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화동에서
몇 년이 지난 일이다. 그러나 지금도 깜돌이가 보고 싶고 문득문득 생각이 떠오른다.
도화동 대로변에서 우측으로 들어서면 동네 입구에 담을 헐어 오픈시켜 놓은 우리 집이 있다. 전 주인이 살 때는 집은 담이 높고 무거운 듯한 파란 대문 집이었다. 우리가 집을 사서 이사 온 후 담벼락을 헐고 대문도 철거했다. 마당에 사람들이 드나들 수 있게 했다. 모과나무와 라일락 나무가 있는 화단 앞에는 벤치가 있다.
화단에는 칸나가 6월부터 10월까지 빨간색으로 화려하게 피었다. 선분홍장미는 본 적이 없는 귀한 색깔로 아름다웠다. 사월 중순부터 오월 초가 되면 라일락꽃이 피고 바람이 살랑살랑 불 때 꽃향기가 온 동네 퍼져 마음을 설레게 했다.
화단을 오픈시키고 대문을 철거하니 시골집 분위기가 풍겼다. 담과 대문을 철거 후 주차도 할 수 있고 동네 분위기가 좋았다. 우리 집은 남향집이었다. 겨울이면 아침 일찍 햇볕이 찾아들고 동네사람들이 마당에 모여 훈훈한 이야기를 나누었다. 이사 온 지 1년이 지나고 가을날이었다. 검은색에 약간 곱슬 털을 가진 작은 강아지 한 마리가 우리 집에 왔다. 강아지를 처음 맞이할 때 꼬리를 흔들며 인사를 했다. 어머 귀여워 머리를 쓰담쓰담해 주면서 이름을 물었다. 작은 건축 사무실에 3개월 된 강아지가 있었는데 키울 여건이 안 되었는지 선물이라며 데리고 왔다. 약간의 사례비를 주었다. 그래야 온전한 우리 식구가 될 것 같았다. 수컷이라 이름이 순돌이었는데 동네 분들이 깜돌이라고 불러서 자연스럽게 깜돌이가 되었다. 깜돌이가 식구가 되고 난 후 사람들은 편하게 깜돌이를 부르며 마당에 들어와서 놀고 가는 횟수가 많아졌다. 겨울에는 햇볕이 드는 마당에서 서성이면서 놀고 여름에는 벤치에 앉아 모과나무 그늘아래서 도란도란 사람들의 이야기 소리는 정겨웠다. 깜돌이는 사람들 틈에 끼어들어 깡충 뛰기도 하고 꼬리를 치켜 흔들면서 애교 섞인 목소리로 낑낑거렸다.
여름에는 출근하면서 플라스틱 통에 물을 받아 놓았다. 오후쯤 물이 미지근해지면 이웃동네 사는 유정이 엄마가 이틀에 한 번씩 깜돌이 목욕을 시키고 지극 정성으로 보살펴 주었다. 유정이 엄마처럼 동물을 사랑한 사람은 보지 못했다. 깜돌이는 동네 분들의 사랑을 받으면서 건강하게 잘 자랐다.
깜돌이 우리 집에 온 지 일 년이 넘었다. 성장을 하면서 목소리도 달라졌다. 깜돌이는 내가 퇴근하면 목줄을 풀어달라고 고개를 내밀고 산책하러 가면 킁킁 냄새도 맡고 달리기 하고 스트레스를 풀었다.
속도가 얼마나 빠른지 동네 사람들이 품종이 뭔지 물었지만 나도 몰랐다. 양몰이 개라고 의견을 낸 사람들이 제일 많았다. 깜 돌은 동네에서 명성도 얻고 인기도 많았지만 철저하게 자기만의 규칙이 있다. 신발 끄는 사람
술에 취한 사람은 제일 싫어했다. 술 취한 사람이 말을 하면 깜돌이는 싫다고 왈왈거리며 쫓아냈다. 술에 만취한 사람은 자기를 무시한다며 투덜거렸다.
깜돌이가 사료를 마당에 흘리면 “왜 사료를 버리는 거야" 야단을 쳤다. 휴일이었다 새들이 깜돌이 밥을 부리로 쪼아 먹으면서 사료가 밖으로 튀어나오고 먹는 물에 퍼덕이면서 목욕을 했다. 깜돌이는 새들을 보면서 이쁜 듯 그냥 바라보았다. “바보같이 왜 누명 쓰고 그래 야단해서 미안해 깜 돌아"
어느 날은 낚시를 다녀온 후 취사도구를 난간에 놓아둔 적이 있다. 고물을 주우러 다니는 할머니가 버린 물건인 줄 알고 가지고 가려고 했다. 깜돌이가 뱅뱅 돌면서 발뒤꿈치를 툭툭 건들고 내가 나올 때까지 못 가게 했다. 깜 돌이는 우리 집 물건은 가져가지 못하게 끝까지 지켰다.
동네 집들이 팔십 평쯤 되는 단독주택이 많았다. 옛날에는 동네가 부자동네였다고 했다. 우리는 잘 모르고 있었는데 좀도둑이 많았다고 한다. 우리 집은 육 년 동안 깜돌이 때문에 한 번도 도둑을 맞은 적이 없다. 집을 비우고 밤 아홉 시가 넘어서 퇴근하는데 물건 하나 잃어 본 적이 없다. CCTV가 동네 골목에 없었고 허술한 시기였다. 도둑맞은 집이 많아서 그런지 현관문 앞에 CCTV를 고정시킨 집이 늘어났다.
깜돌이는 여러 명의 목숨을 구했다. 술에 취해 길거리에서 잠을 자는 사람을 발견하면 앙칼진 목소리를 내어 왈왈 짖었다. 깊은 잠이 들 때는 숨넘어가는 소리로 멍멍거리며 깨웠다. 나가보면 경찰에게 전화 걸 일이 생겼다. 한 여름 술에 취한 사람이 마당에 세워 둔 RV 차 밑에서 자고 있었다. 끔찍한 사고로 이어질 뻔했지만 깜돌이가 알려주어서 사고는 일어나지 않았다. 나는 보이지 않은데 깜 돌이 눈은 레이다였다.
대부분 여름날에 일이 생겼다. 깜돌이가 위험한 것을 발견할 때 짖는 목소리가 달라진다. 숨이 넘어갈 듯 짖어대고 멈추질 않았다. 한 번은 동네 사거리 우회전 장소에서 누워 자는 사람을 발견하고. 왈왈 짖어대며 목줄을 끌고 현관문 밖에까지 와서 짖었다. 감긴 눈을 비비고 나가서 동네를 확인하고 경찰서에 전화를 걸었다.
그 시간은 새벽 두 시에서 세 시 사이 한참 꿈속에 빠져들고 있을 때다. 유선수화기를 들고 여보세요. 말이 끝나기 전에 경찰들은 우리 집 주소를 알고 있다. 새벽에 경찰서에 열 번 넘게 전화를 했기 때문이다.
깜돌이 때문에 좋은 일도 많았고 여름날에는 새벽잠을 설치는 날도 많았다.
그렇게 많은 정이 들었는데 아파트 분양을 하고 이사를 하게 되었다. 헤어지기 아쉬웠지만 깜돌이는 단독에서 사는 게 익숙하고 사람들도 좋아해서 혜어지게 되었다. 그리고 동물들을 많이 사랑한 유정이 엄마를 따갔다. 깜돌이는 공원 길을 매일 달리며 공원 둘레 길 산책도 하는 모습이 눈앞에 선하게 보이는 듯했다. 깜돌이는 우리에게 와 주었고 가족이었다. 끝까지 책임지고 같이 못해서 정말 미안했다. 깜돌이를 많이 사랑했고 보고 싶다. 몇 년이 흘렀는데 간간히 깜돌이가 생각났다. 깜돌이와 같이 한 시간이 생생하게 기억되고 보고 싶은 마음을 달래면서 글을 쓰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