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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bigjeje Aug 31. 2023

갈망의 섬을 떠나던 날

보석의 결정체 같은 아름다운 형태로 본모습을 감추고 세상 사람들을 바이러스의 펜스에 몰아넣었던 코비가 드디어 힘을 잃어갈 때 사람들은 코로나의 더 확실한 멸종을 기다리며 안전한 펜스에 머물러 있었다.

그런가 하면 기세가 꺽 긴 틈을 타 누군가는 잊힐 것 같은 세상을 향해 기꺼이 그 펜스를 거둬버렸다. 그곳에 갇혀있던 동료로부터 코로나 종식을 맞이하며 시작할 새로운 프로젝트를 위해 현장 탐방을 제안받았다. 그동안  숨죽여있던 열망은 코로나의 침입에 후각을 상실했던 나의 두려움도 그 제안을 가로막을 이유가 되지 못했다. 냉혹한 현실 앞에서  마음을 망각하려는 육체적 고통을 선택하는 도피가 더 이상 찾을 곳이 없어 간절하던 차에 서둘러 출발을 결심했다,

 

보이지 않는 물체와의 싸움에서 허망이 사라져 간 수많은 생명에게 조금이나마 죄책감을 덜기 위해  화려하고 푸른 세상을 비켜 척박하고 황량한 요르단의 붉은 사막을 택했다. 아직은 코로나에 대한 승리의 기쁨도 안전함도 기대할 수 없는 상황에서 조급하게 집을 나섰다.  무모한 도전을 한다며 비난 섞인 염려를 하는 가족을에게는 내가 해야 할 일에 주어진  기회라는 합리적인 변명을 만들면서 떠나야겠다는 의지를 굽히지 않았다.  

어쩌면 갈망의 섬에서 목마름을 견디며 세상을 향해 아직도 가슴을 조이고 있는 사람들을 위한 본보기이자 배려였는지도 모른다.


이 여정의 시작은 모험에 대한 기대감보다는 코로나에 나를 노출시킨다는 두려움과 무거운 피곤함을 동반한 출발이었다.

나처럼 인내심이 부족하거나 성질이 급한 사람들이 서둘러 나온 듯한 옷차림으로 공항에서 합류했다. 아직은 한적한 공항의 모습은 예전의 활기찬 모습을 찾아볼 수 없었다. 단체 여행객을 볼 수 없는 공항의 분위기는 아직 긴장감을 안고 휑하니 비어있었다.  

 비행기 안에서 느끼는 부산함이나 북적거리는 모습도, 지난밤 설친 잠을 청할 때 그것을 방해하는 사람들의 소음도 없었다. 옆자리는 비어있는 좌석이 많아 한가했고 편안한 비행이 될 것 같기도 했지만,  마스크로 얼굴을 사멘 승무원들  모습이 코로나의 위협에서 아직은 자유롭지 못하다는 것을 상기시켰다. 그나마 오랜만의 비행이라는 기대로 인한 설렘마저  찹찹하고 무거운 기운으로 가라앉았다.


평일 한낮에 출발하는 비행기의 차장 밖은 아직 떠나지 못한 여름 햇살과 씨름하며 자신만의 행선지로 떠나려는 비행기의 행렬로 분주했다. 무심한 비행기는 시간이 되자 남아있는 사람들은 뒤로 한 채 온 힘을 다해 날아올랐다.  비행기가 높이 올라가면 갈수록 가을을 머금은 여름 햇살에 구름은 더 희고 눈부셨다.


드디어 나는 떠난다. 멈춰버린 것 같은 시간 속에서 나의 영혼만이 세상의 끝을 향해 달려가고 있는 두려움과 외로움을 달래려고 다시 나는 떠나고 있다.

참았던 잿빛 마음은 비행기가 허공을 날아 나를 태양으로 좀 더 가까이 데려다 놓았다. 참았던 침묵이 비처럼 눈물 되어 내리기 시작했다.

죽어가는 어머니를 유리벽을 통해 바라보다 실신한 스무 살 그녀의 모습이 장례를 치르는 절차도 없이 홀로 황망한 세상으로 떠난 기막힌 죽음들이 아직 기억에서 자리하고 있는 탓일까


비었던 하늘에 비행기가 날고 구름의 한적함이 비행기의 속도에 밀리며 따라오느라 분주한 하늘, 나는 다시 그곳을  날고 있다.

언제나처럼 떠날 때 느끼는 남편에 대한 복잡한 감정들이 하늘로 치솟는 순간 떨어져 나가는 미사일의 잔해처럼  사라져 버렸다. 그것을 덮어버리는 내 안의 희열이 내 마음에 담겨있는 사랑하는 사람들과 교차하며 환호성은 침묵을 안은 뜨거운 눈물로 변했다. 물기를 잃어가는 심장의 건조함이 내 눈앞에 떠 있는 태양을 끌어안고 오열하고 싶어 진다. 죽은 자에 대한 묵념뒤에 오는 산자의 이기심이 기쁨으로 벅차오르자 눈물을 흘리게 한다.

이미 달구어지진 세상을 향한 나의 갈망은 침묵의 포효와 함께 어느새 비가 되어 내리고 그 불꽃같은 갈망은 퍼붓는 비속에서도 쉽사리 수그러들지 않았다.  갈망의 섬을 떠나 창공의 늦여름 하늘은 이미 환승지인 두바이의 하늘을 날고 있었다.

달의 계곡(와디럼)이라는 이름처럼 밤이 더 아름답다는 붉은 사막을 향해 점점 현실을 벗어난 여행자의 자세가 되어 갈망의 섬으로부터 멀어지고 있었다.

갈망의 섬은 나를 떠날 수 있게 하고  목을 축이면 언재든지  다시 돌아올 수 있게 하는 나만의 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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