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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우구스티노 Feb 26. 2023

“아니, 걔가 그렇게 잘됐어? 와, 진짜 OOOO!”

19 | 대박이다. 짜증난다. 뿌듯하다. 중에 뭘까?


학교를 졸업하고 사회에 나와서 10년 이상을 다니다 보면, 분명 내 후배였는데 나보다 더 잘 된 친구들을 볼 수 있다. ‘성공’ 이라는 단어는 다소 거창해서 오글거리기는 하는데, 분명 현재 나의 위치보다 객관적으로 잘 되고 있는 후배들을 여기저기서 경험하게 된다. 그런 후배들을 보면 어떤 마음이 들까?


사촌이 땅을 사도 배가 아픈 게 한국인이라지만, 꼭 그렇지는 않다. 내 경우에는 나랑 얼마나 친했는가. 내가 좋아하던 후배인가. 그리고 내가 직접 가르쳤던 후배인가로 마음이 나눠지게 되는 듯하다.


친하지 않았는데 잘 된 얘기를 들으면, ‘그런가 보다 뭔가 특출 난 게 있었나 보다.’ 라는 생각 정도에 그친다. 과거에는 친했는데 지금은 잘 연락을 안 하는 관계에서 그 후배가 잘 되었다는 소식은 부러움 90, 질투 10 정도가 생기는 듯하고.


내가 좋아하던 후배라면, 그저 축하하는 마음과 ‘잘될 줄 알았어.’ 라는 인정하는 마음이 생긴다. 좋아하지 않았다면 ‘그 정도는 아닌 거 같은데.. 세상 뭐 이러냐?’ 라는 자조가 섞이게 되는 듯하다.


내가 직접 가르쳤던 후배가 잘 되는 경우라면…

이번 글이 바로 내가 가르쳤던 후배에 관한 이야기다. 위에 언급하듯 여러 후배가 있겠지만, 사실 가장 기억에 남는 건 내가 가르친 후배다. 그 후배의 성공에는 과연 어떤 마음이 들까.




2010년, IR 부서에는 이제 좋았던 선배들이 다 사라졌다. 그들도 회사에서 더 성장해야 했기에 파견부대와 같은 서울사무소를 떠나 본사로 하나둘 내려갔다. 좋았던 선배들이 자의 또는 타의로 떠나가고 그 자리를 수원에서 온 새로운 사람들로 채워지면서 TO는 변함이 없었다. 다만, IR 부서 근무 경력으로는 팀장님 빼고 내가 가장 오래된 사람이 되어 버렸다.


오래된 사람이 되었고, IR 부서의 에이스들은 자꾸 살길을 찾아가면서 점점 쪼그라들었고.. 그럴수록 나는 IR을 마치 나 혼자라도 지켜야 한다는 어쭙잖은 책임감을 짊어지고 있었다.(지금 생각하면 대리에 불과했는데 정말 오바였다)


IR이라는 부서는 영어를 잘해야 했다. 영어를 잘 못하면 항상 설명하고자 하는 바의 60%도 못하게 된다. 영어를 아예 못하면 당연히 영어 미팅을 진행할 수가 없고 그러면 반쪽자리 IR멤버여서 사실 IR에 근무할 수가 없었다.


부단한 노력 끝에 겨우겨우 영어 미팅이 익숙해졌을 무렵에 IR부서에 여자 후배가 들어왔다. 원래 소재 관련 석사 출신의 연구원이었는데 부서 전배를 신청했는지, 우여곡절 끝에 우리 부서로 왔다. 좀 조용한 성격에, 지금으로 따지면 MBTI가 분명 파워 I가 나올 것 같은 친구였다. 외향적이지 않아서 대하기가 좀 어려웠는데, 기본적으로 태도적인 부분에서는 나무랄 데가 전혀 없는 친구였다. 기수로는 나보다 3기수 정도 아래였는데, 석사로 입사하여 실제로 직급년차는 1년밖에 차이가 나지 않았다.


연구원 출신이라 사실 스탭의 일에는 감이 없었는데도, 기본적인 태도가 좋았기 때문에 여러 가지 가르쳐주면 곧잘 캐치업을 해내는 모습이었다. 좋은 후배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영어가 문제였다.


나도 그때 영어로 버벅거리긴 했으나, 정말 다행히도 녹음기를 통한 연습 끝내 그래도 조금 나아진 상황이었다. 실제로 외국인 미팅을 혼자서 충분히 하던 시절을 맞게 된 것이다.


그러다 보니 쓸데없는 오지랖으로 가르쳐줘야겠다는 허무맹랑한 생각을 했다. 내가 영어로 미팅을 해보니까 이렇더라 저렇더라 라는 경험을 알려줌으로써 후배가 시행착오를 줄이면 좋겠다 싶었다. 무엇보다 입을 떼는 게 중요한 거라서 자꾸 말해보게끔 해주고 싶었다.


그러나, 나의 순수한 생각과는 달리 실제로는 굉장히 타이트한 못된 선배 모습 그대로였다. 그래도 무슨 자신감인지 ‘지금 나에게 속상하더라도 분명 나중에 고마워할 것이다.’ 라고 믿었다. 미움받을 용기는 충분히 있었고, 심지어는 ’이런 선배가 어딨어?!‘ 라는 오만함이 있었다.



그러나, 현실은 미움을 받을 수밖에 없었다.


일주일에 두 번 정도 저녁에 남아서 1:1 미팅을 하기로 했다. 내가 외국인이고 후배가 IR 스피커로써 롤플레이를 하는 시뮬레이션 미팅이었는데, 사실 이것처럼 좋은 연습이 없겠다고 예전부터 생각해 와서 바로 실행했다. 실전처럼 해봐야 실력이 느는 것이 너무 당연하니까.


지금이랑은 시대가 달라서 그때만 해도 그 정도 야근하는 건 사실 아무것도 아니었다. 그래서 이 후배 역시 조금 늦게 가는 것에 대한 불호는 없었다. 문제는 후배가 느끼는 창피함, 아니 자존심의 상처였다.  영어를 못하는 후배 입장에서는 스스로의 약점이 적나라하게 드러나는 것이 매우 싫었을 것이다. 매우 잘 이해한다. 나 같아도 그랬을 거니까.


그러나, 이게 맞다고 나 스스로 계속 합리화했다. 어느 정도의 미움은 각오했었다. 정말 잘 되게 해주고 싶은 거였으니까 밀어붙일 수밖에 없었다. 후배는 마지못해 참여하긴 하는데 싫은 티가 너무나도 역력했다. ‘이렇게까지 해야 해요?!’ 라는 눈빛으로 나를 쏘아보는 것 같았다.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미움을 받고 있구나..’

‘그러나, 어쩔 수 없다. 분명 도움이 될 거다.’


후배에게 미움받는 게 절대 좋지는 않다. 하지만, 이 악역을 내가 꼭 해야만 이 친구의 빠른 성장에 도움이 될 것이라는 우격다짐 믿음이 500년 된 나무의 뿌리처럼 굳건했다. 그렇게 시뮬레이션 미팅을 강행했다.



2개월이 최선이었다. 더 오래 하고 싶었으나 그럴 수 없었다. 내가 영어를 너무너무 못했기 때문에 영어 못 하는 사람의 마음을 충분히 이해한다고 생각했고, ‘나는 너보다도 못했어. 그러니까 걱정 마’라는 얘기를 아주 여러 번 했는데도 후배의 창피한 마음은 사라질 줄 몰랐다.


2개월 이후에 내가 출장을 길게 다녀오면서 흐지부지됐다. 아니 흐지부지시켰다. 후배의 긴장된 마음이 항상 느껴지는데 내가 너무하다는 생각이 나를 괴롭혔다. 그나마 아주 조금 나아진 후배의 모습에 ‘이게 나의 최선이다. 그만해도 되겠다.’ 라면서 스스로 합리화했다.


실제로 시뮬레이션 미팅 자체가 큰 효과를 거두었는지는 모른다. 표면적으로 보이기에는 매우 나아졌다는 판단이 들지 않았다. 다만, 이 후배의 성향상 창피함을 조금이나마 없애고자 뒤에서 엄청난 노력을 했을 것이다. 그 노력 자체가 분명히 도움이 좀 되었을 것이라 생각했다.



어느 날부터 후배의 영어실력에 크게 신경을 쓰지 않게 되었다. 나는 최선을 다했으니, 이제 더 이상 잠소리 하지 말자 라는 생각이었다. 더불어 이제 더 이상 못된 선배가 되고 싶지는 않아서였다.


더 이상 시뮬레이션 미팅을 하지 않게 된 지, 두 달쯤 된 어느 날 메신저가 왔다.

‘대리님, 저 영어 1등급 땄습니다.’

‘와 대단하다. 언제 그래도 열심히 그렇게 준비했대? 진짜 잘했다.!’

우리 회사는 토익이나 Opic를 기준으로 등급을 부여했는데, 아주 높은 수준으로 1등급을 딴 것으로 확인이 되었다. 1등급이 아니면 IR 부서에서는 더 이상 남아있을 수가 없었기 때문에 내가 그랬듯이 이 후배도 매우 절박했을 것이다. 그 부담감과 압박감을 이겨내고 훌륭하게 1등급을 따낸 것이다. 이 후배의 기존 영어 점수가 얼마인지 아는 나로서는, ‘정말 스스로 고군분투했구나’ 라는 생각이 들어 흐뭇하고 대견해 보였다.




1년 정도 더 지났을 무렵에, 나는 이런저런 이유로 퇴사를 결심하였고 IR 부서를 끝으로 회사를 그만두었다. 다른 회사로 이직했으나 한동안은 첫 회사에 대한 애정이 매우 많이 남아 있었는데, 특히 사람들에 대한 애정이 남아 있었다.


퇴사하고, 8개월 정도 지났을 무렵에 첫 회사 근처로 올 일이 있어서 후배에게 미리 연락을 해봤다. 여자 후배여서 퇴사한 이후에 사실 자주 연락하지 못했었고, 이 후배도 워낙 성향상 집 나간 선배에게 연락을 자주 하는 친구가 아니었기에 진짜 오래간만에 보는 것이었다.


"대리님, 잘 지내세요?"

"어, 그냥 뭐. OO에서 배운 걸로 다른 데에서는 충분히 잘하겠더라고."

"너는 잘 지내냐? 이제 니가 IR 메인스피커 하고 있는 거 아닌가?"

"네. 모든 미팅을 그러진 않는데, 조금씩 하고 있어요. 심과장님 있으니까요..."

"아.. 심과장님 잘하고 계시냐?"


여기서 등장하는 심과장님은 나의 퇴사 결정에 30%의 책임이 있는 사람이다. 심과장님은 내가 정말 좋아하는 IR 부서의 역할을 어디서든 좋게 말하는 법이 없었다. 이 분은 금융시장과 소통하기는커녕 항상 ‘대충 일하자’ 주의였는데, 이 분이 IR 부서를 망쳐놓고 있다는 생각에 나는 더 이상 이 부서에 희망이 없다는 생각이 강하게 들었기 때문이다.(이 분에 대해서는 나중에 꼭 글을 쓰고 싶다.)


"맨날 똑같죠."

"에휴… 내가 그분 때문에 퇴사한 거 알아?“

“아, 그거까지는 몰랐어요. 많이 힘드셨죠?”

“나야 뭐 맘대로 하긴 했는데, 그래도 엄청 싫었지. 너도 많이 힘들구나.”


"네, 저도 그분 때문에 많이 울었어요.“

"응?“

“모르셨어요?”

“어…. 나는 내가 빡세게 시키니까 나 때문에 힘들어서 울 줄 알았는데? 그분 때문에도 힘들어서 울었어? 와.. 전혀 몰랐는데?"

"아니요. 대리님한테는 고마운 게 많죠. 저녁에 자기 시간 내서 후배 가르쳐주겠다고 붙잡고 뭔가 해주는 선배가 어딨어요.."

"와.. 나는 니가 진짜 너무 싫어하는 티를 내길래 내가 뭐 하나 싶었다. 그래도 나는 그냥 니가 잘되길 바라는 마음에 그랬는데..."

"알죠. 그거 아니까 지금도 고마워하죠. 그거 말고도 출장 가서도 배려해 주고 그런 거 다 고맙게 기억하고 있어요..“

고맙다는 얘기를 처음 들었다. 내가 좀 까다롭게 일을 하는 스타일이라서 정말 나를 싫어하는 줄만 알았는데..


"아, 그래? 다행이다. 근데 그분은 왜?"

"자꾸 비아냥이 많았어요. 뭘 해도 뭐 하러 열심히 하냐는 듯이 그래서요. 진짜 신경 하나도 안 써주고, 본인 일인데도 제대로 하는게 하나도 없어서 다 저한테 떠넘기고.."

"안 봐도 뻔하다..."

"대리님 나가고 진짜 멋대로였어요.“

"내가 좀 싸가지가 없으니까 내 눈치는 그래도 조금 봤었는데, 나 마저 없으니까 그럴 것 같았다. 니가 고생을 많이 했겠네. 미안하다."


"뭐, 근데 이제 제가 미팅도 꽤 많이 하고 그래서 이제 괜찮아요. 대리님한테 잘 배웠으니까요."

"다행이네. 이제 미팅은 안 가리고 다 하는 거지?"

"네, 대리님 덕분에 영어 미팅도 이제 다 하고 그렇습니다. 다음 주에 또 런던 출장 가요.“

"아.. 출장 부럽다.."

"ㅎㅎ 그러니까 왜 나가셨어요!"


다행이었다. 그래도 내가 오지랖 부리던 저녁시간이 헛되지 않았음을 그렇게 늦게라도 확인해서 정말 힘이 났었다. 뭔가 미안함을 계속 갖고 있었는데, 탄산 가득한 콜라를 마신 듯 체증이 내려갔다.




그날 이후 3년이 지난 시점에, 이 친구가 시가총액 10위 안에 드는 회사의 IR 부서로 이직했다는 얘기를 전해 들었다. 그 정도 회사라면 정말 영어를 잘해야 하는 곳일 텐데도 두려움 없이 옮긴 걸 보면, ‘그동안 진짜 열심히 일하고 공부했구나!’ 라는 뿌듯한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바로 한달 전에는, 시가총액 기준으로 우리나라 최고 기업 중의 하나인 회사에서 IR팀장이 되어 있다는 소식을 들었다. 정말 영어를 못하면 아예 불가능한 자리일 텐데, 너무 대단하다는 생각을 했다. 2010년에 영어 한마디 못 하고 속상해하던 막내 팀원이, 지금은 IR 하는 사람이라면 모두 인정하는, 엄청난 자리에 가 있는 것이다. 부러움조차도 전혀 생각이 안 날 정도로, 뿌듯함이 매우 매우 컸다.


‘와, 진짜 잘됐다. 와, 너무 뿌듯하다.‘

‘마! 내가 가르쳤다고!!‘

마음속으로 혼잣말을 했다. 그 혼잣말은 최근 몇년간 내 몸 안에서 가장 큰 소리를 낸 쾌재였다.



이 경험으로 나에게는, 꼰대 같은 마인드가 다시 커져갔다. 사실 지금 시대에는 그러면 안 되는 거 같은데..


잘 못하는 친구들에게 좀 더 가르쳐주고 싶고 오지랖 넓게 자꾸 뭔가를 알려주려 하고, 항상 공부하라고 얘기한다. 듣기 귀찮아하는 것을 잘 알고 있고, 소귀에 경 읽기처럼 전혀 귀에 들어오지도 않을 것이다.


그러나, ‘다 좋아 다 좋아’ 하는 선배보다는 ‘공부해라. 공부해라. 제대로 미리미리 갖춰놔라 갖춰놔라’ 라는 얘기를 많이 한다. (그들은 그럴 리 없을 것 같은데) ‘나중에라도 나에게 고마워하겠지.’ 라고 합리화하면서 자꾸 꼰대 같은 마인드를 지우지 못한다.


나에게 이런 말을 할 자격이 없을 수도 있기에 멈칫할 때도 많다. 그리고 이제 나이가 많이 들어서 연차가 많이 차이나면 뭐라 얘기하기가 조심스럽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에게 그저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면 좋겠어서 오늘도 또 얘기를 하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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