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3 | 이런 느낌이 바로 소속감이구나!
"김팀장, 내가 오늘 이 친구 데려갈게, 그렇게 처리해 줘."
낮은 파티션이라 일어서기만 해도 인사부문이 훤히 보이는데, 가깝게 앉아계시던 인재개발팀장님에게 살짝 웃어가면서 저음으로 말씀하신다.
뭔가 처치곤란을 떼어내서 좋기라도 하신 건지, 버선발 아니 슬리퍼발로 달려 나오시면서
"아 네, 박팀장님, 애 괜찮죠? 알겠습니다. 나중에 메일로 안내드리겠습니다."
알겠다. 이 분은 박팀장님. 아직 어느 부서인지는 모르겠지만, 분명 고참 팀장이시고, 두 분은 각 부서의 팀장인데 뭔가 친한 사이였던 것 같다. 박팀장님이 일어나면서 말한다.
"최한결 씨, 갑시다. 짐 싸세요."
"네, 팀장님!"
지금도 존경해마지 않는 나의 첫 팀장님의 그 말투는,
너는 이제 내 새끼다 라고 말하는 것 같았다.
직장에서의 어미새가 나타난 것이다.
'3일간의 방치 끝에 나도 이제 소속감이 생기는구나. 근데 어디 팀인 거지.. 나는 어디로 배치받은 건가.'
'술이랑 영어가 중요한 부서인가 보다. 아 둘 다 못하는 나는 이제 어떻게 되는 건가.'
낮은 파티션으로 가득 찬 그곳은, 인사부문만 해도 5개 팀, 기획부문 4개 팀, 재무부문 4개 팀, 관리부문 3개 팀이 한 개 층에 모두 모여있는 상당히 큰 공간이다. 그 층에만 사람수가 230명 가까이 있었던 것 같다. 그 층에는 사장실도 있었고 CFO와 각 부문의 임원들까지 다 있어서 전사 핵심 스탭 부서가 집합되어 있는 그야말로 Headquater 층이었다.
팀장님을 따라서, 인사 부문을 벗어나 ‘내가 갈 곳은 기획이냐? 관리냐?' 라고 생각하면서 마린을 쫓는 메딕처럼 딱 붙어서 걷고 있었다.
'재무에는 TO가 더 없었던 것 같으니까, 관리부문이겠지. 신입이 기획부문을 가진 않겠지.'
그런 생각을 하면서, 당연히 그 층 어딘가에 갈 것이라고 생각했었는데, 갑자기 엘리베이터를 탄다.
'엥? 뭐지? 어디 가는 거지. 뭐야. 여기서 일하는 게 아니야? 그럼 사업부 스탭으로 가는 건가?'
그렇게 전사 스탭이 있는 건물의 1층으로 내려오고, 그 광활한 사업장에서 내가 갈 곳은 어디인가 하는데, 회사 정문 쪽으로 방향을 틀어버리는 게 아닌가.
'아. 뭔가 커피를 한잔 사주시려나 보다. 아주 군대 같지는 않네. 휴..'
왜냐하면 정문 밖으로는 체육관을 겸한 대형강당과 구내식당, 그리고 커피숍과 선물가게 등이 있는 건물이 있기 때문이다. 이미 계열사 연수 시절부터 몇 주 동안이나 통과한 곳이니까 능숙하게 사원증을 삑~ 대고 빠져나간다.
'자, 어느 커피숍으로 가시려나. 내가 가서 잽싸게 자리를 맡아서 이쁨을 받아야지.' 라는 생각을 하면서
건물이 있는 왼쪽을 바라보고 있었는데, 아니다. 오른쪽이다. ‘어! 뭐지!?’
왼쪽은 건물 오른쪽은 버스승강장이 있었다. 이 승강장은 고속버스터미널 수준까지는 아니지만, 지방에 웬만한 터미널보다는 크게 느껴지는 곳이다. 거기서 강남 잠실 과천 강서 등등으로 가는 직원들의 통근 셔틀버스를 타는 곳이다. 나 역시 강남에서 수원까지 출퇴근을 셔틀버스로 하고 있었다.
팀장님은 바로 그 승강장으로 향하고 계셨다.
'응? 뭐야 이거. 도대체 어디 가는 거야. 뭐지.'
'저기 회사로고 박힌 저 버스 한 대는 이 시간에도 왜 서 있는 거야?'
"한결 씨, 이거 타세요."
"네. 알겠습니다"
'당황하지 말자. 뭔가 이유가 있겠지. 여유 있는 모습으로 시키는 대로 하자.'
그때는 진짜 몰랐다.
회사가 서울사무소가 따로 있다는 것을.
우리 회사는 수원이 본사인데 수원을 제외한 2개의 큰 사업장이 지방에 있다는 것은 알고 있었고, 각지에 사무소 성격으로 몇 군데 더 있는데 서울사무소 역시 따로 있고, 그 서울사무소와 본사를 왕래하는 셔틀버스가 90분에 한 대씩 있다는 것을 전혀 알지 못했기 때문에 나는 정말 어디로 가는지 전혀 모르고 버스를 탔다.
'설마, 지방을 가는 건 아닐 거야. 지방은 공대생 위주로만 가던데, 의사도 안 물어보고 지방으로
보내버리는 것은 아닐 거야. 설마.'
버스에서는 메딕 모드가 풀렸다. 팀장님 옆자리는 서로 불편할 것이기에 대각선 반대편 정도에 자리를 잡았다. 창밖으로 행선지가 서서히 보인다. 톨게이트가 보이고 어느 쪽으로 가는지 선명해졌다.
그렇게 나의 첫 근무지는 서울로 향하고 있었다.
신입사원에게 첫 부서배치는 엄청난 일이다. 군대에서 운전병이 되냐, 작전병이 되냐, 행정병이 되냐 가 군생활 대부분을 결정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우리가 부서배치 하나만으로 ‘나는 하기 싫은 부서에 갔어 TT’ 라고 하기엔 이르다.
어떤 특기를 받더라도, 어떤 곳에 자대 배치를 받더라도, 어떤 고참들을 만나는가에 따라 군생활이 풀리냐 꼬였느냐 하는 법이다. 어떤 선배들이 어떻게 분위기를 만들어주고 어떻게 가르침을 주는 곳인가 에 따라 회사생활의 첫인상이 결정되고, 오래 근무하게 될 것인지 쉽게 퇴사하게 될 것인지가 판가름날 수 있는 중요한 일이다.
결국은 직무보다 사람이 먼저인 것 같다. 어떤 선배들이 있느냐가 매우 Critical 한 것이었는데, 나중에 설명하겠지만 나의 경우는 좋은 선배들로부터 정말 잘 배운 것 같아 지금도 그 선배들을 생각하면 고마운 마음이 가득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