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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희망사항 Dec 27. 2023

세상은 연결되어 있다.


큰고니는 백조라 불리는 오리과의 흰 새이다. 부산 인근에서는 겨울철 낙동강 하구 을숙도나 맥도로 찾아가면 큰고니를 만날 수 있다(아직 한 번도 찾아간 적이 없다). 크기는 약 150cm, 무게는 7~14kg 정도이다. 1960년대에는 '동양 최대의 철새 도래지'라고 불렸던 낙동강 하구가 명성을 잃어버린 지 오래이다. 새들이 많이 찾아온다는 건 분명 그 지역이 생태적으로 건강하다는 것인데, 짧은 수 십 년의 시간 동안 을숙도의 환경이 너무나 급격하게 달라졌다. 인공적인 구조물인 하굿둑, 각종 산업단지나 교량 등은 먼 거리를 이동해 찾아온 큰고니들에게 당황스럽고, 때로는 비행에 방해가 되는 존재들이다.

1987년에는 낙동강 하굿둑을 건설했다. 강물에 바닷물이 섞이는 것을 막아 농업용수, 생활용수로 활용하고, 홍수를 방지하려는 목적이었다. 환경 훼손을 이유로 하굿둑 건설 반대 여론이 많았지만 끝내 건설되었다. 기수역(강물이 바다로 들어가 바닷물과 서로 섞이는 곳)의 염분 농도가 달라지고 큰고니가 좋아하는 새섬매자기라는 식물의 군락지가 급감했다. 기수역에 살아가는 다양한 생물들이 사라지고, 결과적으로 생태계는 균형을 잃었다.

약 30년이 지나 수문을 열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졌고, 2019년부터 점진적으로 개방하게 되었다. 2021년부터 1년간, 총 10개의 수문 중 단 1개 만을 수시 개방했는데, 민물장어와 연어가 모습을 드러냈고, 재첩도 돌아왔다. 다행히 하굿둑을 만들기 전의 모습을 아주 조금씩 보여주고 있는 상황이다.

낙동강하구에코센터에서는 2007년부터 매년 겨울이면 매일 400kg의 고구마채를 만들어 큰고니들에게 나눠준다. 사람을 경계하는 큰고니가 마치 반려동물처럼 고구마채를 나눠주는 사람을 기다리고 있는 모습을 영상으로 보았다. 이건 분명 자연스럽지 못하다. 자연에 인간이 개입하지 말아야 하지만, 우리가 환경을 이따위로 만들어놨으니 10년이고 20년이고 해야 할 일이다(임시방편 맞습니다). 한편 새섬매자기를 심고 복원하고자 노력 중인데, 아직은 큰고니의 배고픔을 완전히 해결할 상황이 아니다. 머무는 동안에도, 다시 비행하기 위해서도 충분히 먹어야 하는데, 배고파서 비행을 마치지 못하면 어쩌나 하는 걱정이 든다.

그렇다면 원래 살던 곳에서는 아무 일이 없을까? 큰고니는 러시아와 중국, 몽골의 접경 지역 같은 곳에서 주로 번식한다. '몽골'이라 하면 말이 달리는 드넓은 초원이 생각나고 밤하늘을 가득 채운 별의 모습이 떠오른다. 내가 생각하는 몽골의 이미지는 딱 거기까지였다. 지금 몽골의 모습은 예전과 많이 다르다. 2020년 몽골 발표에 의하면 국토의 76%가 사막화(1990년대 40%) 진행되고 있고, 몽골의 평균 기온 상승은 지구 평균기온 상승 속도보다 높다.

몽골의 대표적인 특산품인 캐시미어가 사막화의 원인 중 하나이다. 캐시미어 수요가 급증하자 많은 사람들이 소, 말, 양, 낙타보다는 염소를 키우기 시작했다. 캐시미어 스웨터를 생산하려면 5마리의 털을 모아야 한다. 몽골의 인구가 300만인데, 키우는 염소는 인구의 10배인 3000만 마리이다. 염소도 소처럼 메탄을 만들어내는 반추동물이다. 염소는 식물의 뿌리까지 먹는 탓에, 염소가 지나간 자리에는 다시 식물이 자라기 어렵다. 빠른 속도로 사막화가 되는 몽골은 사람뿐만 아니라 큰고니에게도 점점 살아가기 힘든 환경이 되는 것을 의미한다. 여행 기념품으로 너도나도 구입한 캐시미어가 몽골의 사막화와 기온 상승을 부채질하고 있다. 모래폭풍의 발생 간격도 점점 짧아지고 있으며, 황사가 되어 우리나라에도 나쁜 영향을 준다. 이 정도면 이 세상 모든 것은 연결되어 있다고 말할 수 있지 않을까.

며칠 뒤 큰고니를 만나러 낙동강 하구에 갈 예정이다. 예전에 큰고니를 보았다면 '와~ 아름답다'라며 그저 감탄했겠지만, 지금은 생각이 많다. 그들이 먼 길을 이동하면서 힘들지나 않았을지, 겨울을 나기 위해 택한 이곳에서 배고프지 않을지 걱정이 앞선다. 매년 낯선 곳이 되어 가는 이곳을 원망하지 않을까. 자연의 일부일 뿐인 우리 인간이 제발 다른 생명을 가진 존재를 배려하는 삶을 살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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