다가 힘없이 전화를 끊고 말았던 것이다. 

불독할매는 맥이 빠져서 우두커니 앉아 있다가는 ‘이렇게 기운 빠져 있을 내가 아니지.’하는 맘에 ‘끄응’ 소리를 내고는 힘없이 처진 볼살에 조금은 바람을 불어넣고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아직 상가 골목에는 어둠이 채 가라앉지는 않아서 전체적으로 흐린 보랏빛이 살짝 감도는 어스름한 이른 저녁. 미처 해와 달과 별의 에너지와 색감이 완전히 섞이지 않아서 마치 따뜻한 색감의 칵테일의 그러데이션 같은 빛깔이 상가골목에 퍼져 나갈 즈음인 것이다. 


이 묘한 빛깔이 고조되는 상가 골목에 불독할매는 하릴없이 뒷짐을 진채 어슬렁어슬렁 거닐고 있었다. 그리고는 늘 그렇듯 불독할매에게는 그 어떤 궁궐보다도 훌륭하고 자랑스러운 자신의 3층 상가건물을 바라보고 있노라니, 오매불망 학수고대하던 아들네가 못 와서 헛헛했던 맘을 어느 정도는 가라앉힐 수 있었다. 

불독할매는 어느 정도 다시 원기가 회복된 마음에 다시금 볼 살이 두둑이 올라오기는 했지만 왠지 썰렁한 빈집에 들어가고 싶지는 않았다. 바로 그때 뽀득여사의 파란 가게의 문이 문득 눈에 들어왔다.     


“전기난로 같은 거 조심해야 되는 거 알쥬? 저기 6단지 건너편 고깃집 있잖우. 며칠 전에 불나서 난리 났었잖어. 어휴 끔찍 혀라. 날씨 쌀쌀해지니 난로들 꺼내놓던데 늘상 조심 또 조심해야 된다니까.”


괜스레 그냥 들렀다 하기 그래서 불독할매는 뽀득여사에게 마치 크게 당부할 일이 있는 양 심각한 목소리로 ‘자나 깨나 불조심’을 강조하며 무거운 엉덩이를 진초록 소파에 붙이는 것이다. 뽀득여사도 “그럼 당연하지요. 늘 조심 또 조심해야지요.”라고 응수해 주며 따뜻한 차를 잔에 따라주었다. 불독할매는 내심 명분 있는 방문이 된 것 같아 당당한 기분이 되었다.


“그런데 이렇게 모양이 특이하고 예쁜 거울들은 다 어디서 들여오는 거유? 뽀득네 거울은 다른 데서 파는 것과 유별나게 달라유.”

“그런가요? 음 아마 그렇겠네요. 다 임자가 있으니까요. 똑같은 거울은 없거든요. 다 달라요.”

“임자가 있다고요? 뭔 소리인지…. 주문해서 맞춰가는 것도 아닌데 무슨 임자가 정해져 있을라구. 어휴 우리 고상한 뽀득사장님은 가끔 알쏭달쏭한 얘기를 하더라.”

“호호호. 그러게요. 알쏭달쏭하죠. 우리 사는 것도 알쏭달쏭해요. 그렇지요?”


“맞네 맞아! 그래도 요로코롬 예쁜 거울보고 분단장 꽃단장 하면서 살았으면 어쨌을까 싶네.”

“지금부터라도 분단장 꽃단장 하면서 사시면 되지요.”

“에구, 고것도 뽀득사장네처럼 해 본 사람이나 하는 거지요. 평생 눈뜨면 팔 걷어 부치고 소 같이 일만 해 와서 지금 나이에 너무 새삼스러워서.”

“지금 나이가 어때서요? 우리 나이가 어때서요. 그리고 분단장 꽃단장 할 사람과 못할 사람 정해져 있나요? 하고 싶으면 하고, 하기 싫으면 안 하는 거지요. 분단장 꽃단장.”



뽀득여사의 ‘분단장 꽃단장’ 응원에 불독할매는 배시시 웃음이 나오기도 하고 ‘그렇지. 까짓 거 내가 못할게 뭐있남. 분단장 꽃단장’ 하는 생각에 슬쩍 자리에서 일어나서 벽면에 전시된 거울들을 하나씩 훑어보기 시작하였다. 워낙에 뽀득뽀득 잘 닦여진 거울들이라서 그런지 불독할매는 먼지 하나 없는 맑은 거울들에 비친 자신의 주름진 얼굴을 보기가 처음에는 조금 낯설기도 했다. 


하지만 하나 둘 새로운 거울에 자신의 얼굴을 비출 때마다 불독할매는 ‘여기 점이 있었네. 눈가에 깊은 주름이 더 생겼네. 역시 코끝이 도톰한 것이 복 코가 맞나 보네. 머리 파마를 언제 했더라.’ 하면서 거울 앞에서 한참을 얼굴을 요기조기 돌려가며 보고 있었다. 

얼굴을 도리도리 해가며 거울순방을 하는 불독할매를 뽀득여사는 빙긋이 웃으며 바라보았다.


“요거네 요거. 거울이 둥글넓적한 것이 꼭 내 얼굴 같잖어. 뽀득사장님이 여기 거울들은 임자가 있다 하더니 딱 요것이 맘이 드네.”


불독할매는 버스로 두 정거장 가야 하는 이 근방에서 가장 싼 미용실에서 ‘꼬들꼬들 안 풀리게’를 외치며 파마를 하곤 했었다. 하지만 ‘분단장 꽃단장’을 해보기로 한 오늘은 과감하게 제니헤어(나름 헤어디자이너의 자존심을 내세우며 이 동네에서는 멋쟁이들이 찾는다는)에 들어가서는 ‘예쁘게 해 줘 봐유’를 외치며 나름 세련된 파마까지 하고는 뿌듯한 맘으로 한참 밤이 되어서야 3층 계단을 올라갔다. 


안방 가운데에 둥글넓적한 멋들어진 거울을 척 걸어놓고는 불독할매는 또 한참을 얼굴을 도리도리 해 가며 거울 앞에 서 있었다. 그러고 보니 오늘 뽀득여사의 거울가게를 들어간 이후로 아들네가 못 와서 헛헛했던 맘이 손톱만큼도 떠오르지 않았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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