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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뽀득여사 Dec 27. 2024

치유소설. 뽀득여사의 거울가게 (10)

제9화 티끌 하나도 용납이 안 돼

“먼지가 묻지 않는 거울이 있나요?”

날카롭고 신경질적인 말투였다. 손님은 마스크를 쓰고 하얗고 얇은 면장갑을 끼고 있었다. 길 건너 약국 비닐봉지 안에는 식염수와 알코올 통이 여러 개 들어 있었다. 깡마른 체구에 긴 생머리는 잔머리가 한 올도 빠지지 않을 정도로 단단히 묶어 놓았다. 키가 큰 편이기도 하지만 베이지색 니트로 위아래 한 벌을 입고 있어서 키가 더욱 커 보였다.


뽀득여사는 여느 때와 다름없이 조용하지만 반갑고 친절한 목소리로 인사를 하였다.

“안녕하세요. 어서 오세요. 어떤 거울을 찾으시는데요?”

“아까 말했잖아요. 먼지가 잘 안 묻는 거울이 있냐고요.”

손님은 뽀득여사의 친절한 인사는 별 관심이 없다는 듯 날카로운 눈매로 가게 안의 거울을 바코드를 찍듯이 꾹꾹 눈에 담으며 날카롭게 말했다.


“글쎄요. 특별히 먼지가 잘 안 묻는 거울이 따로 있을 것 같지는 않은데요. 요즘은 워낙 공기가 안 좋아져서 이런 도심에서는 먼지 안 묻는 거울로 관리하기가 참 쉽지 않지요.”

“아무리 좋은 헝겊에 좋은 세제를 묻혀서 닦고 또 닦아도 금방 먼지가 앉더라고요. 게다가 왜 그렇게 거울에 묻은 먼지는 더 잘 보이는지, 하루 종일 신경 쓰여서 도무지 다른 일이 손에 안 잡혀요. 어휴 살기 힘들어.”

이 예민한 손님은 미간에 깊은 세로 주름을 세우고는, 벽면에 있는 거울들의 먼지를 모조리 다 찾아버리기라도 하려는 듯 고개를 쭉 앞으로 빼고 거울을 훑고 있는 모습이 영 불안해 보였다.


뽀득여사는 속으로 ‘오늘은 그다지 거울들을 열심히 닦아 놓지 않은 것 같은데’ 싶은 마음이 들면서 마음이 덩달아 불안해지는 것 같았다. 손님의 정서 전파력이 강하기는 한가 보다. 구석에 있던 아가는 몸을 더욱 둥그렇게 웅크리고는 꼬리를 최대한 말아서 엉덩이 밑으로 넣고는 잠자코 있었다.





뽀득여사는 손님이 편하게 ‘거울순례’ 아니면 ‘먼지순례’를 잘하시도록 배려(사실 평온했던 가게 안의 기류가 별안간 불안한 기류로 바뀐 것을 다시 제자리로 돌려놓고 싶은 맘에서 비롯된)하는 차원에서 조용히 그리고 천천히 커피를 잔에 따르며 기다리고 있었다.


“어휴, 어렵다 어려워. 오늘 하루 종일 백화점에 마트에 다 돌아다녔는데 먼지 하나 없는 거울은 찾기 어렵네요. 여기 거울들도 역시 먼지가 있어요. 어휴, 이것도 저것도.”

뽀득 여사는 피로함과 실망감이 가득한 손님의 지친 표정을 보니 순간 안쓰럽기도 하고 딱하기도 했다. 퇴짜를 맞을 것 같기도 했지만 뽀득여사는 부드럽게 ‘차 한잔하고 가시겠는지’ 권해 보았다. 민망한 퇴짜를 각오했는데, 의외로 손님은, 조금은 방어적인 태도를 보이기는 했지만 순순히 초록 소파 쪽으로 다가왔다. 아마도 하루 종일 ‘먼지 없는 거울’을 찾아 헤맨 지침과 허탈함에 맥이 빠져 있는 것 같았다. 그래서 좀 쉬었다 가고 싶어졌을까!


뽀득 여사는 특별히 손님용 커피잔을 한 번 더 살펴보았다. 혹시 먼지라도 묻어있나 싶어서. 역시 이 손님은 예상대로 초록 소파를 장갑 낀 손으로 한번 훑더니 자리에 조심히 걸터앉았다. 그리고는 또 예상대로 커피잔을 눈높이까지 들어 올리고는 3초는 탐색(먼지 탐색의 최소 시간인 듯 싶다)하고는 안심이 되었는지 입가로 잔을 가져가는 것이다. 뽀득여사는 일부러 아무렇지도 않은 듯 잠시 눈길을 다른데 두며 기다려주었다.   

     

“참 피곤하게 산다 싶죠? 저도 알아요. 지금 사장님이 어떤 생각을 하고 계시는지요.”

손님은 아까보다는 덜 날카로운 말투로 힘없이 말했다. 그리고는 살짝 민망한 미소를 보이며 금방 입을 대고 마신 커피잔을 티슈로 닦아내고 또다시 홀짝 커피를 마셨다.



“저도 알고 있어요. 제가 강박증이 있다는 거요. 한마디로 정상이 아닌 거죠. 하하... 그래도 다행히 나 멀쩡한데 왜 그러냐고 바득바득 우기는 정도까지 맛이 가지 않은 게 다행이라면 다행이다 싶어요.”




“정상이 아니라는 기준이 무엇일까요. 참 어려워요. 정상 아니면 비정상 이렇게 나눌 수 있는 것일까요. 이 복잡한 사람의 마음을요. 저는 잘 모르겠어요.”

뽀득여사의 말에 예민한 손님의 지쳐있던 눈빛에 얼핏 생기가 도는 것 같았다.


손님은 오늘 하루 종일 발품 팔며 다녀도 마음에 드는 거울을 사지 못한 속상함과 ‘먼지’의 강박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자기 자신에 대한 자괴감에 어디에서라도 분풀이를 하고 싶은 맘이 들었다. 그러던 차에 우연히 ‘뽀득여사의 거울가게’ 간판을 보고 들어온 것이었다.

‘분명히 여기에도 없을 거야’하는 마음으로 ‘왜 그런 게 없냐’고 딴지를 걸 태세로 들어왔던 것이다. 역시 여기에도 ‘먼지 하나 없는 거울’은 없었다. 그런데 다른 게 있었다. 바로 이 묘한 뽀득여사가 있었던 것이다.

손님은 최근 들어 이렇게 편안한 마음을 가져 본 적이 있었던가 싶기도 했다. 그리고 이 묘령의 거울가게 주인과 마주 앉아 이야기를 하는 이 순간,  자신도 모르게 ‘먼지와의 전쟁’이 휴전 상태에 들어가 있는 듯했다. 예민한 이 손님은 조금은 얼떨떨한 기분에 순간 멍하게 앉아있었다. 뽀득여사는 그 침묵의 순간을 깨지 않고 또 기다려주었다. 우리의 뽀득여사의 최고 특기는 바로 ‘편안하게 기다려주기’.




“어릴 때 우리 집은 참 지저분했어요. 먼지가 여기저기 쌓여 있었어요. TV 위에도, 장식장 위에도, 심지어 싱크대 선반 위에도 먼지가 켜켜이 쌓여 있었어요. 방바닥 구석에는 먼지뭉치가 민들레 홀씨처럼 이리저리 굴러다녔죠. 아주 어릴 때는 먼지뭉치를 후후 불며 놀았던 기억도 나요.”

“부모님이 많이 바쁘셨을까요. 먼지는 예나 지금이나 참 금세 쌓이죠. 사람 사는 곳에는 늘 찾아와요. 반갑지 않은 동거인처럼요.”


“부모님은 시각장애인이셨어요. 그나마 아버지는 조금 나은 편이셨지만 어머니는 1급 시각장애인이셨거든요. 부모님은 그 나름 최선을 다 하셨어요. 그렇지만 손이 잘 닿지 않는 곳의 먼지까지 닦아가며 살아가시기에는 벅차셨겠죠.”

뽀득여사는 조용히 고개를 끄덕이며 손님의 커피잔에 따뜻한 커피를 천천히 따라주었다.



“어릴 때는 잘 몰랐는데 크면서 집안의 먼지뭉치들이 너무 눈에 거슬리더라고요. 그러다가 고등학교 때 어느 날 부모님이 두 분 다 집에 안 계신 날이 있었어요. 집안의 모든 먼지를 다 없애버리자 작정을 했지요. 두 팔을 걷어 부치고 하루 종일 닦고 닦고 또 먼지가 내려앉으면 또 닦았어요. 속이 다 뻥 뚫리더라고요. 기분이 날아갈 것 같았어요.”


“그럴 때 있어요. 맘 잡고 청소하고 나서의 상쾌함. 정말 기분 좋지요.”

“네 그런데…, 일이 터졌어요. 저녁에 방에서 기분 좋게 공부를 하고 있었는데 갑자기 우당탕 소리가 나더니 엄마의 비명소리가 들렸어요.”

“네? 무슨 일이 일어 난 거죠?”


“엄마가 무릎을 부여잡고 웅크리고 계시는 거예요. 엄마의 무릎에서 피가 흐르고 있었어요. 아빠는 허둥지둥 양팔을 휘저으며 엄마 주변의 물건들을 치우고 계셨고요. 제가 먼지를 닦는다고 집안의 물건들을 이리저리 빼고 정리하다가 그만 우리 집안의 ‘원래 그 자리’ 원칙을 깬 게 문제였어요.”


“원래 그 자리 원칙이요?”


“네. 두 분 다 시각장애인이시다 보니 우리 집안의 물건을 늘 원래 그 자리에 있어야 하거든요. 정확한 위치의 가정 살림 안에서는 부모님은 마치 두 눈이 보이시는 것처럼 생활하실 수 있었던 건데…. 바보같이 먼지에 집착한 나머지 그 중요한 원칙을 생각 못했던 거예요. 아버지는 제게 불같이 화를 내셨어요. 그렇게 무섭게 화내시는 모습은 그날이 처음이었고 그 이후에도 없었지요. 그리고 저는 그날 이후로 다시는 청소를 하지 않았어요. 부모님과 함께 사는 동안에는요. 제 방만 빼고요. 저는 제 방에 한 해서는 먼지 하나도 용납하지 않겠다 싶은 마음이 들었어요.


“그럼 다시 집안의 먼지는 쌓여갔겠군요. 먼지에 대해 참을 만하셨나요?”

“아니요. 오히려 반대였어요. 집에서는 대부분 제 방에만 들어가 있으려고 했어요. 밥도 제 방에 가지고 들어와서 먹기가 일쑤였고요. 부모님은 저의 이런 태도를 혼내시지 않았어요. 지금 생각해 보니 참 못돼 먹은 딸년이었네요.”

“왠지 부모님의 마음이 느껴져서 마음이 아리네요.”

“맞아요. 부모님은 늘 제게 죄 지은 사람처럼 행동하셨어요. ‘못난 부모 만나서 고생이 많지’라고 ….”

손님은 울먹이는 목소리에 말끝을 맺지 못하였다. 손님은 그렇게 또 잠시 침묵했다.



“그렇게 시작됐어요. 내 공간 내 물건에 대해 티끌 먼지도 묻히고 싶지 않은 강박이요. 그러다 보니 자꾸 더 집착하게 되고 예민해지고, 한 마디로 삶이 피곤해지더라고요. 성인이 돼서 서울로 올라오면서 부모님 집에 이 핑계 저 핑계를 대며 잘 안 가게 되고요. 부모님이 얼마나 저를 보고 싶어 하시는지 잘 알아요. 그런데 부모님은 그 마음조차도 쉽게 꺼내시지 못해요.”
“그러실 것 같아요. 손님이 털어내려고 해도 털어지지 않는 먼지 뭉치의 진짜 정체는 무엇일까요? 마음의 먼지 뭉치는 무엇일까요?”




‘쿵’. 뽀득여사의 질문에 손님은 보이지 않는 무언가에 세게 부딪히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맞아요. 저는 털어내고 싶었던 거예요. 나의 부모님의 존재를, 나의 근원을요. 털어내려 해도 털어내려 해도 절대 털어지지 않는다는 것을 알기에 나는 더욱 악착같이 털어내려 했던 것 같아요.”


손님은 어깨를 들썩이며 흐느끼기 시작하였다. 뽀득여사는 조용히 티슈를 접어 건네주었고 기다려 주었다. 그 어떤 말도 하지 않은 채. 거울 벽면을 비추는 작은 할로겐 불빛 아래 간간히 작은 먼지 알갱이 몇 개가 조용히 부유할 뿐이었다.




손님이 가게를 나가고 한 참 뒤에 뽀득여사는 손님이 장갑도 마스크도 다 벗어놓고 간 것을 알았다. 뽀득여사는 아마도 그 손님은 자신이 장갑도 마스크도 하지 않은 것에 크게 개의치 않고 있을 것이라는 생각을 하면서 장갑과 마스크를 종이 봉지에 넣어 높은 서랍장 구석에 보관하였다.



‘할머니 오늘은 거울 안 닦고 불을 끄시네요.’

늘 가게 문을 닫기 전에 뽀득여사는 융 타월로 정성껏 가게의 거울들을 ‘뽀득뽀득’ 닦고는 할로겐 부분 조명들을 끄곤 했다. 그런데 오늘은 그러고 싶지 않았다.


“그래 아가야, 오늘은 닦아내고 싶지 않네. 오늘 하루 동안 거울에 내려앉았을 먼지를.”

‘왜요 할머니? 깨끗하면 좋잖아요.’

“호호호, 그래 아가야. 물론 깨끗하면 좋지만 때로는 있는 그대로, 주어진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도 좋을 테니 말이야.”

‘옳으신 말씀이에요. 그럼 저도 그런 차원에서 목욕 주기를 쭈욱 늘려보면 참 좋겠어요. 그렇죠. 할머니?’

“하하하, 요 녀석 보게. 그 꼼수에는 넘어가주기 싫은데. 그러고 보니 오늘이 바로 목욕하는 날일세. 우리 아가 준비됐지?”

‘에이, 괜히 말했네. 꾸이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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