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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희망사항 Dec 25. 2023

정리하자


초등학교 1학년 수학 책에는 분류의 개념이 나온다. '초록색끼리 모으세요, 삼각형끼리 모으세요.'
내가 생각하는 정리의 개념은 바로 "분류"이다. 같은 것끼리 모아놓기, 성질이 다른 것은 섞이지 않게 하는 것. 원칙은 간단하게 보이지만 정리가 마냥 쉽지는 않다. 빨래건조대에 세탁물 비닐이 걸쳐져 있다면, 책상 위에 옷걸이가 있다면, 소파 위에 책이 있다면 분류가 잘못되었다, 즉 정리가 안된 삼황이다. 모두 우리 집에서 가끔 볼 수 있는 풍경이다.

결혼을 한 후, 매일 정리를 하고 청소를 한다. 물건이 제자리에 있는 것이 중요하다. 누구든 어렵지 않게 찾도록 하기 위해서다. 있어야 할 곳에 없는 물건을 찾는 것은 굉장히 짜증 나는 일이다. 겪어봐서 잘 안다.

매일 정리한다고 말하는 내가 처음부터 정리를 잘하는 사람이었냐고 묻는다면 절대 아니다. 학창 시절, 책상 앞에 앉아서 시간을 안 보내다 보니, 책상은 그야말로 '임시 보관소'가 되었다. 물건이 쌓이기만 하는 장소. 그리고 부끄럽게도 청소는 엄마가 해 주셨다. 학생 때는 그것이 당연한 줄 알았다(쓰다 보니 점점 더 부끄러워진다). 어쩌다 책상과 방을 정리하려고 호기롭게 시작했다가 정리가 반도 마무리되지 않았는데 지쳐버렸고, 나머지는 대충 정리해 버린 적도 여러 번이다. 큰 결심을 하고 대청소를 하는 것은 그리 효과적인 정리 방법이 아니다. 여기서 교훈-정리는 자주 조금씩 하는 게 훨씬 효율적이다.

찬희를 키워보니 찬희가 날 닮았다. 동거인에게 물어보니 어렸을 적에도 정리를 잘했다 한다. 나와 다르군! 자기 방 책상에서 공부하지 않고 식탁이나 내 책상에서 한다. 정작 찬희 책상에는 예전 내 책상처럼 물건이 널브러져 있다(너무나 익숙한 모습이다!). 보다 못해 "책상 정리 좀 하지?"라는 잔소리를 하면 그제야 주섬주섬 치운다. 어쩜 예전의 나랑 꼭 같다(그 시절 엄마의 마음을 이제야 이해해요). 저.... 혹시 정리 못하는 유전자가 따로 있는 겁니까?

만약 자기 공간의 정리나 청소를 다른 누군가가 해주는 것을 당연하게 여긴다면, 이것은 우리가 지구를 대하고 있는 방식과 흡사하다. 오로지 편한 것과 이익이 되는 것만 취하고 주변(환경)이야 어찌 되든 나머지는 나 몰라라 하며 책임지지 않는 모습. 내가 머무는 공간조차 아끼는 마음이 없는데, 환경을 생각하고 지구를 위하는 마음으로 연결될 수 있을까? 내 공간에 대한 보살핌은 지구에 대한 애정으로 이어진다.

집집마다 냉장고 크기는 점점 커져가고 내용물이 가득하다. 그런 경우 깊숙이 무엇이 들어있는지 속속들이 알기 어렵다. 분명 필요해서 구입했는데, 집에 와서 보면 똑같은 것이 있다. 쇼핑하느라 돈과 시간을 지출했다. 냉장고를 자주 정리하면 불필요한 식재료를 안 사게 된다. 더 중요한 것은 사용하지도 않고 상해서 버려질 식재료가 줄어든다. 다들 한 번쯤 냉장고 구석에서 상해 가는 콩나물 봉지를 발견한 적이 있을 테다. 냉장고 앞 리스트를 적거나, 아니면 한눈에 내용물이 보이도록 정리하자. 정리하면 돈과 시간을 아낄 수 있다.

다큐 <지구를 위한 옷이 없다>에서는 비닐포장을 뜯지 않은 옷과 새 신발이 초록색 의류수거함에 들어있었다. 결국 불필요한 소비를 했다는 얘기인데, 장담컨대 그분(?)이 정리를 잘할 리가 없다. 버리는 사람은 누군가에게 도움이 될 것이라 믿고 싶겠지만 냉정하게 말하면 해를 끼치고 있는 것이다. 수거함 속 옷들은 대부분 제3세계 국가에 보내져 환경을 해치는 쓰레기가 되었다. 싼 가격에 샀으니 안 입고 버리더라도 큰 손해 보지 않았다고 생각하겠지만 내 지갑에서 나간 비용만 지출이 아니다. 지구의 입장이 되어보자. 한정된 자원을 썼고, 누군가의 노동력을 이용했고, 사용되지도 않고 버려졌다. 소각되거나 매립될 때 배출되는 온실가스는 기후 위기를 더 부채질한다. 이 비용은 절대 저렴하지 않다.

다들 커다란 집에서 살기를 원하고, 집이 좁다고 불평한다. 알고 보면 대부분의 공간을 물건에게 내어주고 정작 사람이 사용할 공간이 적다. 우리는 지치지 않고 소비하는 것이 미덕으로 여겨지는 자본주의 시스템 안에서 살고 있다. 지구 입장에서 '과잉생산, 과잉소비'는 미덕이 아니다. 오히려 적게 생산하고 아껴 쓰는 것을 더 좋아한다. 물건의 양이 적을수록 정리가 쉽고, 눈에 보이는 물건은 오래 사용할 수 있다. 그런 삶이라면 여유로움은 덤으로 따라온다. 모두가 커다란 집만큼이나 여유로운 삶을 원한다. 누군가를 돌보고, 주변 사람을 챙긴다는 것은 시간적, 마음의 여유에서 나온다. 또 내 주변을 돌본다는 것은 더 나아가 지구를 아끼는 마음으로 확장된다.

정리를 한다는 것은 친환경적으로 산다는 말이다. 매일 정리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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