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6 | 뉴커머에게 좋은 첫인상을 주고 싶다면..
생각해 보면, 아침 8시 반에 팀장님을 만나서 셔틀을 타고 서울에 올라왔고, 나의 첫 팀을 만나고 인사를 돌고 했는데도, 겨우 오전이 지나가고 있었다.
오전이 지났으면 뭐다? 그렇다. 직장인에게 업무보다 중요할 수 있는 점심시간이다. 아무리 힘들어도 점심에 좋아하는 것을 먹으면 힐링이 되곤 하는데,
그런 점심시간이 다가왔다. 그야말로 첫 팀에서의 첫 식사다.
"팀장님, 신입사원도 뎃고 가나요?"
"어 그럽시다. 한 명 더 자리는 되는 곳이지?"
"네, 넓은 자리입니다."
"한결 씨, 갑시다."
"아직 명함이 없어도 그냥 가서 인사만 잘하면 돼."
'뭐지. 어딜 가는 거지?'
'수원에서 구내식당을 이용했었는데, 여기서는 식사를 어떻게 하지? 이 건물에는 우리 계열사만 있는 게 아니던데, 여기도 구내식당이 있나?'
하지만, 묻지 않는다. 당연히 또,
"네!"
분명 선배들이 보기에는 참 어색했을 그 양복을 나름 잘 차려입었다고 여기면서 선배들을 따라나선다. 그때만 해도 자율복장 따위는 언감생심 생각도 못해보던 시대였기 때문에 다들 양복을 입고 있었다. 기억이 가물가물한데 넥타이도 다 했었던 것 같다. 나는 당연히 신입사원 부서배치 첫날이었으니까 했었고.
지하로 내려가더니, 뭔가 지하와 지하 사이를 지나는 느낌.
'아 건물 몇 개가 지하로 연결되어 있나 보다. 아. 여기가 다 계열사 건물이니까 서로 연결되어 있구나.'
그렇게 어딘지 모를 건물의 지하에 갔더니 근사한 식당이 여럿 보인다. 그중에 특히 근사해 보이는 곳으로 들어가더니 기다리고 있던 3명이 사람들과 인사를 하기 시작한다.
"아, 여기는 우리 신입사원 최한결 씨. 오늘 오자마자 여기 뎃고 온 겁니다."
확실히 나의 양복과는 감이 다른 것 같은 사람들이 놀란 눈을 하면서 인사를 건넨다.
"오, 안녕하세요. 오자마자 첫날이면 정신없겠어요."
"안녕하십니까, 최한결입니다. 명함은 아직 없습니다."
"네, 다음에 받으러 다시 오겠습니다." 하면서 명함을 건네주는데 'UBS'라고 쓰여있다.
'UBS?'
그때만 해도 더욱 무식했고, 더욱 우물 안 개구리였기 때문에 UBS가 뭐 하는 회사인지 잘 알지 못했다.
뭔가 외국계 회사인가 보다 하면서 명함을 받고, 구석에 쭈그리처럼 앉는다. 그리고서는 그들끼리의 대화.
나는 무슨 말인지 알아듣지 못했고, 음식이 뭐가 뭔지도 모르겠고, 그냥 선배와 같은 걸로 시키고, 조용히 음식만 먹었다.
조용히 있긴 했지만, 퓨전이탈리아 음식점 같은 곳이었고, 가격은 대충 보니 음식 하나당 25,000원은 넘는 것 같던데, 그런 식당에서 양복을 입은 사람들이 서로 대화를 주고받는 그 모습이 멋있어 보였다.
이런 곳에서 점심미팅을 하면서, 다들 여유가 있어 보이네.
‘오 근사해.. 오 그럴싸해..’
긴장해서 경직되어 있을 만도 했는데, 나는 별로 그런 것 같지는 않았다. 이미 팀장님께 저 술 못해요, 영어 못해요. 하면서 기대감을 낮춰놓아서 그런지,
뭔가 다 까발려진 느낌으로 이제 앞으로 잘해나가면 되지 뭐라는 생각을 했던 것 같다. 그래서 마치,
골프 스코어 따위는 관심도 없어서, 골프장의 다양한 조경과 풍광에 감탄하고 있듯이 나는 어차피 구석에 앉아있었기 때문에 조용히 그 분위기를 느낄 수가 있었다.
그런 거 보면 나는 긴장을 아주 많이 하지는 않는 스타일이었는데,
이런 여유가 회사 생활에는
중요한 경쟁력이었던 것 같다.
맛이 어땠는지는 기억이 안 나는데 암튼 근사한 곳에 내가 떡하니 회사원으로서 자리하고 있다는 사실 그 자체가 좋았다. 그래서 아직까지 첫 점심 그 장소 그 느낌 그 사람들을 기억한다. 마냥 좋았던 기억이다. 그리고 그게 회사에 대한, 부서에 대한 강렬한 나의 첫인상이었다.
그래서 나는 팀장인 지금, 신입사원이 오거나 경력사원이 오거나 암튼 뉴커머가 있으면 첫날 반드시 좋은 곳에 데려가서 식사를 한다. 이왕이면 저녁으로 하고자 하는데, 여의치 않으면 반드시 점심으로라도 그런 시간을 가진다.
팀장이 아니었을 때도, 당시 모시던 팀장님이 별로 안 챙겨줄 때도, 저녁에 어떻게든 시간을 내서 단 1시간 반이라도 시간을 마련해서, 좋은 식사를 사주려고 했다.
그렇게 환영을 받느냐 마냐, 어떤 곳에서 어떤 분위기로 식사를 하냐 마냐가 정말 오래가는 기억이 된다는 것을 잘 알기 때문이다. 내가 첫 점심이 지금까지 기억에 나듯이, 나도 뉴커머들에게 그런 인상을 주고 싶어서 반드시 그렇게 한다.
최근 우리 팀에 온 신입사원은 첫날 저녁에 호텔에 있는 레스토랑에 갔다. 그때 그 호텔에는 해가 지는 것이 보이고 노을이 정말 예뻤는데, 그 풍경과 그 음식과 그 분위기가 신입사원은 너무나도 좋았던 것 같다. 식사 중에 너무 감사하다는 얘기를 많이 하던데, 만족해하는 게 충분히 느껴졌다. 마치 내가 신입사원으로서 첫 점심에 그랬던 것처럼.
내가 지금까지 기억하는 것처럼, 이 친구도 나중에 계속 기억에 남지 않을까. 내가 그때의 장소와 사람들, 분위기를 기억하는 것처럼, 이 친구도 이 순간을, 같이 있던 동료들을 기억하게 되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