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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아버지 3

대나무 울림통에서 아버지를 만나다

by 요가강사조재자

속은 비어 있기에 조금만 바람이 불어도 숲 전체가 흔들려 온통 허한 소리를 쏟아내는,

그렇게 마음의 빈자리를 앓는 것으로 스스로의

존재를 가장 잘 알리는 대나무처럼 말입니다.

-밤은 책이다. 중에서


시골집 퇴청마루에서 바라보는 대나무숲. 어느덧 잎새들이 바람 따라 흔들린다.

흔들리는 바람결에 살포시 '쉼표'를 찍으러 온 이름 모를 새도 따라 흔들린다.

두 마리의 새들은 한 곳의 대나무에 앉으려다 말고, 샛바람에 어쩔 줄 몰라 날갯짓만 퍼득이다, 이내 사라진다.

그렇게 한 참 멍하니 바라보다 시선이 멈춘다.

마당 한편 나무지게를 어루만지는 아버지의 무딘 손길에 시선이 절로 간다.

얼기설기 역어낸 거친 나뭇결(a자의 모양으로 다듬기 위해 깎아낸 나뭇껍질과 톱밥들이 여기저기 날아드는 것 같은 환영에 사로잡힌다)에서 아버지와 함께한 세월을 본다.

아버지의 젖은 땀방울을 지고 논두렁, 밭두렁, 거친 산과 들녘을 다녔을 지게를 쓰다듬어 본다.

아버지는 매일같이 들녘을 왔다 갔다 하며 지게에 가을 추수철이 되면 콩이나, 팥. 고구마나 무를 지고 나르곤 하셨다.

김장철이 다가오는 겨울에는 배추 여러 포기를 가득 담아 집 앞 밭에서 집으로 나르셨다.

무거운 줄도 모르고 두세 번씩이나 어깨에 지게를 메고 나른다.

지게를 내려놓고, 지팡이를 지지하는 아버지의 손엔 검게 논바닥이 쩍쩍 갈라진마냥 마디마디와 손톱밑동이 성한 곳이 없다. 딸인 나의 마음이 애달프다.

그런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아버지는 지고 온 배추포기를 마당중앙에 내려놓는다.

내려놓는 손길이 더딘 걸 알아차란다.

아버지의 기력이 예전만큼 좋지 않다는 걸 이제야 안다.

갈라진 손마디와 엉거주춤하는 발걸음을 이제야 알아차린다.

한 번 딸인 나의 마음이 애달프다.

마침, 대숲에서 바스락 거리는 소리가 나며,

산비둘기가 날아간다.

(대나무통 울리는 스산한 가을바람도 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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