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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아버지 1.

그 이름

by 요가강사조재자

<<우리 아버지 그 이름>>

1940년에 3남 1녀의 온 산이 병풍이 둘러쳐진 시골마을에서 우리 아버지는 태어나셨다.

집성촌으로 이루어진 우리 마을.

한집건너. 건너가 사촌이고, 오촌이었다.



아버지는 둘째로 태어나셨지만, 본의 아니게 장남 역할을 하셔야 했다.

큰외삼촌은 지금 어디에 계신지 생사를 알 수가 없다.

돌아가신 할머니얘기에 의하면, 6.25 발발하기 전 여기저기 떠돌아다니는 행상인을 따라 대구로 나갔다 한다. 그 후, 백방으로 수소문을 해 보았지만 생사조차 알 수가 없다고 하셨다.

큰외삼촌 때문에 6.25가 발발해도 고향을 떠나지 못하고, 시골 산속에서 전쟁이 끝나길 기다리셨한다.

​큰외삼촌이 돌아오지 않을까? 하는 마음으로 기다리셨다한다.

살아 있을 거라는 확신에 할머니께선 제사도 모시지 않으셨단다.

그 기다림은 돌아가 시 전 할머니의 마음에 영원한 숙제로 남으셨다.


장남 역할을 해야만 했던 아버지의 어깨는 무거웠 다. 막내삼촌도 일찍이 서울로 나가 홀로 생활했었다고 한다. 그러니, 집안일은 아버지 혼자의 몫이었다. 하루가 멀다 하고 들판에선 논농사밭농사, 산에선 나무를 베어 장작을 패는 일이 하루 일과가 되었다.

그렇게 무료한 하루하루 보내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아버지 나이 20대 때 일어난 일이다.

호기심에 동네사촌 집에 드른것이 "화"가 되었다.

동네사촌집에 사는 비슷한 나이 또래 여자가 있었다. 무료함을 달래려 그 집으로 들어가 말동무한 것이, 되돌릴 수 없는 아픈 상처가 되어 평생 아버지를 괴롭혔다.



사촌여자에게 건넨 말 한마디를 오해한 친척분들 5명이(30대 중반) 몽둥이와 발길질로, 그 자리에서 아버지를 무자비하게 폭행했다. 어른들의 매질은 십여분 계속되었다.

​그날 이후 아버지는 이상해졌다.

20대 중반을 넘긴 청년은 잠결에 경기를 일으키기고 했고, 잠꼬대 중에 크게 소리를 지르는 것은 다반사였다고 한다. 식구들도 두려움에 떨었어야 했었다.

그 사실을 알고도 할아버지는 묵묵부답이셨다 한다.

친척분들이고, 동네가 시끄러워지는 것을 싫어하셨기 때문이란다.

어린 아들의 억울한 심정을 조금이라도 알았줬더라면 한평생 상처로 살아가지 않아도 될 것이다.



조금은 할아버지를 원망해 본다

아버지의 얘기를 할머니와 고모에게 전해 듣는 순간,

살이 떨리고, 온몸에 경련이 일었다.


어른들의 무자비한 만행에 한 청년의 인생은 짓밟혀 버렸다.

밤과 낮 공포의 두려움 속에 떨어어야 했을 우리

아버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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