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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입사원 부서 배치 = 군대의 자대 배치?

02 | 술 잘해요? 영어 잘해요? 아니요..

by 아우구스티노



2005년 봄,

지금 시각은 오전 8:30.

낮은 파티션으로 둘러싸인 3평 정도 되는 조그만 회의실. 말이 회의실이지 테이블 하나 둔 작은 회의공간으로 3:3 미팅이 겨우 가능한 곳이다. 그 회의실의 테이블은 지금은 상상하기 힘든, 그러나 옛날 사람은 다 아는 편수책상 같은 느낌의 테이블이 하나 덜렁 놓여있었다. 또 그런 테이블과 어쩜 그렇게 잘 어울리는지, 잔뜩 무거워 보이고 실제로도 무거웠던

'ㄴ'자 받침으로 된 의자에,


그런 올드함과 나는 다르다고 드러내고 싶었는지, 나는 나름 최신의 트렌디한 핏의 양복을 입고 앉아있었다. 그러나, 그것은 혼자만의 생각이었을 뿐

밖에서 나를 봤다면 어리버리 신입사원 그 자체가 아니었을까.


그런 바깥의 시선도 모른체, 나는 "오늘은 부서 배치를 받을 수 있는 건가, 와 3일째 이게 뭐 하는 거냐." 하면서 밖을 또 한번 두리번거리고 있었다.

그때만 해도 스마트폰은 당연히 없었고, 겨우 문자 기능 정도가 있지 않았나 싶은데 핸드폰의 기능이 잘 기억도 안 날 정도로 멍충한 핸드폰을 그때는 좋다고 들고 다녔었다.


그래서 뭐 할게 없어서 멀뚱멀뚱. 어디서 꿔다놓은건지 정말 보릿자루 느낌 그대로, 인사팀의 한켠 파티션에서 대기한 지 3일째였다. 거의 8주 정도 진행되었던 그룹 연수는 이미 받았고 그 이후에 계열사별 연수도 받은 상황에서, 엄청나게 많았던 동기들은 각자의 부서로 배치가 된 것 같은데, 나는 3일째 인사팀에서 대기 중인 것이었다.


'아마도 어디 보낼 곳이 애매한가 보다.'

상경계 출신을 재무 부서로 보내고 싶었겠지만 재무에는 더 이상 TO가 없었던 것 같고, 그렇다고 아무 부서에나 그냥 보내기에는 신입사원 중에 희귀한 문과생이라 - 회사가 기술 베이스의 기업이라 거의 대부분 직원들이 이공계여서, 당시 300명에 달하는

신입사원 동기들 중에서도 문과생은 30명도 되지 않는다는 소문을 들은 적이 있었다 - 다소 아까운 자원이었던 듯하다.


그렇게 나는 나름 머리를 굴려가며 현 상황을 추측해 본다. '그래도 그렇지 군대도 아니고 무슨 3일이나 이렇게 대기를 타게 하냐' , '여긴 좀 군대 문화인 건가 아니면 나만 이렇게 오래 걸리는 건가' 라는 생각을 하고 있던 그때, 낯익은 사람과 전혀 처음 보는 사람이 함께 들어오면서, 낯익은 사람이 말한다.




이 친구입니다.



'응? 뭐지? 드디어 뭔가 변화가 오나 보다.'

낯익은 사람은 인재개발팀 팀장님으로, 이미 연수 때부터도 봤었고 여기 3일 대기하면서 여러 번 뵈었던 분이다. 다른 한 분은 얼굴은 거무튀튀하고 키는 나보다 - 이 당시에는 180을 훌쩍? 넘겼는데, 지금은 180이 간당간당합니다. 야속한 세월.. - 보다 커 보였던 덩치 좋아 보이는 아저씨로만 보였다.


"어, 알겠어. 내가 한번 얘기 좀 해볼게."

"네, 그럼 말씀해보시고 알려주세요. 애는 제가 보기엔 괜찮아요." 라고 말씀하시면서 인재개발팀 팀장님은 파티션을 탁 치면서 사라진다.

'뭐지, 이 왜 탁 치고 가시는 거지? 제가 보기엔 괜찮아? 저 정도면 좋게 얘기해주고 가는 거 맞는 거지?'

라고 생각하는데, 바로 질문이 들어온다.


"이름이 어떻게 되죠?"

"네, 최.한.결. 이라고 합니다."

'또박.또박. 뭔가 좀 빠릿하게 보이자. 그래 이 정도면 깔끔했어.'


그러나, 깔끔이라는 말은 여기서 쓰는 것이 아닌 건지, 장비와 같은 느낌의 이 분은 이름을 듣는 둥 마는 둥 자리에 앉으신다. 그리고 자리에 앉자마자 날아오는 두 번째 질문.



술은 얼마나 먹어요?



이름을 물어본 것을 제외하면, 그게 첫 질문이나 마찬가지인데, 이 질문이 바로 나의 회사생활에 있어서 절대 잊을 수 없는 질문 중의 하나이다.


'와, 바로 술을 물어보네. 술 한잔도 못하는데..'

'술을 잘 마실 수 있었으면 저는 영업으로 지원했었을 겁니다요. 영업 자신 있는데 술 못 먹어서 경영지원으로 지원한 겁니다.' 라는 말이 마음 속 수면 밑에서만 작게 첨벙첨벙대면서, "아, 제가 사실 술은 거의 못 합니다. 소주 반 병 겨우 할 수 있습니다."

사실 소주 한잔만 먹어도 심각한데, 뭔가 거짓말을 해야 할 것 같긴 하고, 그러나 그렇다고 뻥을 세게 치긴 어려웠다. 솔직히 나에게 소주 반 병도 심한 허세였다. 그 정도로 나는 술에 있어서는 절대 회사에서 성공하기 어려운 사람이라 생각했었다.

"아, 그것밖에 못 해요?"


싸늘하다.

근데 지금 오신 분이 어느 부서의 누군지도 모르겠고, 내가 이 부서로 간다는 보장도 없으니 마냥 어필만 할 수는 없는 것 같고, 그래서 그냥 솔직하게 가자 라고 생각했다.

"네, 술은 정말 잘 못 먹습니다. 죄송합니다."

'일단 죄송합니다 한번 때려줘야지.'

"음, 점점 늘려야겠네. 지금 집은 어디예요?"

"네, 강남 쪽에 있습니다."

"고등학교도 거기서 나온 건가, 그러네. 8학군 출신이네. 암튼 서울이니까 좋겠네."

아마도 내 지원서를 보면서 말씀하시는 것 같은데, 나는 8학군 출신은 맞지만, 8학군에서의 부유한 태생의 친구들과는 한참 다른 무늬만 8학군 사람이었다.

'응? 여긴 수원인데? 서울이니까 좋겠다는 게 서울 살아서 좋겠다는 건가?'

갸우뚱하고 있는데 바로 또 들어오는 질문.



영어는 그래도 잘하죠?



비수가 날아와 꽂힌다.

처음엔 술이더니 이번엔 영어.

'아. 나는 회사에서 잘되기 어려운 조건들이 확실히 많구나.'


귀한 문과생에 대한 기대가 있으셨을 텐데, 죄송하게도.. "아, 네. 영어를 잘한다고는 말하기 어려운 것 같습니다."

"뭘 그렇게 돌려 말해. 잘 못한다는 거구만. 음. 참나. 어쩌나."

'음.. 술도 못 먹고 영어도 못 하는 나는 3일이 아니라, 일주일을 기다려도 부서 배치를 못 받겠구만. 흠.'


그런데 들려오는 무서운 말. 그러나 생각해보니 다정한 말.

"열심히 공부할 거죠?"

"네! 영어는 안 그래도 진짜 열심히 공부하려고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오케이, 그럼 나중에 더 얘기하는 걸로 하고.. 일어납시다."


'응? 면접 통과인가? 이제 나도 부서배치를 받은 건가?'





다른 회사는 어떤지 모르겠지만, 일반적으로 부서 배치가 - 때로는 황당하게 이루어지는 경우도 있지만 - 아주 밀도 안 되게 이루어지지는 않는다. 물론 완벽한 로직으로 부서 배치가 된다고 말하는 것은 무리다. 그러나, 부서장들이 지원서의 자소서를 통해 충분히 검토를 하고 여러 사람 중에서 상대적으로 우리 팀이랑 가장 잘 맞을 것 같은 사람을 선호하게 되는데, 그 이후에 부서 간의 조율을 통해, 원하는 사람을 뎃고 오려고 노력한다. 그게 부서장의 중요한 역할 중의 하나이다.


부서 배치에는 스펙적인 부분이 영향을 미치는 경우가 당연히 클 수밖에 없지만, 회사를 합격한 친구들의 스펙은 아주 큰 차이가 나지 않기 때문에 자소서의 한 줄, 한 문구가 영향을 미치는 경우도 많다. 미묘한 의미의 한 문장. 맘에 걸리는 하나의 워딩.


그런 것들을 열심히 안 보는 부서장도 있겠지만 꼼꼼한 부서장은 그런 것을 다 보곤 한다. 또 부서마다 원하는 탤런트가 다소 다르기 때문에, 어딘가에서는 좋게 보이는 한 문구가 다른 부서에서는 뽑고 싶지 않은 문구로 바뀔 수도 있다.


여하튼, 다양한 이유로 그 작은 단어 하나에 의해 선입견이 생기게 되고 결국 좋은 스펙에도 어떤 부서에서는 데려오려고 하지 않는 일이 발생할 수 있는 것이다. 이것은 예전이나 지금이나 같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나의 아저씨에서 주인공 이지안(아이유)은 남들이 보기엔 보잘 것 없는 지원서였겠지만, 부서장인 박동훈(이선균)의 눈에는 지원서에 적힌 ‘특기:달리기’가 매우 인상적이었던 것처럼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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