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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우구스티노 Feb 22. 2023

선배에게 빚졌는데 후배에게 갚아야 하는 이유

18 │ MZ세대는 모르는 라떼세대의 낭만

MZ세대의 선두주자인 ‘맑은 눈의 광인’은 MZ세대들의 모습을 상당히 과장하여 표현하고 있기에 맑눈광의 태도를 그대로 일반화하는 것은 매우 위험하다. 그러나, 팩트상으로도 에어팟을 끼고 일하는 MZ세대는 점점 많아지고 있다. 그들은 왜 에어팟을 끼고 일할까.


‘노래를 들어야 능률이 오르기 때문입니다.“ 라는 대답도 일정 부분 맞을 것이다. 그러나, 또 다른 이유로는 꼰대 선배들의 계속되는 잔소리를 아예 차단하겠다는 의지가 담겨있는 것 아닐까.


왜 선배들의 조언은 꼰대들의 잔소리 라는 이름으로 바뀌었을까. 언제부터 선배들의 얘기는 그저 듣기 싫어서, 한귀로 듣고 한귀로 흘려버리려고 하게 된 것일까. 이는, 과거 로마시대에도 있었다고 하니 매우매우 예전부터였을 것이다.


왜 조언이 자꾸 잔소리가 되는 것일까. 아쉽게도 나를 비롯하여 선배 세대들은 피드백을 해주는 법을 잘 배우지 못했다. 그러다보니 어떤 피드백도 마치 잔소리처럼 들리게 되는 것일테고, 그것이 MZ세대들의 귀를 닫게 하면서 사무실에서 에어팟을 끼고 일하는 데에 일조하고 있다.


그러나, 선배들의 얘기가 모두 잔소리만 있을까. 이런 글이 또 꼰대의 글처럼 느껴질까 우려스럽지만 그래도 나는 선배들에게 기억에 남는 조언을 많이 들었다.(물론 수없는 잔소리도 듣긴 했지만.) 어쩌면 맑은 눈의 광인이 에어팟을 빼고 들을만한 조언이 있을 수도 있다.


그 경험을 공유하고 싶다.




첫 회사에서는 정말 좋은 선배들이 많았다. 90년대 끝자락 가까운 학번으로서 나 역시 분명 꼰대와 같은 사람이어서 그런지, ’선후배‘ 라는 개념 자체가 당연했고 나쁘게 생각하지 않았다. 선배들에게는 직급을 부르는 경우가 대부분이었지만, 아주 친하면 호형호제하는 사이가 되어서 선배님이라는 호칭을 써 본 적은 거의 없었다. 지내다 보면 정말 인생의 선배라는 생각이 들어서 ’선배는 선배구나..‘ 라는 생각이 확연히 들었다.


나에게는 고맙게도 업무뿐 아니라 인생도 많이 가르쳐주고, 위로와 공감을 많이 해준 선배들이 있었다. 그래서 그런지 첫회사를 생각하면(말도 안 되는 워라밸과 극심한 경쟁주의의 조직문화에도 불구하고) 항상 친정 같은 생각이 든다. 그분들에게 배운 많은 가르침이 업무적으로는 지금까지도 나의 경쟁력이고, 인생에 있어서는 좋은 자양분이 되었기에 매우 고맙다는 생각을 매우 많이 한다.


특히, 내 사수였던 손 과장님(내가 대리 3년차말에 퇴사했는데 그때 기준으로 그분은 과장님이었다.)은 나에게 상당히 많은 영향을 끼쳤다. ‘Spoil’ 이라는 단어를 통해 ‘겸손해야 된다’ 부터 가르쳐 준 선배여서 첫인상부터 강렬했다.


지금 생각해 보면 나의 어린 시절은 정말 부족한 것 투성이었을 텐데, 작은 것부터 세세하게 안내해 주면서 많이 아끼고 배려해 준다는 느낌이 많이 들었다. 그래서 나는 어디서든 항상 ‘첫 회사에서 진짜 잘 배웠습니다.’ 라는 말을 할 수 있다.



손과장님이랑은 해외 출장을 아주 여러 번 같이 갔었는데(그때는 숙박비 예산이 인당 150~170불이어서 럭셔리한 호텔에 묵을 수밖에 없었던 부서 특성상) 룸 하나를 둘이 같이 쓰곤 했다. 해외 출장을 많이 다닌 분들은 알겠지만, 둘이 해외에 나가서 방까지 같이 쓰게 되면 정말 며칠을 밤낮으로 같이 붙어 다니게 되어 안 친해질 수가 없다.


뉴욕, 런던, 파리 등에서 하루에 6-7개 되는 투자자와의 미팅을 마치고 나면 사실 엄청 피곤해진다. 특히 미팅 내내 앵무새처럼 같은 말을 계속 떠들다 보면 기력이 많이 떨어지게 되고, 투자자를 찾아가는 미팅을 할 때는 이동도 잦고 거기에 시차까지 있으니 몸이 처지는 것은 당연한 수순이다. 나도 여러 번 가다 보니 나중에는 ‘그냥 호텔에서 쉴래’ 라는 말이 자연스레 나오게 되었다.


그러나, 이런 도시들을 처음 경험할 때는 어찌 쉴 수가 있단 말인가. 시골 벽지에서 서울 처음 와본 사람처럼 얼마나 신기하고 신났겠는가. 그래서 시차나 피곤함 따위는 잊고 저녁에 어디든 돌아다니고 싶은데.. 나 혼자 온 게 아니니 그럴 수가 없었다.


그럴 때마다 손과장님은 흔쾌히, 아니 오히려 나서서 나를 관광시켜 주었다. 선배가 같이 다녀줘야 금융기관도 따라붙고 그러면서 소소한 혜택들이 있는 건데, 선배는 여러 번 간 곳이면서도 처음인 나를 위해 또 가주면서 지루하지 않은 척을 해주었다.(나중에 내가 그 위치가 되어보니 상당히 귀찮은 것을 참아내면서 해준 것이었다.)



내 기억이 맞다면, 샌프란시스코에서 미팅을 끝내고 저녁 직전에 금문교를 보면서 나눈 대화인 것 같다.

“과장님, 아 제가 정말 출세했네요. 이런 곳도 다 와보고.”

“뭐가 출세야. 이게 무슨 출세야.”

“회사 다니면서 이런데 와보는 사람이 얼마나 되겠어요. 과장님, 감사합니다. 몇 번 오셨다고 들었는데 저 때문에 또 귀찮게 여기 와주시고.“

“아니야. 안 귀찮아. 나도 저거 보니까 기분 좋다.”

“감사합니다. 나중에 제가 신세를 갚겠습니다.”

“뭔 소리야. 무슨 신세를 갚아.“


“나중에 과장님 더 잘 되시도록 제가 진짜 더 잘하겠습니다.”

“아니야. 내가 특별히 해준 것도 없어.“

“아닙니다. 받은 게 너무 많습니다.“

“한결아.“

“네?”

“혹시라도 나한테 받은 게 있다면 그건 나한테 갚는 게 아니야. 니가 나중에 후배들한테 갚아.”

“아..”


원래 선배들한테 고맙게 받은 건
후배들에게 돌려주는 거야.
 그게 진짜 선배한테 갚는 거야


“아! 네.. 알겠습니다….!”





내가 또 너무나도 좋아하던 선배님은 김경준 차장님이었다. 그분은 우리 기획팀으로 전배 돼서 왔을 때부터 나에게 매우 인상적이었다. 기획부문 전략기획팀으로 오시면서, 전체 부문원에게 미리 메일을 보내셨다. 본인은 누구고 어떤 경력이 있으며, 취미와 특기가 뭐고, 앞으로 잘 부탁드린다 라는 취지의 메일이었다.


차장님이나 되는 분의 그런 소개 메일은 나에게 너무 신선했고, ‘이 분은 깨어있는 사람이다’ 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동안 기획부문에서 찾기 힘든, 고산지에서 찾은 산소마스크 같은 선배님이었다. 그래서 그때부터 나는 그분에게 호감이 있었고, 나중에 그 팀으로 가게 되었을 때 잦은 만남을 갖고 싶었다.


기계공학과 출신이지만 문과생보다 더한 감성이 있었고, 정말 남을 배려하는 것이 뚜렷하게 보이는 분이었다. 내 눈에는 일도 정말 잘하셨는데, 특유의 여유로운 말투가 나쁘게 보는 사람들 눈에는 느릿느릿한 사람으로 인식되어 버린 것인지 매우 인정받는 모양새는 아니었다. 그러나 그럼에도 나는 그분의 선함이, 그분의 포용력이 참 좋았다.



한 때 나에게 힘든 시기가 있었는데, 내 얼굴에 근심과 걱정이 가득하여 회사생활조차 문제가 있을 수도 있겠다 생각을 하신 건지 결국 나를 부르셨다. 나무람은 1도 없었고 그저 나의 자초지종을 들으시고는(누군가로부터 위로받는 것을 그때는 창피하다고 생각해서 자초지종의 ‘자’만 얘기했는데도) 함께 슬퍼해주는 느낌이 났다. 그게 정말 고마웠다.


나의 말을 찬찬히 들으시고는,

“한결아. 인생은 삼륜바퀴가 있는 수레와 마찬가지야. 바퀴 하나는 가족이고, 또 다른 하나는 친구와 같은 주변사람, 마지막 하나는 직장이다. 그중에 하나가 부러지더라도 남은 두 바퀴로 일단 앞으로 전진을 해야 한다. 그래야 부러진 바퀴를 고치러 갈 수 있지. 근데,


바퀴 하나 무너졌다고
다른 바퀴들마저 무너뜨리면,
너는 다시 앞으로 나가기 힘들어


일단 지금 그 바퀴가 고쳐지기 전까지 다른 바퀴들은 튼튼하게 지키자.”


“아! 네.. 알겠습니다.”




라떼시절과는 달리 지금의 MZ세대에게 선후배 관계의 변화는 선배도 후배도 그 누구의 탓이 아니라 시대가 변하고 세대가 달라져서 일어나는 현상일 뿐이다. 요즘은 과거와 같은 선후배 관계와는 많이 다른 듯하여, 옳고 그른 것이 아닌 ‘다른 것’ 임을 밝힌다.


위 얘기들은 사실 좋은 것만 써놓아서 그렇지, 회사를 다니는 선후배 관계에 어찌 잔소리가 없었고 어찌 혼냄이 없었겠는가. 그럼에도 그것을 나 잘되라고 하는 소리라고 믿었고, 그러다 보니 유대관계가 돈독해지면서 지금도 잊지 못하는 대화들이 나온 것이다.


요즘은 조언 자체가 마치 꼰대로 인식되는 상황에서 어떤 선배가 조언(나쁜 말로는 싫은 소리 라고 할 수 있다)을 해주려고 할 수 있을까. 그리고 그 조언을 해줘도 고맙다고 여기지 않는 것 같으면, ‘그럼 그렇지’라고 하면서 포기해 버리는 것이 실상이 아닐까.


‘선배는 선배답게, 후배는 후배답게’라는 생각 자체가 너무 옛날 마인드이기 때문에 선후배 관계의 모든 것이 조심스러운 요즘 회사생활이다.



가끔 궁금하다. 아니 항상 ‘정말로‘ 궁금하다.

도대체 과거의 선후배 관계에서 장점만 쏙 떼서 지금의 선후배 관계에 붙이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 것인가. 지금의 선후배 관계에서 단점을 조금만 떼버리고 과거의 낭만을 받아들이게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어떻게 하면 선배와의 대화를 차단하고자 하는 에어팟을 가끔 빼게 할 수 있을까. 그저 ‘내리사랑’을 하는 것이 우리 선배들의 소명인 것인가.


나에게는 라떼의 시대가 낭만의 시대로 기억되는 몇개의 순간들이 있다. 그 낭만을 라떼의 느낌이 아니게끔 이름만 달리 하여 후배들에게 돌려주고 싶다. ‘선배들한테 고맙게 받은 건 후배들에게 돌려주는 거야.’라는 훌륭한 가르침을 잊지 않고 있기 때문에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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