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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우구스티노 Jan 16. 2023

술 한잔 못하면서 팀장이 되기까지는..

11 | 고군분투. 그러나 앞으로는 달라지겠죠.


- 이 글만 보셔도 되지만, 이전 글과 시점과 장소가 이어지는 에피소드입니다 -


나의 자기소개가 끝나고, 위로의 눈빛을 보내던 간사 선배도 분위기가 좋아졌다고 생각하는지 목소리에 자신감이 붙은 듯했다.

"좋습니다. 신입사원이 저희 기획부문에 인상을 확 박았습니다. 자 그럼 신입사원의 건배사를 듣겠습니다."

‘자기소개에 건배사 그리고 소맥원샷 쓰리콤보. 예상대로다. 건배사까지는 준비했지만 그 다음은.. 휴.‘


그렇게 건배사를 하게 된다. 내가 술 먹고 쓰러지면서 더욱 인상을 박게 된 것은 이제부터 시작된다.




"신입사원으로서 처음 자기소개는 잘 못 했지만, 선배님 보고 바로 배워서 열심히 한 것처럼 저는 금방 배우고 노력할 것입니다.“

준비한 건배사 앞에 순발력으로 발휘하여 말을 채워 넣는다. (순발력과 말빨에 있어서 대학 때까지 여러 경험으로 인지하고는 있었으나, 회사에서도 통할 수 있다는 자신감은 좀더 훗날의 일이다.)


그리고 준비한 건배사를 외친다. 건배사는 어설프게 통통통이니 아우성, 오징어 같은 식상한 - 세글자로 운을 띄우고 그에 맞게 말하는 것 - 멘트보다는 딱 하나의 핵심을 넣어서 정갈하게 하는게 좋다고 생각했다.


“제가 잘 배우겠습니다. 하면 선배님들이 그래 잘하자~!라고 해주십시오."

"오~ 뭔가 준비를 해온 거 같애. 말 잘하네."

‘좋아. 괜찮나 보다. 근데 언제 말을 시작하는 거지?‘라고 눈치를 보고 있는데,

"신입사원이 잘 준비해 온 것 같습니다. 잔을 들어주십시오.“ 라고 간사 선배가 말을 해주신다.


"잘 배우겠습니다."

"그래 잘하자~!“

짠~


분위기가 나쁘지 않다.

‘이 정도면 됐어.’

아니나 다를까 상무님이 부르신다.

"최한결. 일루 와.“

"넵"

"잘했어. 열심히 하고, 그래. 술은 잘하나?“

그냥 바로 들통날 일인데, 깔끔하게 솔직하자.

"아, 상무님, 제가 다른 거는 잘할 수 있는데 술은 거의 못 합니다. 죄송합니다.“

"술을 못해? 얼마나 하는데?“

"거의 못 마십니다.“


그리고서는 들려오는 말. 회사 생활하면서 100번은 들었던 말.


나도 처음엔 못 마셨어. 먹다 보면 늘어.
일단 이거 마셔봐.



소주 한잔이 풀로 들어간 소맥이다.

나는 이제 죽었다. 그러나, 이미 각오했었으니까

"네, 감사합니다."

그런 소맥을 한잔 제대로 먹어본 게 인생 처음이었다. 술이 들어가면서, 나는 오늘 어떻게 끝나게 될까 라는 생각을 하였다.


그런 경험 있는 분이 많을 것 같은데, 뭔가 큰일 날 일을 알고도 그냥 그걸 받아들일 때 나도 모르게 허탈웃음이 나기도 한다. 그렇게 왠지 웃음이 나올 듯하면서 마치 내시경 수면마취제를 맞으면서 필름이 끊기듯, 나도 필름이 끊기는 것 아닐까 라는 생각이 들었다.


일단, 아직 안 쓰러진다.

"거봐. 마실 수 있네. 술은 먹으면 는다니까.“

그렇게 소맥을 먹고, 노래 한곡 시간보다도 빠른 2분 만에 신호가 온다. 심장은 벌렁벌렁, 얼굴은 이미 노을의 색깔을 넘어 어둠이 깔린 수준으로 검붉어졌다.

‘망했다. 더 이상은 버틸 수가.. 없.. 어..’

쓰러질 것 같은 상황에 다행히 IR 과장님이 오셔서 나를 구해준다.

"상무님, 이 친구 진짜 술을 잘 못합니다. 일단 저쪽에서 저희가 데리고 있겠습니다."

아마도 상무님은 못마땅함 반, 이 놈 이거 큰일 나는 건 아니겠지 라는 생각 반을 하셨을 것이고 그 덕분에 별말 없이 보내준다.


어떻게 끌려가는지도 모르는 체 한숨을 몰아쉰다. 과장님이 나의 사수, 손주임님에게 귀찮은 놈을 맡긴다. 그래도 내 사수는 좋은 - FM만 안 했다면 더 좋은 분이었을 텐데.. - 분이었다.

"한결아, 괜찮냐. 아, 이 놈 큰일 났네. 괜찮냐?"

"으… 토할 것 같습니다."


그렇게 화장실에 끌려가서 끝없이 게워내고, 도저히 못 버틸 것처럼 졸음이 쏟아진다. 손주임님이 나를 바깥에 데려가 바람을 쐬게 하다가 도저히 안 되겠는지, 주위를 둘러보더니 결국 나를 끌고 바로 옆건물로 올라간다.


ㅇㅇ 비디오방.

그랬다. 내가 쉴 곳은 여기였다.


‘그래. 여기라도 누우면 좋겠다’는 마음뿐이었다.

"한결아. 여기서 쉬고 있어. 일단 여기서 정신 좀 차려봐.“

"네....."

‘좋다. 나는 이제 여기서 쉬자.’

그렇게 생각하고, 정말 더 이상 기억도 없이 나는 잠에 들었다. 심장이 벌렁거리는 것을 온 신경으로 느끼면서 나는 잠에 들었다.




"한결아. 정신 차려봐. 한결아."

얼마의 시간이 지났을까. 손주임님이 나를 깨운다.

'ㄴ... 네.."

"일어나, 이제 가자.“

".. 네.."

"일어날 수 있어? 일어나 봐.“

"네. 좀 괜찮습니다.“

3시간 정도 지났을 것이다. 그래서 그런지 걸을 수는 있는 것 같았다.


비디오방을 나서서, 밖으로 나왔더니 저쪽에 한 무리가 있다.

‘뭐야.. 아직 안 끝난 거야? 아.. 아직도?’

주임님이 나를 데리고 무리가 있는 쪽으로 간다.


"괜찮아?"

"괜찮아요?"

"아, 이 친구 신고식 제대로 하네."

주임님이 나를 데리고 다시 더 저쪽으로 간다.

"상무님, 애는 괜찮습니다."


‘이런, 아직 상무님이 여기 있어? 차 타기 직전인가 보다. 기사님 기다리는 건가.‘

"신입! 괜찮아?"

"네, 괜찮습니다. 죄송합니다."

"IR에서 알아서 잘 들여보내.“

"네, 알겠습니다. 상무님.“

검은색 차가 도착하자, 그 간사 선배가 차문을 절도 있게 연다. 상무님이 타시자, 첫 연인 손을 잡듯 문을 부드럽게 닫아드린다.


사람들이 벌떼같이 와서,

"상무님 들어가십시오.“

"상무님 감사합니다.“

‘뭘 그리 감사하다는 거야.’

손주임님도 머리를 70도 이상은 숙이면서

"상무님, 감사합니다. 들어가십시오.“

나 역시, 머리를 많이는 못 숙였지만,

"상무님, 으.. 감사합니다."

‘뭐야. 내가 왜 감사해.?’


사실 이날 이후로도 나는 2번 더 쓰러졌다. 상무님과의 회식 자리에서 2번이나 더 ”먹으면 늘어.“ 라는 얘기를 또 듣고 그리고 또 쓰러지고. 그런 후부터 나에게 술을 강권하는 사람이 정말 거의 없어졌다. 괜히 마시게 했다가는 오히려 사고 날 수도 있는 사람으로 나는 인식되게 되었다. 드디어, "먹다 보면 늘어."라는 말이 안 통하는 사람이 된 것이다.


정말 힘들게, 술을 더 이상 먹지 않아도 되고 그야말로 일만 열심히 하면 되었다.

‘그래. 일이 제일 중요하지. 무슨 술이야!!’




나는 술을 전혀 못하지만 현재 큰 회사에서 팀장이다. 그것도 상대적으로 다소 어린 나이에 팀장이 되었다. 그러니 술 한잔을 못한다 하더라도 회사에서 잘될 수 있는 것임은 내가 증명하고 있다.


그러나 - 여기서부터는 그저 나의 과거를 기술한 것 뿐이지, 술 못 먹는 사람이 해야할 비법인 것 처럼 오해하지 않길 바란다 - 술을 못한다는 것이 나에게는 컴플렉스였고 그래서 많은 노력을 한 것은 사실이다. 함께 가자고 오퍼가 들어온 술자리는 정말 별다른 일이 없다면 피하지 않고 다 따라갔다. 그저, 술을 못해서 어울리지도 못하는 놈이라는 인식은 싫었기에 자리가 있으면 다 따라가려고 했다.


그러한 모습이 그나마 내가 술을 한잔도 못해도 존재감이 미약하게나마 있게 만들어주었다. 어젯밤 무슨 일이 있었는지 알게 되어 뭔가 대화에서 소외되는 부분이 없었고, 그리고 심지어 몸을 가누지 못하는 선배를 말없이 도와주기도 하여 고마운 사람이라는 인식까지 만들게 하였다.


그렇게 술을 못 하면서도 회사생활을 해나갈 수 있었던 것은, 술자리에서의 적극성 때문이었다. 사실 매우 귀찮았고 힘들었지만, 그게 내가 술을 못 먹는다는 컴플렉스를 극복할 수 있는 몇 안되는 방안 중의 하나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그렇게 할 수밖에 없었고, 어느 순간부터는 그런 술자리가 별 것 아니라는 생각까지 들게 되었다. 결국 나는 술을 한잔도 못하면서 술자리에서 점점 더 존재감 있는 사람으로 인식되었고, 나중에는 부문 간사가 되었다.


술은 확실히 - 적어도 아직까지는 - 회사 생활의 경쟁력이다. 술을 잘하냐 못하냐로 따라갈 수 있는 자리의 범위가 달라진다. 그런 자리에 있었느냐 아니냐로, 평가나 이동에 있어서 미세하게 차이가 날 수 있음은 팩트이다. 회사생활 은근히 한 끗 차이라서 술을 잘 못하면 아쉬운 상황이 분명 벌어지곤 한다.


다만 - 사실 여기서부터가 진정으로 하고 싶은 말이기 때문에, 꼭 주목하면 좋겠다 - 술을 못 먹는다고 해서 기회가 없는 것은 절대 아니다. 주변을 봐도 확률적으로 높지는 않지만, 술을 못해도 잘되신 분들이 분명히 있다. 그분들도 그분들만의 노하우가 있을 거라고 추측이 되는데, 무엇보다 일에 있어서 대체불가한 사람들이었기 때문에 술을 못 한다는 단점에도 불구하고 그 위치에 올라간 것이라 생각한다.


술을 못 하는 사람이더라도, 절대 겁먹거나 포기할 필요 없다. 본인에게 주어진 일을 다른 팀원들보다 더 잘하면 되고, 술 빼고는 딱히 나무랄 것이 없는 사람이 되면 된다. 오히려 모든 것을 잘 하고 심지어 술도 잘하는데, 괜히 술 먹고 주사를 부리는 탓에 공든 탑이 무너지는 것보다 훨씬 나을 수도 있다.


특히 앞으로의 세상은 더욱 더 술로 승부하는 세상이 절대 아니게 될 것이니까, 업무능력을 높이고 리더쉽에 대한 고민을 깊이 있게 한다면 성장의 기회는 분명 더 많아질 것이라 확신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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