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썸머 Aug 19. 2023

회피형 남편과의 1차 대첩...

결론은 그의 승!

다툼 후, 남편은 잘 하겠다고 했다.하지만 우리의 관계가 결혼 준비로 접어들자 그의 고집은 더욱 심해졌다. 소통은 되지 않았고 아무리 울고 소리지르고 화를 내고 애원해도 그는 한번 내린 자신의 결정을 융통성 있게 조절할 줄 몰랐다.


나는 남편과의 관계에 확신을 갖지 못하고, 연애 초기 주위 사람들에게 열심히 물어보고 다녔다.


하지만 아무리 나를 위하는 사람들이라고 할지라도 남의 연애나 결혼사에는 좋은 방향으로 조언을 해줄 수 밖에 없다. 헤어져라, 파혼해라와 같은 조언은 쉽지 않으니 말이다.


 그 당시 내가 들었던 이야기들이다.


남고-공대-군대 루트를 밟으면 다 그렇게 된다.
여자 형제가 없어서 그렇다.


지금 생각해보면 임시방편에 불과하지만 당시로서는 꽤 효과적이었던 해결 방법을 제시해준 친구도 있었다. 


밥값을 누가 내느냐로 서운해하지 말고 데이트 통장을 사용해라.
화를 내지 말고 데이트 매너를 하나씩 가르쳐라.


그는 1도 손해보고 싶어하지 않아하면서도, 나에게 1도 손해를 끼치고 싶어하지 않아했다. 서로 서운하고 이해가지 않는 부분들이 있었지만 연애를 할 때는 그런대로 맞춰 갈 수 있었다.


오늘 어떤 영화를 볼까? 어떤 메뉴의 밥을 먹을까? 이 정도만 서로 합의하면 되었으니 말이다.




큰 문제들은 결혼 준비를 하면서 일어났다.


불안형이 '팔랑귀'라면 회피형은 '옹고집'이다. 


회피형은 자신이 한 번 생각하고 결정한 것을 다른 사람의 의견에 따라 유연하게 바꿀 수 있는 능력이 없다. 어떤 이유에서건 남편이 한 번 결정을 내리고 나면 나는 이를 설득하거나 바꿀 수 없었다.


회피형의 의견에 따르지 않으면 일은 아무 것도 진행되지 않는다. 왜냐하면 그는 그가 뜻한대로 진행할 때까지 버티고 있기 때문이다.


결혼을 진행하며 결정할 사항은 한두가지가 아니었다. 우리는 따로 신혼집을 계약하거나 혼수를 하지 않았기 때문에 딱 신혼여행-결혼식 이 두가지만 준비하면 되었다. 하지만 이렇게 몇 안되는 것들을 결정하는 것도 쉽지 않았다. 그가 원하는대로 맞춰주지 않으면 그 어느 것도 결정되지 않았고 다음 단계로 넘어갈 수 없었다.


여기에 더해 남편은 무엇 하나 고르는데 시간이 아주 많이 걸리는 성격이다. 회피형 성격은 아니고 이건 그냥 그의 성격. 그는 수십가지의 경우의 수를 다 하나하나 살펴보고 알아보고 견적을 받고 나서 최종적으로 선택한다. 그리고 이 과정을 무척이나 즐거워 한다. 하지만 결혼 준비를 하면서 이러고 있으니 속에서 열불천불이 솟구쳐 올랐다.


청첩장을 고르는 단계에서 우리는 몇 개월을 실랑이했다. 나는 청첩장 샘플을 수 십장을 받았고, 이 중에서 하나를 골랐고, 문구를 정했고, 몇 장을 찍을지 정했다. 이걸로 몇 개월을 싸웠다.


해야할 일은 첩첩산중인데, 본인은 하기 싫다고 버티고 서있고 겨우 설득하고 나서는 무엇하나 고르는데 세월아 네월아 하고 있으니 속이 탔다.


한 예로 예물이 있다.


예물은 참깨 다이아 하나 없는 커플링만 하나씩 나눠 끼웠다. 문제는 여기까지 결정하는데 몇 개월이 걸렸다는 사실이다. 그는 결혼 반지를 끼고 싶지 않아했다. 반지는 일하는데 불편하다고 했다. 그렇게 반지를 하고 싶으면 하나만 사서 나 혼자 끼라고 했다. 왜 결혼 반지를 나눠 끼어야하냐고 버텼다. 


우여곡절 끝에 심플한 커플링을 사서 하나씩 나눠 끼기로 했다. 문제는 그 다음이었다. 이 커플링 하나 하는데에도 한 달동안 여러 매장을 방문해야했고, 여러 반지를 살펴봐야했다.


반지 하나 하는데에도 고구마를 백만개 먹은 것처럼 답답했다.


문제는 그 뒤로도 결정해야할 일들이 첩첩산중으로 우리를 기다리고 있다는 사실이었다.


혼수도 생략, 예단도 생략, 한복도 생략, 예물도 생략, 이바지도 생략, 스튜디오 사진도 생략, 프로포즈도 생략... 온통 생략한 것 투성이인데도 남들보다 수십배로 힘들고 고통스러운 결혼 준비가 계속 되었다.


그는 모든 과정에 있어서 아래와 같은 고집만 반복했다.


대부분의 것은 하기 싫었기 때문에 "하기 싫다", "필요하면 너 혼자 해라", "그게 왜 필요하냐"고 말했다.


그리고 해야한다고 생각되는 것들은 이미 본인이 다 결정한 뒤였다. 자신의 판단을 나에게 통보했다. 신혼여행은 000으로 갈 것이라고 통보했고, 청첩장은 총 000 부를 찍겠다고 통보하는 식이었다. 그리고 한번 내린 결정은 그 어떤 설득과 협박, 애원으로도 바뀌지 않았다.


회피형은 관계 안에서 성장하긴 하지만 관계는 그 자리에 멈추지 않고 발전해나간다.연인은 부부가 되고, 부모가 되고, 함께 내 집 마련을 해야하는 등 관계의 발전은 회피형이 성장하는 것보다 더 빨리 저만치 앞으로 나아간다.


“원래 결혼준비하면 많이 싸워”라는 그 말을 믿었고 그렇게 비정상적인 상황을 참고 또 견뎠다.


설레고 기쁜 마음으로 고르고 결정해야할 것들이 나의 분노와 원망, 비난 속에서 모두 그의 뜻대로 결정되었다.


회피형과 함께 사는 사람들은 공감할 것이다. 집에 걸어놓는 시계 조차 디자인이며 위치며 모두 회피형의 뜻대로 되어야만 하다는 것을 말이다.


다 끝나서 괜찮은 줄만 알았던 신혼여행


마침내 결혼식과 신혼여행이 끝났다. 나와 남편이 둘다 "목표지향적"인 사람들이라서 가능했던 시간이었다. 오로지 이 과정을 잘 끝내야한다는 공동의 목표가 있었고 달려왔다.


문제는 이 과정이 모두 끝난 후였다.


남편은 훌륭히 큰 일을 해냈다고 생각하며 뿌듯해했다.


하지만 나는 달랐다. 내 가슴에는 활화산처럼 활활 타오르는 분노만 남아있었다. 그 분노를 가지고 우리의 신혼생활이 시작되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가장 안타까웠던건 이를 인지하고 도와주고 조언해줄 어른이 4명의 부모 중 단 한 명도 없었다는 사실이다.


그들은 모두 우리의 결혼으로 얻게 될 자신들의 이익만 계산했다. 10원 한장 안보태주어도 스스로 해내는 장남. 장녀의 결혼은 부모님에게는 이익만 될 뿐이었다.


자랑이 되어주고 귀찮은 일을 대신 해주고 평생 그들이 짊어왔던 무거운 짐을 바톤터치해줄 존재일 뿐이었다.


그들은 가만히 앉아 앞으로 받기만 하면 될 아들/사위, 딸/며느리 노릇을 헤아렸다.



그 혹독한 댓가를 나와 남편은 결혼 10년차가 되어도 치르고 있다.




브런치에는 개인적인 이야기 위주로 올려요. 회피형 남편과의 문제를 해결했던 <이론>에 대한 이야기는 클래스101 강의에 더 많이 담겨있습니다. (14일 무료 이용 가능)

https://101creator.page.link/BZCX





이전 02화 회피형 남편의 변하겠다는 약속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