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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우구스티노 Feb 11. 2023

면접관에게 ‘너무 예쁘세요’라고 말해버렸다

16 │ ‘면접머신’ 이 되게 해준 이불킥


내가 다른 사람들보다 조금 더 잘하는 것이 있다면, 그것은 아마도 ‘면접’ 일 것이다. 적어도 회사 면접에서는 실패한 경험이 떠오르질 않는다.


반장 선거에서의 연설 또한 어느 정도 면접과 비슷하다고 한다면, 고등학교 때 동아리 반장에 나섰다가 떨어진 것이 유일한 경험인 것 같다. '고등학교 동아리 반장 얘기가 면접이랑 무슨 상관이 있어?' 라고 할 수 있겠지만, 그때의 기억이 나의 면접 역량에 상당한 자극이 되었기 때문이다. 처음 만나는 새로운 사람들에게 잘 보여야 할 상황에서, 자신감 없는 모습으로는 절대 좋은 결과가 없음을 여실히 깨달아서 향후 나의 면접 인생에 엄청난 영향을 주었다.


우리 고등학교 3대 동아리 중의 하나에 나의 중학교 친구들과 함께 우르르 가입했었다. 친구들의 표만으로도 쉽게 반장으로 뽑힐 것으로 생각하고서, 전혀 준비되지 않고 정제되지 않아 안남쌀처럼 풀풀 날리는 말들을 쭈뼛쭈뼛 대면서 내뱉어 버렸다. 그에 대한 결과는, 다수였던 친구들의 표만으로도 반장이 될 것이라 기대했던 것과는 달리, 숨고 싶을 정도로 처참한 표 차이로 떨어졌다. 내 친구들마저 나를 안 뽑은 것이다.

 

'아, 나의 자신 없는 모습이 내 친구들마저 나를 뽑고 싶은 생각을 안 하게 만들었구나.'

그날 나는 집에서, 엄청나게 후회했다. 친구들에게 실망한 것이 아니라, 쭈뼛쭈뼛 대던 못난 모습이 계속 떠올라 이불킥을 몇 번이나 했는지 모른다. 이 흑역사는 나에게, '그렇게 말해서는 나 같아도 안 뽑았겠다' 라는 생각을 하게 해 줘서, 참으로 고마운 사건이다.


자신 없고 매력 없는 말을 해서는, 나와 함께 하고 싶을 이유가 1도 없다는 것을 깨달은 이 사건 이후로, 말을 어떻게 하는 것이 좋은 지에 대해 많은 생각을 했다. 특히 사람들과의 대화를 관찰한 것이 큰 도움이었는데 '저런 말 들으면 기분이 진짜 좋아지겠다..' , '저렇게 얘기하니까 저 사람 표정이 급격히 어두워지네..' 같은 간접경험을 하면서 타산지석과 반면교사를 통해 많이 배웠다.


그래서 대학 시절부터 나는 여러 형태의 면접에서 떨어져 본 기억이 없다. 심지어 그동안 면접을 본 경험들에 대한 기억이 또렷하다. 그중에서도 가장 기억에 많이 남는, '회사' 라는 곳에 처음 면접을 봤던 경험을 기록해 본다.




2004년 봄, 사대문 안에 있는 어떤 빌딩에 50명 가까운 사람들이 면접장에 대기하고 있었다. 대기시간 포함하여 거의 4시간 동안 진행되는 면접을 위해 수많은 취업준비생들이 모인 것이다. 면접은 전공PT / 토론면접 / 영어면접 / 임원면접 이렇게 4가지가 있었다.


전공PT


이과 친구들은 기술PT 라고 하여 좀 더 학문적인 요소가 담긴 주제가 나왔지만, 문과생들에게는 전공 관련하여 전혀 어렵지 않은 주제들이 있었다. PT는 학교 때부터 팀플 할 때마다 발표는 도맡아 했기 때문에 큰 두려움이 없었다. 지금과 달리 그 당시의 주제는 상당히 단순했었기 때문에 어려움이 없었다. 그저 발표의 구성과 자신감을 보려고 했던 것 같았다.


토론면접


당시 주제가 수도권집중화에 대한 찬반 토론이었다. 6명 정도가 한 조가 되어 3:3으로 나눠져서 찬반 역할을 하는 것이었다. 우리 조에서 반대쪽 편의 면접자가 말을 하도 많이 하길래, 다들 말할 타이밍을 놓치고 당황들 하고 있었다. 나는 속으로 '저 친구는 떨어지겠다' 라는 생각을 하면서도, 눈치게임 하듯 오디오가 겹치지 않게 자연스럽게 껴들어가야 한다는 생각만 하고 있었다.


나는 주제를 보자마자 '말은 나면 제주로 보내고 사람은 나면 서울로 보내라' 는 속담 하나만 생각했다. 누가 이 말을 먼저 하지 않길 바라면서, 눈치게임 3번이 앉자마자 내가 재빠른 모션에 부드러운 어조로 4를 외쳤다. 다행히도 그 속담 하나로 찬성 입장을 잘 설명할 수 있었는데, 눈치게임의 6번은 벌칙을 받듯 미처 자신의 의견을 얘기하지 못한 것이 기억에 남는다. 그리고, 분량을 너무 많이 차지해서 애꿎은 희생자를 만들어낸 첫 번째 면접자의 이름을 머리에 저장해놔야겠다 싶었다. 명찰에 '안X근' 이라고 쓰여있었는데, 훗날 확인해 보니 우리 동기들 사이에 저 이름은 없었던 것을 보면 합격하지 못한 것으로 추측이 된다.


임원면접

임원면접이 제일 중요하다는 얘기를 많이 들었기 때문에, 다소 긴장이 되었다.(실제로 지금 생각해 보면, 정말 임원면접이 가장 중요하다. 붙이는 것도 떨어뜨리는 것도 90프로 이상 임원들의 결정이다.) 임원면접은 면접자 한 명과 임원 3명의 1:3의 면접이었는데, 임원들이 많이 피곤해 보여서 순간적으로 그런 생각을 했다.


'임팩트 있는 말만 간결하게 하자'

'임원은 실행력을 중요하게 생각할 거다. 그 컨셉만 밀고 나가자'


여러 가지 질문 중에 가장 기억나는 것은, '당신은 어떻게 리더를 자주 하게 되었는가?' , '존경하는 사람은 누구인가?' 라는 질문이었다. 둘 다 전혀 준비를 하지 않은 질문이어서, '억!' 이라는 어려움이 있었지만, 컨셉대로 밀고 나가자고 생각했다.


'한차례 리더를 통해 실행력을 보인 것이 주효했습니다. 그 이후로 말만 하는 사람이 아닌 강한 실행력을 통해 결과를 만들어내는 사람이다 라는 이미지를 갖게 되었습니다.'

이 대답이 현재 리더라고 할 수 있는 임원들에게 공감이 되었는지, 고개를 끄덕이게 만들었다.


내면적 성숙도가 부족한 사람이 존경하는 사람이라고 해봤자, 마이클 조던 아니겠는가. 그래서 다른 사람은 전혀 떠오르지 않아서 당황할 뻔했다.

'아, 큰일 났네..'

그런데, 문득 안중근 의사가 떠올랐다. 아까 그 토론 때 임팩트 있었던 면접자의 이름이 안중근 의사랑 이름이 비슷하다 생각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무작정

'안중근 의사를 존경합니다.'

라고 내뱉어버리고, 또 '실행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사람' 이라는 컨셉을 끼워 넣었다.


'저는 백 마디 말보다 직접 실천하는 사람이 위대하다고 생각합니다. 안중근 의사는 그 자리 그대로 붙잡힐 것을 알면서도, 실행을 해낸 진정한 영웅입니다. 그 실행을 할 수 있는 의지가 너무 존경스럽다고 평소 생각해 왔습니다.'

라는 취지의 대답을 하니까, 졸고 있던 임원의 눈이 반짝이더니 고개를 아까보다 더 심하게 끄덕이는 게 보였다. 사실 이때 이미 합격을 확신할 수 있었다.


영어면접

왠지 합격을 할 것 같다는 오만함에 마지막 영어면접만을 남겨 두고 있었다. 4가지 면접 중에 가장 마지막 면접이었고, 우리 조가 거의 마지막으로 영어면접을 하는 차례였다. 이미 면접장에 온 지 오랜 시간이 흘러서 조원들도 많이 지치고 면접관들도 엄청 지쳤겠다는 생각을 했었다.


4가지 면접 중에 가장 중요하지 않은 것이 영어면접이라고 소문을 들었지만, 그래도 영어를 못하는 나에게는 영 불편한 면접이었다. 다들 나처럼 영어를 못하기를 기대하면서 대기장의 조원들에게 물어본다.

'영어 잘하세요?'

'아니요. 큰일입니다.'

'영어 잘하시죠?'

'아니요! 하나도 못해요..‘

라고 하길래 다들 마찬가지구나 라는 생각으로 영어면접을 들어갔다.


7명이 한 번에 들어간 면접장에는 외국 여자분이 질문자였고, 그 뒤로 따로 면접관 3명이 앉아서 평가를 하는 듯했다. 자기소개를 하라고 해서 제일 왼쪽에 앉은 사람부터 말하는데, 나는 바로 망했다고 생각했다. 분명 영어 못한다 했던 조원들이

'저는 뉴저지에서 중학교 때 살았었구요.'

'저는 3학년 때 밴쿠버로 어학연수 1년을 다녀왔는데..'

이런 얘기들을 해가면서 다들 블라블라 영어를 잘하는 것이 아닌가.

'으악! 치사하다!' 라는 생각을 하면서 5번째 차례였던 나는 심호흡을 하고 어떻게 이 위기를 극복할지 생각해 본다.

'그래, 지금 이 기분을 그대로 얘기하자.'

'어차피 내 영어는 쉽다. 다 알아들어 줄 것이다. 쫄지 말자. 나는 치사하게 거짓말은 안 했잖아!'


"hello, i am Hangyeol Choi. um.. actually.. um.. i am very surprised.. at this situation. they said um.. they can't speak english very well. but now! um.. i'm shocked!"

내 차례 오기 전까지 내가 준비할 수 있는 최선의 단어 조합이었다. 미소와 손짓을 최대한 예쁘게 써가면서 최선을 다한 것이다.


다행히 외국 여자분도 웃고, 대기장에서의 내 모습을 아는 사람들이라서 그런지 같은 조원들도 다 같이 웃고 화기애애했다. 아마도 나의 영어가 진짜 이렇게 형편없을 줄 몰랐던 것 같다. 그래서 밑에 깔고 갈 수 있는 사람이 나타나니까 다행으로 여기며, 나의 영어에 웃어준 것일지도 모른다. 그 이후 영어를 잘하는 조원들은 더욱 신이 나서 얘기하고, 나는 꿀 먹은 벙어리처럼 시선을 말하는 사람들 쪽으로 테니스 시합 구경하듯 고개만 왔다 갔다 했었다.


'아, 이대로 끝나면 안 된다. 나는 말한 게 없다. 이대로면 위험하다.'

'다른 면접 잘한 거 여기서 다 까먹는다.'

'뭐라도 한마디 더 하자. 내가 할 수 있는 영어의 최선을 생각해!'  하면서 쥐어짜기 시작한다.


드디어 마지막. 외국인 여자분이 말한다.

"Ok. Any comments? This is last time."

외국인은 면접자들을 한 번씩 스윽 훑어보다가 나를 더 많이 쳐다보는 듯하다.

'뭔가 이건 나에게 기회를 주는 거다. 일단 내지르자.'

'이미 나는 영어 못하는 사람으로 되어 있다. 괜찮다. 밀고 나가자.'

그러고 나서, 문제의 발언을 하게 된다.


"um.. I think.. You are so beautiful."

외국인 여자분을 포함하여, 면접장 전체가 빵 터진다.

'다들 나를 우스운 사람으로 인식하고 있기에 가능한 것인가.'

 

"But, you look um.. so tired. um.."

"So you need to take a rest. please um.. Keep beautiful."

'뭐 이런 놈이 다 있어?' 라는 생각이었는지 저 뒤에 앉아있는 면접관들마저 웃음이 가득하다.

'모르겠다. 영어 못한다고 가만히 있을 수는 없지 않나. 될 대로 돼라'라고 생각하는데, 어디선가 들려오는 'Bonus' 라는 단어.


외국인 여자분이 매우 웃으면서

'hahaha. i'd like to add some bonus point at this score card.' 라는 듯했다.(사실 제대로 못 알아들었다. 알아들은 것은 뭔가 종이에 적는 듯한 제스처와 보너스라는 단어뿐이었다.)

같은 조원들의 오~~ 하는 반응이 이어졌지만, 갑자기 밀려오는 부끄러움은 5미터 파도만큼 거대했다.


그렇게 나의 첫 회사 면접은 마무리되었고, 합격자 발표날 나는 내 이름이 당연히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영어면접에서의 부끄러움이 ‘당연히’ 라는 마음을 조금씩 갉아먹었지만, 그래도 임원들이 강하게 고개를 끄덕인 것이 모든 것을 커버했을 것이라 믿었기 때문이다. 그렇게 나는 처음으로 면접을 본 회사에 운 좋게 합격해 버렸다.




나는 첫 면접 이후에도 2군데의 면접을 더 봤었다. 이미 4학년 1학기였던 4월 말에 첫 회사 합격 통지를 받았으나, 입사는 12월이었다. 많은 시간이 남아있어서 두 군데 면접을 더 보았다. 연봉을 훨씬 더 많이 주는 회사와 누구나 가고 싶어 한다는 회사였는데, 그리 어렵지 않게 두 군데 모두 합격을 했었다. 이때의 친구들은 나에게, 면접이란 면접은 모조리 붙는 모습에 ‘면접머신’ 이라는 별명을 붙여주기도 했다.(결국 세 군데 회사 중에 retention을 위해 보여준 모습이 좋았던 첫 번째 회사로 최종결정을 했었다.)


시대가 그때와는 너무도 달라졌기 때문에 나의 면접 후기가 크게 도움이 안 될 수도 있다. 특히, 나의 영어면접처럼 황당한 에피소드는 지금 통하기 매우 어려울 것이다. 그러나, 나는 다른 두 곳의 큰 회사에서도 면접을 쉽게 통과한 경험과 이직을 위한 몇 차례 면접에서도 다 합격한 경험이 있다.


그리고 지금 회사에서는 팀장으로서 4년째 신입사원 면접관으로 들어가고 있는데, 이 경험으로 면접자와 피면접자의 입장을 보다 정확하게 알게 된 것도 중요한 부분이다. 1차 면접관으로서 내가 뽑는 친구들이 결국 2차 임원면접을 통과해서 최종합격하는 것을 보면 내가 보는 기준이 매우 보편적이거나 또는 적어도 현재의 면접장에서 중요한 기준으로 작용한다고 생각한다.


따라서 20년 전 면접자로서의 나와 지금 면접 심사위원으로서의 나는, 면접 합격의 비결 같은 것이 있다고 감히 확신한다. 글이 너무 길어져서 계속 이어서 쓰기보다는, 다음 주까지 ‘면접 합격의 비결’ 이라는 주제의 글을 대기업 팀장의 촌철살인 피드백이라는 매거진에 올릴 계획이다.(어그로는 아니고 글이 너무 길어지면 읽기가 많이 힘들더라구요.)


당신이 면접에서 매우 어려움을 겪는다던가, 5군데 중에 1군데만 면접에서 합격하는 상황이라면 나의 다음 글을 읽어보길 조심스레 권한다. 분명히 면접 통과 확률이 조금은 또는 많이 높아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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