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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우구스티노 Mar 08. 2023

월급루팡 선배에게 “다른 팀 안 가세요?”라고 물었다

20 │ 월급루팡 vs 에이스. 누가 먼저 떠날까.



"최대리, 그거 또 왜 만들어? 그거 어차피 쓰지도 못할걸? 다 쓸데없어."


같은 부서에 있던 선배로부터 이런 소리를 듣는 것이 도대체 몇번째인가. 이제 너무 지쳤다.


나와 5년 차이나는 이 선배는 우리 팀에 온 지 8개월이 다 되어가는 사람이다. 좋은 선배들은 모두 더 높은 곳을 바라보며 본사로 내려갔고, 어쩌다 보니 이 선배가 내 위에 오게 되었다.


“다 쓸데없어~”

이 비아냥은 정말 너무 힘이 빠진다.


이 선배는 그동안 내가 좋았했던 선배들과 비교해서 ‘상대적으로’ 문제가 많은 게 아니다. 이 정도라면 ‘절대적으로’ 문제가 있는 사람이다. 일은 안드로메다에 던져놓고, 매일 블랙홀 안에서 유영하다가 때가 되기도 전에 집으로 돌아갈 생각만 하다니..


인내심이 부족한 내가 그동안 정말 많이 인내했다.

‘오늘은 안 되겠다. 못 참겠다.'

이제는 할 말 해야겠고, 내가 요즘 가장 궁금한 것을 과검히 물어봐야겠다.  


"그래도 이렇게 하면 더 좋을 것 같은데요, 투자자들도 이렇게 보여줘야 더 집중하는 것 같구요."

"아니야. 그렇게 안 해도 돼. 무슨 의미가 있어. 그게 그거야."

"아닙니다. 이거 별로 힘든 것도 아닌데 제가 그냥 할게요."

"에이, 너는 돈 더 주는 것도 아닌데 뭐 하러 그렇게 열심히 하냐?"

'또 저 얘기. 저말 왜 안 하나 했다..'


예상한 흐름대로 대화가 이어지고 있다.

‘오늘은 진짜 끝까지 가보자. 인생의 큰 결정이 될 수 있는 질문을 꼭 해보자.’


"저는 그래도 이렇게 하는 게 맞는 것 같고, 나름대로 가치가 있다고 생각하는데요?"

"그래? 제품 파는 영업팀도 아니고.. 여기는 그냥 말만 하고 실체도 없는데.. 이렇게 한다고 주가가 올라가냐?"

"주가는 뭐 저희가 어찌할 수 있는 영역이 아니죠. 그래도 팀이 존재하는 이유가 있는 건데, 그렇게 이 팀의 역할이 없다 생각하시면.. 다시 영업팀으로 돌아가시지, 왜 이 팀에 남아 계세요?"

"응? 그래도 여기가 영업보다는 훨씬 편하니까."


'그럴 줄 알았다.'

"그럼 다시 영업으로 돌아가실 생각은 전혀 없으신 거예요?"

내가 왜 물어보는지도 모르는 듯한 얼굴로,


"어, 여기에 최대한 오래 있을 거야."



나는 이때,

그동안 문화적 결이 맞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나를 뽑아서 많은 것을 알려준 첫회사에 대한 의리와 팀에 대한 애정 때문에 꾹꾹 눌러왔던 ’퇴사‘ 라는 풍선을 터뜨릴 수밖에 없게 되었다.(더 이상 참을 수가 없다고 결심했는데, 마음 한 켠으로 사실은.. 많이 슬펐다..)


'그래도 나는 이 조직에서 진짜 열심히 하고자 했는데, 이 선배랑은 도저히 못 지내겠다.'

스트레스가 너무 심했다. 착한 팀장님은 이 선배를 이미 포기를 하셨고, 특별한 조치가 없었다. 나는 징징거리기 싫어서 별 말을 하지 않았다. 팀장님은 나를 믿어주고는 있었는데, 나의 의지에 항상 소화기를 들고 달려드는 이 선배와는 도저히 일을 같이 할 수가 없었다.


사람때문에 그만둔다던데 내가 그렇게 될 줄이야.. 너무 좋았던 선배들이 많았기에 더욱더 내가 사람 스트레스로 퇴사를 결정하게 될 줄은 몰랐다.


군대라면 선임이 제대하는 것을 바라기라도 하겠지만, 회사에서는 이 선배가 언제 딴 팀에 갈 줄 알고 마냥 기다린다는 말인가.

'1년이면 몰라도 2년을 기다려야 한다면 못 버티겠다. 그마저도 2년이라는 보장도 없잖아… 그냥 내가 나가야겠다.'

‘이 선배가 딴 팀에 가는 걸 기다리다가는 내가 먼저 화병에, 답답함에 머리가 다 빠지겠다.’

'그만하자. 아휴!'


기획부문에 신입사원으로 들어와서 전략기획팀을 거쳐가면서 나름 좋은 평가를 받고 있었는데도, 유망하다 할 수 있는 미래에 대한 생각은 마음속의 수면 아래로 잠겨버렸다. 그저 이 선배만이 마치 수면 위 빙산처럼 보였다. 후회를 남기지 않으려 그랬는지, 결심을 오히려 날카롭게 다듬었다.


나는 그날부터 이직을 위한 이력서를 작성하기 시작했다…




2011년 당시, 나는 과장 진급 전이었으니까 에이스라고 부르긴 어렵다.


그러나 에이스라 불리며, 조직에서 인정받는 사람 중에 이런 경험을 가진 사람이 있을 것이다. 반대로 ‘에이, 왜 저렇게 열심히 하는 사람이 와서 나의 이 워라밸을 눈치 보게 만드는 거야'라고 생각하는 월급루팡도 있을 것이다.


이렇게 한 조직에 월급루팡과 욕심 있는 에이스가 동시에 있다면, 더 불편한 사람은 누구인가. 누가 더 회사를 출근하기 싫을까. 당연히 에이스다. 특히, 에이스가 후배라면 선배에게 뭐라 할 수도 없어서 더욱더 그렇다. 그래서 에이스는 퇴사까지 고려할 정도로 상당한 스트레스를 받는다.


에이스는 일을 열심히 하려 한다. 그 부분을 위에서도 알아서 일을 많이 시키고, 일의 퀄리티도 좋기 때문에 계속되는 일을 맡아 하기 일쑤다. 인정을 받고 싶은 사람도 있고, 책임감에 도저히 루팡처럼은 일을 못하겠다는 생각을 가진 사람도 있다.


월급루팡은 열심히 할 생각은커녕 일이 본인에게 떨어지지 않기 바라며 일단 숨는다. 본인에게 일이 안 오길 바라고, 설사 온다 하더라도 정해진 시간에서만 하려고 하는데 그 시간 안에 내놓을 수 있는 퀄리티는 한참 떨어진다. 그러면, 조직장은 루팡에게 다시 일을 맡길 수가 없다.


이 상황이 연속되면, 에이스는 워라밸은커녕 상대적인 박탈감이 엄청나다. 월급루팡은 다소 불편함이 있을 수 있지만, 상대적으로 편안하다. 이 경우에 좋은 솔루션은 평가를 달리 주면 된다.


그러나 조직이라는 곳이 어떤 팀원에게 C 이하의 고과를 주기가 쉽지가 않다. 상당한 트러블을 일으켰거나, 정말 형편없는 저성과를 내지 않는 이상 C 이하의 고과를 주는 것은 팀장으로서도 많이 부담스럽다.(뭔 짓을 할지도 모른다.) 아마도 웬만하면 평균고과를 받을 것이다.


그렇다면 에이스는 항상 상위고과(A 이상)를 받을 수 있는 것일까. 팀에 딱 2명만 있다면 그럴 수도 있을 것이지만, 여러 이유로 그럴 수만은 없는 것이 조직의 현실이다. 안 그래도 월급루팡과 함께 조직생활을 하면서 상대적 박탈감을 받아오고 있는데, 같은 고과를 받게 되면 짜증은 파도처럼 밀려온다. 혹여 그런 일이 2년 연속 지속된다면, 월급루팡의 존재감이 에이스의 열정을 쓰나미처럼 앗아간다. 결국 그 에이스는 중이 된다. 절을 싫어하는 중..


‘절을 떠나자.’

‘결국 못 버티고, 절을 떠나는 사람은 월급루팡이 아니라 에이스구나.’

그렇게 부서 이동이나 심지어 퇴사까지 생각하게 된다. 그렇게 조직은 좋은 팀원을 잃을 가능성이 커지는 것이다. 정말 이런 선배가 가장 만나면 안 될 유형의 선배 중 하나라고 생각한다.




이러한 상황에 처해 있는 사람(에이스가 아니더라도 열심히 하는 사람)이 있다면, ‘너무’ 고과만 생각하지 않길 바란다. 그 고과가 당장은 중요한 듯 해도, 위에서는 다 안다. 누가 나중에 리더가 되어야 하는 사람인지를 말이다. 그러니, 상대적 박탈감에 ‘쉽사리’ 감정을 내비치지 않는 것이 좋다.


이미 충분히 열심히 하는 것만으로도 윗사람들로부터 좋은 평가를 받고 있다. 고과 하나하나에 신경 쓰지 말고 감정에 대한 컨트롤 능력과 흔들리지 않는 리더십을 보이라. 그러다 보면 결국 탄탄한 승진을 하고 나중에 팀장, 임원이 되는 것은 당신이다.


고과 때문에 너무 짜증 나고, 열심히 일한 1년이 부정당하는 기분을 충분히 이해한다. 그러나 조직은 어떤 사람에게 지속적으로 좋은 고과를 줄 수가 없다. 만약 그렇게 좋은 고과만 계속 받은 사람이 있다면, 조직장에게 감사해야 할 것이다. 여타 조직원의 눈치를 안 보고 소신껏 고과를 주는 용감함을 보여준 것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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