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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희망사항 Dec 19. 2023

가죽은 동물에게서 왔습니다만

10월 어느 토요일, 학생진로체험 행사에서 양산학부모그린멘토 이름으로 체험부스를 진행했다. 자투리가죽을 이용해서 연필 보호캡을 만들어보고, 나무 대신 헌 신문지로 압축해 만든 재생연필을 함께 주는 시간을 마련했다.


자투리 가죽을 보여주면서 이야기를 시작한다.

"이게 뭘까요?"

"가죽이요. "

"네, 가죽 맞아요. 잘 알고 있네요. 이건 소가죽이에요, 소가죽으로 만드는 제품이 무엇이 있을까요?"

"신발, 가방이요."

"맞아요, 옷이나 벨트도 가죽으로 만들기도 해요. 소가 도축되고 나서 가죽을 사용하는데 원래의 가죽 그대로 우리가 사용할 수 있을까요?"

고개를 젓거나 사용할 수 없다고 학생들이 대답한다.


"그대로 사용할 수 없겠지요? 가죽제품의 다양한 색깔, 디자인, 패턴으로 만들려면 공장에서 화학제품을 이용한 가공 처리를 여러 번 거쳐야 해요. 소는 살아있는 동물이었어요. 공장에서 생산한 제품처럼 네모반듯하지 않아요.

원하는 패턴 모양으로 재단을 하고 나면 부위(?) 별로 두께가 달라서 필요한 부분보다 자투리가 생각보다 훨씬 많아요. 두께도 균일하지 않고요. 지금 연필캡을 만들려고 가져온 이 조그만 조각들을 옆 친구 거랑 비교해 봐요. 두께가 모두 다른 걸 알 수 있어요."


"가축을 여러 차례 처리 과정을 거치면서 환경오염을 발생시키고요. 특히 수질오염이 심해요. 그렇게까지 해서 이 가죽을 염색하고 가공했는데, 일부분만 사용하고 나머지가 그냥 버려지면 너무 아깝지요?

여러분이 직접 자투리 가죽을 이용해서 10분 정도 바느질을 하면 연필심을 보호하는 연필캡으로 유용하게 사용할 수 있어요. 대신 잃어버리지 않아야 오래오래 사용하겠지요?"


"자 이제 바느질을 해볼까요?"


이 바느질은 가죽 전용 실로 홈질을 시작해서 끝까지 갔다가 다시 빈자리를 채우며 돌아온다. 초등학교 4학년 때 학교에서 홈질, 시침질, 박음질 등을 배운 기억이 난다. 요즘에도 6학년 실과시간에 바느질을 해보는데, 당연히 바느질이 익숙하지 않다. 아마 반짇고리가 없는 집도 제법 있지 않을까. 간단한 바느질조차 다른 이의 손을 빌리는데 익숙하다.


가죽의 뜻을 사전에서 찾아보니 '동물의 몸을 감싸고 있는 질긴 껍질, 동물의 몸에서 벗겨 낸 껍질을 가공해서 만든 물건'이다. 죽은 동물의 껍질로 만든 제품이라면 거부반응이 들 것 같은데, '천연가죽제품'이란 말에 동물은 온데간데없고, 그저 질이 좋고 값나가는 성품으로만 인식된다.


소를 원래 가축으로 키웠으니, 고기와 부산물을 섭취하는 것도 당연하고(본래의 목적에 맞으니) 가죽으로 제품을 만들기까지 하니 이 얼마나 효율적인가 싶었고, 소는 버릴 게 하나도 없는 유용한 동물이라 생각했었다. 완전히 인간 중심적인 관점이다. 가죽은 사람의 피부를 낮춰 부르는 말로도 사용한다. '뼈와 가죽밖에 남지 않았다'는 예문을 떠올려보자. 만약 소가죽이란 말 대신 소피부 자켓, 소피부 구두, 소피부 가방이라 부른다면 직접적으로 동물에서 온 거라는 생각에 누군가는 거부반응이 올 것이다.


 역시 예전부터 가방은 뭐니 뭐니 해도 소가죽을 선호했었다.  2019년 12월, 마지막으로 소가죽 가방을 구입했다. 고민고민해서 디자인을 고르고, 최저가를 찾아 인터넷을 뒤졌으니 백 퍼센트 현명한 소비라고 믿었다. (팬데믹 상황에 새 가방을 메고 외출할 일이 없었다는 안타까운 사실도 전한다.) 환경을 공부하고, 비거니즘을 조금씩 알게 되면서 앞으로는 가죽 가방을 구입하지 않기로 맘먹었다. 이제는 가죽 가방이 아니어도 충분히 괜찮다.


우리가 큰 고민 없이 구입하는 가죽제품이 한때는 숨 쉬고 살아있었던 동물이었음을. 우리가 원하는 가죽제품으로 만들기 위해 환경이 오염된다는 점을. 게다가 우리는 넘치게 가죽제품을 소비한다는 것을 기억한다면, 조금이나마 세상이 달라지지 않을까 하는 작은 기대를 품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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