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감 01 | 결과, 과정, 기본
- 이번 글은 아득한(?) 과거 에피소드가 아니라 오늘날의 이야기입니다 -
대기업에서 일을 잘한다는 사람은 뭐가 다를까. 어떤 사람이 일을 잘한다고 평가를 받을까.
회사마다 보통 다르겠지만, 내가 다닌 세 군데 모두 일을 잘한다는 사람에게 에이스라는 호칭을 썼다.
“그 사람이 그 부문에서 에이스야” , “그 과장은 거기 에이스라서 절대 빼올 수가 없을걸?” 이런 얘기가 심심치 않게 들린다. 에이스라는 호칭으로 한번 평가되면 오랫동안 그대로 인식되곤 한다. 그러니까 어떤 reputation을 쌓던 그 평판이 오래가기 때문에 초기에 좋은 모습을 보이는 것이 중요하다.
그럼 누가 에이스가 되는 것일까. 어떤 유형의 사람들이 결국 일 잘한다는 소리를 들을까. 세 군데 회사를 통해서 판단컨대, 크게 세 가지 유형으로 나눌 수 있는 것 같다.(물론, 한 부서에 오래 있어서 대리말 또는 과장초중 정도 되는 사람이 그저 그 부서의 에이스라는 소리를 듣는 경우도 많다.)
첫 번째는 결과를 내는 사람이다.
특히 영업, 구매, 마케팅 등 성과를 내야 하는 팀들에서는 훌륭한 결과를 보여주는 사람이 에이스 소리를 듣는다. ‘그 친구가 맡으면 달라.’ , ‘그 매니저는 툭탁거려도 결국은 항상 결과가 좋아.‘라는 말을 듣는 경우가 많은 사람이 곧 에이스다. 예를 들어, 영업은 어떤 과정이었던 결과적으로 좋은 실적을 내면 그것으로 좋은 평가를 받고, 구매는 같은 퀄리티를 같은 양에 원가절감해 온다면, 마케팅은 시장의 반응을 매우 뜨겁게 만든다면, 우리는 곧잘 에이스라 부르곤 한다.
실적을 어찌 매번 좋게 나오게 할 수 있느냐 하겠지만, 그것은 운에 따라 더 잘 되냐 못 되냐의 정도 차이는 있을지언정 그래도 잘하는 사람은 그걸 또 잘 되게 만든다. 그것이 내외부 사람들과의 네트워크로 뚫어내던, 윗사람들에게 더 많은 리소스를 부여받던, 평범한 직원들은 여타 이유에 따라 시도하지 않는 것을 그들은 실행해내는 성향 또는 습관 또는 DNA를 가지고 있다. 한걸음 차이인 경우도 많다.
클라이언트랑 한 번만 더 통화하면 되는데, 아이디어를 한 번만 더 찾아보면 되는데, 네트워크를 한 번만 더 이용하면 되는데, 바로 그 직전에서 멈추면서 결과를 못 내는 경우가 더러 있다. 정말 큰 차이가 아닌 것인데 거기서 멈추는 사람과 끝까지 더 가보는 사람들이 있다. 일단 한 번만 더 발걸음을 내디뎌보자. 그러면 그다음 발걸음을 해야 하는지 또 보이게 되고, 나아가서 시야가 다시 또 트이는 경험을 하게 되리라 확신한다.
두 번째는 과정이 다른 사람들이다.
이 유형은 실적이라는 것이 특별히 없는 스탭부서에 해당하는 경우가 많다. 물론 스탭도 정량적인 평가를 하긴 하는데, 그것이 회사 손익에 얼마큼 기여를 했는지 수치화하기 어려운 것이 사실이다. 이러한 스탭부서 -예를 들어, 기획 재무 인사 등의 부서 - 에서는 대체로 일을 하는 과정 중에 평판이 쌓인다. 여기서 과정이라 하면, 보통 회의와 윗사람에게 보고할 때이다.
윗사람들이 있는 회의에서 졸고 있는 임원들이 쟤 뭐야 하면서 떨구고 있던 고개를 다시 들게 만드는 발표를 한다던가, 타 부서와 회의 시에 어젠다에 맞는 상황을 모두 알고 있고 전문적인 지식이 더해져서 아이디어를 내거나 놓치고 지나갈 뻔한 것을 지적한다던가 하는 사람들은 그 회의가 끝나고 나면 사람들에게 강하게 인식된다. ‘저 사람 누구야?‘
윗사람에게 보고할 때도 그렇다. 전에 항상 해오던 보고서가 아닌 본인만의 의견 - 그게 배경지식이나 네트워크에서 나오게 되는 경우가 많다 - 을 하나라도 더 넣어서 보고를 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리고 준비한 의견을 말씀드릴 때, 윗사람의 반응이 생각한 것과 다를 때, 에이스들은 차이가 난다. 왜 과거와 달리 이번에는 다른 의견이 필요한지 분석적으로 접근하고, 그 의견을 선뜻 받아들이지 못하는 윗사람에게 의견을 수용시키는 데에 높낮이를 조절한다.
(보고와 회의는 특히 관리자 이상으로 승진하는 데에 있어서 매우 중요한 부분이라, 다음에 더 자세히 다루고 싶다.)
세 번째 유형으로는 기본기가 꾸준한
사람들이다.
결과와 과정(보고/회의)에서 특출 난 부분이 안 나타나더라도, 우선 기본기가 충실하고 그의 지식과 네트워크에 신뢰가 가는 사람들이 있다. ‘에이스’라는 칭호를 설령 못 받을 수는 있으나, 오히려 동료들이 가장 함께 하고 싶은 유형일 수 있다.
회의에 들어가도 맑은 머리와 수첩이나 태블릿을 항상 챙겨가며 예전 자료를 가장 먼저 찾아내고 꼼꼼히 기록하고 정리해놓는 사람. 보고에 들어가서 독특한 의견은 없어도 과거에 왜 이렇게 해왔는지에 대한 분석이 꼼꼼히 되어 있는 사람. 아이디어가 뛰어나진 않아도 그동안의 히스토리를 물어보면 충분히 대답할 수 있는 사람이 바로 그런 사람이다.
특히 이런 사람은 메일이나 전화로 필요한 사항을 요청하거나 다른 쪽에서 요청한 사항에 대한 답변을 할 때, 비로소 그 꾸준함이 여실히 드러난다. 메일의 정갈함과 무엇을 요청하는 지가 드러나는 명확함, 그리고 예의가 묻어 나오는 워딩과 말투.
그런 부분을 겪다 보면, 그 기본기만으로 ’그 사람 진짜 많이 알아.‘ , ‘자료 요청하면 답변 오는 게 진짜 원하는 대로 딱 와있어.‘ , ’같이 회의하면 정말 현재 상황까지는 머릿속에 정리가 다 되어 있더라고.‘라는 말들을 듣게 된다. 그렇게 일 잘하는 사람으로 인식받게 되고, 나아가 어디 부서에서든 잘할 것 같은 기본기를 갖췄기 때문에 서로 데려가고 싶은 사람으로 평가하게 된다.
결과. 과정. 기본.
세 가지 다 갖춘 사기캐가 가끔 있지만, 그런 사람까지 쫓지는 말자. 이 중에 한 가지라도 본인이 잘할 수 있는 것을 한다면, 에이스 소리 듣는 것은 아무것도 아니다.
회사에서 일을 잘한다는 것은 어떻게 보면 쉽고, 어떻게 보면 매우 어렵다. 이해해야 할 것이 비단 업무뿐 아니라, 부서 간의 상황을 이해해야 하고 위아래 그리고 옆의 사람까지 잘 이해해야 하기 때문이다.
일을 조금 잘하는 사람은 업무를 잘 이해하는 것이고, 일을 아주 잘하는 사람은 그 이상을 이해하는 사람이다. 그렇게 하는 것이 어렵다면 어려울 수 있으나, 사실 조금만 노력하면 아주 큰 어려움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그저 ‘남에 대한 관심이 있으면 된다’ 고 말하고 싶다.
또 하나 덧붙이면,
사람을 이해하는 데에 어려움을 겪는 것’은 너무나도 당연한 일이니까 너무 스트레스를 받지는 말자. 회사에는 다양한 사람이 있고, 모든 사람을 다 이해하기는 - 특히 목소리 크고 인성이 부족한 사람들을 마냥 이해해주는 것은 진짜 더 - 어렵다. 스트레스를 덜 받으면서 업무에도 지장을 주지 않기 위해서는, 업무 때문에 부득이 받아들여야 하는 ’포용‘과 실제로 본인이 커버할 수 있는 ‘포용’ 사이에서 적절한 밸런싱을 해야 한다.(해결책에 있어서 중용을 얘기하는 것만큼 비겁한 것이 없지만, 그게 정말 정답이라 그렇게 얘기할 수밖에 없다.)
너무 스트레스받지 말지어다. 남들에게 조금만 관심들을 주고, 스스로는 조금만 관심에서 벗어나겠다 하면 한결 마음이 나아질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