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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썸머 Aug 19. 2023

해결이라고 생각했던 임시방편

때로 임시방편도 필요해!


이렇게 평생 원망을 들을 줄 알았으면 당신의 뜻대로 결혼을 했을텐데


결혼식이 끝나고 나서부터 무려 1년 동안이나 불쑥 튀어나오는 나의 화를 받아내야했던 그가 했던 말이다.


그는 '내 고집만 부려서 미안해'가 아니라 '평생 원망 들을 줄 알았으면 그냥 져줄걸'이라고 생각했다.


도대체 지난 일을 가지고 왜 1년 동안이나 화를 냈냐고 물어보는 사람이 있을 것 같아서 덧붙인다.


회피형에게는 상대의 마음에 공감해주고 위로해주고, 화를 달래줄 능력이 없다.


그는 내가 내는 화를 그저 듣기만 했고, 듣다듣다 하는 말이라고는 '나같은 건 죽어야겠구나'가 전부였다. 그 말을 들은 나는 말문이 막혀 더이상 말을 잇지 못했다. 그리고 이 과정이 계속 반복되었다.


더군다나 함께 사는 과정에서도 서로 결정해야할 일들이 수십가지, 수백가지였다. 지난 갈등도 해결이 되지 않았지만, 매일매일 새로운 갈등이 생겨났다. 작게는 '오늘 저녁에 치킨을 시켜먹을까 말까'부터 '여름 휴가는 어디로 갈까까지' 말이다. 


눈뜨면 싸우기 시작해서 눈을 감을 때까지 싸웠다. 


도대체 어떻게 하면 우리가 함께 살 수 있을지 도저히 감이 잡히지 않았다. 절박한 마음으로 교회에서 매주 예배르 드렸다.




죽고 사는 문제 아니면 그냥 넘어가세요.


그런 와중 듣게 되었던 설교 내용이었다. 목사님은 당회나 교회 안에서 핏대를 높여가며 싸우는 것을 싫어했다. 죽고 살만큼 심각한 문제가 아니라면 싸우지 말고 그냥 넘어가라는 설교를 참 자주하셨다.


지금 생각해보면 당회나 교역자, 직분자들 사이에서 일어나는 여러 다툼으로 인해 설교를 빙자해 여러번 반복해서 한 말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나는 이를 하나님께서 우리 부부에게 주신 메시지라고 생각했고 적용하기 시작했다.


나는 죽고 살만큼 심각한 문제가 아니면 그냥 넘어갔다. 나는 아무 의견을 내지 않았고, 철저하게 그의 의견에 맞췄다. 


그 결과, 그 모든 크고 작은 결정은 오직 남편의 뜻대로만 되었다. 그가 먹기 싫으면 내가 아무리 먹고 싶어도 치킨을 먹을 수 없었고, 그가 가고 싶으면 아무리 피곤해도 나는 서울과 경상도를 가로지르는 빡쎈 여름 휴가를 떠나야했다.


영화관에 가면 그가 좋아하는 액션 영화를 보았고, 마트에서 라면을 몇 봉지 집어오는지까지도 그의 의견을 따랐다.


하지만 어떠한가? 눈을 뜨면서부터 싸우기 시작해서 눈을 감을 때까지 싸우는 것보다는 백만배 낫지 않은가?


하나님께서 우리 부부엑 주신 메시지라고 생각했던 해결방법은 사실 회피형과 함께 살아야하는 상대가 대부분 선택하는 임시방편이었다. 바로, 회피형의 뜻에 모두 따라주는 것이다. 회피형의 뜻에 따르지 않으면 시계를 벽에 걸 수 조차 없다. 그는 자신이 원하는 시계를 자신이 원하는 위치에 걸 때까지 버틸 것이기 때문이다. 시계가 없는 것보다는 그의 뜻에 따라주는 것이 낫다고 느껴진다.


그렇게 우리 부부 사이에는 평화가 찾아왔다.


비록 임시방편 이긴 했지만, 이 방법은 우리 부부에게 큰 도움이 되어주었다. 


바로, 시간을 벌어준 것이다. 우리는 임시방편을 통해 싸우지 않을 수 있었다. 


내가 먼저 흔들리지 않아야했다. 가스라이팅과 돌봄 중독에서 벗어난 여정을 담은 책


그렇게 번 시간 동안, 나는 부모로부터 받은 학대의 트라우마를 지우고 불안을 낮췄다. 상담을 받았고, 공부를 했고, 부모와 정서적으로 거리를 두다가 결국 관계를 정리했다. 돌봄중독과 종교중독에서 벗어나는 여정을 시작했다. (나의 저서 <당신은 지나치게 애쓰고 있어요(https://www.yes24.com/Product/Goods/101301112)>에 이 과정을 담았다.) 점점 회피와 불안을 반복하는 혼란형에서 벗어나기 시작했다.


남편과의 관계를 회복하기 위해서는 내가 먼저 회복되어야만 했다.


그리고 우리 두 사람은 공통의 취미 생활을 시작했다. 바로, <여행>이었다. 나의 우울증을 극복하기 위해, 그리고 남편의 유일한 취미였기에 400만원을 주고 구입한 중고차를 끌고 미국 이곳저곳을 다녔다. 이 기억들은 우리에게 좋은 추억과 이야기 거리가 되어주었다. 서로 원망과 분노가 아니라, 나눌 수 있는 긍정적인 대화거리를 많이 쌓아놓을 수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이 시간 동안, 나는 많은 희생을 해야했다. 내 것, 내 의견을 고집하지 않고 집안에서 일어나는 것들을 모두 남편의 뜻대로 하도록 맡겨야했다. 그래도 괜찮다고 생각했다.


급한 불을 끌 수 있도록 시간을 벌어주었으나, 임시방편은 임시방편일 뿐이었다.


우리 부부는 결국, 외면했던 문제로 다시 돌아와야만 했다. 두 사람의 의견을 조율하고 함께 합의를 도출해내는 것을 다시 배워야만 했다.




브런치에는 조금 개인적인 감정과 기억 위주입니다. 애착유형에 대한 공부가 필요하거나 해결 방법이 필요한 분들은 클래스101 강의 참고해주세요. (14일 무료 이용 가능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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