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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bigjeje Aug 31. 2023

길 위에서 다시 만난 이름 선생님

     

 가을의 한 자락이 걸쳐진 덕수궁의 돌담길은 널브러진 황금색 은행잎으로 덮인 채 휴일의 방문객을 맞이했다. 으깨진 은행들의 짓궂은 쿨쿨함 위로 사람들의 발길은 균형을 잃고 흔들린다. 그럴 때마다 들려오는 크고 작은 외마디 소리와 깔깔거리는 웃음소리가 섞여 지나가는 사람들의 눈길을 끌었다.   

  

선생님!

누군가를 부르는 작은 외마디 소리도 그 소음에 섞여 귓전에서 사라진다. 발밑에서 바스락거리는 은행잎들 수다에 누군가의 목소리는 묻혀버렸고 나는 그 목소리를 지나쳐 무심히 미술관을 향해 걸음을 옮겼다.

선생님!!

조금 전 들렸던 목소리가 이번에는 한 호흡 삼켜버린 듯 짧고 높은 소리로 짤막하고 다급하게 들려왔다. 나는 반사적으로 소리 나는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지인이라고 하기에는 개인적인 만남이 그리 많지 않았던 사람이 딸과 함께 미술관 입구에 서 있었다. 나인가 싶어 잠시 주위를 둘러본다. 내 옆에는 남편 외에는 모두 전시실로 들어가기 위해 발걸음을 재촉하는 사람들뿐이었다. 생각하지 못한 사람과의 우연한 만남에 나는 놀라면서도 반가운 마음으로 다가갔다. 그녀는 나와 같은 일을 하면서 알게 된 인연으로 그녀의 딸과도 몇 번 지나치며 인사를 나눈 터였다.

선생님도 미술관 오셨나 봐요. 그녀의 딸이 애교스럽게 물어 왔다. 나는 답 대신 반가운 웃음과 멋쩍게 서 있는 남편과 두 사람을 소개하고  인사를 나눈 뒤 헤어졌다.

  

일요일에 특별히 갈 곳을 정하지 못하고 있다가 ‘길 위에서’라는 주제가 마음에 들어 남편과 정동에 있는 시립미술관을 관람하러 간 터였다.

“1900년대 초 미국 작가인 에드워드 호퍼는 현대인이 마주한 일상과 정서를 독자적인 시각으로 화폭에 담아낸 현대 미술 작가이다. 우리에게는 잘 알려지지 않았지만, 고립과 단절, 소외의 정서가 만연한 오늘날에 재조명되고 있는 작가로 알려져 있다.”

 이러한 소개 문구와 ‘길 위에서’라는 전시회의 주제가 이 전시회를 찾게 한  이유였다. 심리 상담사로 일을 하면서 세상을 향한 나의 시선이 고립과 단절 소외된 사람들을 위해 머무르기를 원했다. 그런 마음의 결정체를 글로 옮기고 싶었기 때문에 호퍼의 전시회는 의미가 있는 관람이었다. 그런 곳에서의 우연한 만남도 새로운 작가의 작품을 만나는 것만큼이나 의미 있고 새로웠다. 이 모녀는 얼마 전에 남편과 아빠를 잃고 상실감으로 힘들어한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래서인지 두 모녀와의 만남은 짧았지만 작품 하나하나가 그들과 오버랩되며 더 진한 여운으로 다가왔다. 두 사람이 나를 불러 세운  선생님이라는 호칭도 다른 날과는 다르게 마음을 건드렸다.

    

호퍼 특유의 빛과 그림자, 대담한 구도 그리고 그가 머문 도시의 자취를 작품을 통해 느끼면서 미술관 앞에서 나를 부르던 ‘선생님’이라는 호칭에 잠시 당황스러웠던 나를 상기시켜 보았다. 그리고 평범하다고 생각했기에 무관심하게 흘려버린 지나간 나의 시간을  호퍼의 작품에 담긴 그의 그림 길을 따라가며 함께 따라가 보았다.

    

"선생님"은 나에게 그리 익숙하지 않은 호칭이다. 누구의 엄마로 누구의 아내로 그러다 가끔 나의 이름으로 불리던 정체성에 대한 호칭이 언제부턴가 선생님으로 바뀌어 있었던 것을 그날 처음으로 의식하게 되었다. 같은 동료 선생님들에게는 서로 익숙하게 부르고 불리는 호칭이다. 그런데 공공장소에서 선생님이라는 호칭으로 불리고 그것이 나였다는 것에  당황했고 가슴도 요동쳤다.  어쩌면  남편과 함께한 자리여서 그런 칭호가 어색하고 부끄럼처럼 가슴을 띠게 했는 지도 모른다.  그렇다고 해도 의외의 행동을 보이는 것은 아직도 내가 가르치는 것에 대해 나의 일로 익숙해 있지 않다는 것이 된다.


그동안 나름대로 창조적인 작업을 하며 때론 남편을 도와 생산적인 일을 하기도 했지만, 공공장소에서는 선생님이라는 칭호보다는 대부분 이름으로 불리는 경우가 많았다.  나이가 들면서  심리학이라는 새로운 학문에 도전하여 학업에 몰두하고 임상에 최선을 다하면서 자연스럽게 호칭이 선생님으로 바뀌었다. 누구에게나 불러주는 아주 자연스러운 불림에 어느새 익숙해져 있었다.  당황스럽기도 했지만 싫지 않았던, 그날의 경험이 내가 하는 일에 대한 나의 정체성에 대해 다시 점검하는 계기가 되었다. 지금의 나를 만들기 위해 달려왔던 시간으로 되돌아가 나를 다시 돌아보게 했다.

    

어머니가 이루진 못한 당신의 꿈을 대신 이루게 하고 싶었던 자식에 대한 진로를 나는 무조건 거부만 했었다. 거부라기보다는 고지식하고 변화가 없을 것 같은 선생님이라는 직업이, 나하고는 맞지 않는다고 단정 지었다. 창조적이고 자유로운 일을 하고 싶다는 이유와 새로운 세상에 대한 호기심이 컸기에 내 꿈을 이루기 위한 일에 도전하고 싶었다.  꿈을 이루기 위해  여러 분야를 경험하고 길을 좁혀가면서  정착한 곳은 선생님이라는 자리였다. 나의 신념이 찾았던 자리는  결국 배우고, 배움을 주는 곳이었다.

내가 피하고 싶었던 사람과 그런 사람들이 언제나 함께 공존하는 곳이다. 그동안 추구했던 그 어떤 것 어떤 곳보다도 더 창조적이고 넓은 시선의 가치관을 원했고 오히려 나보다 더 자유로운 영혼들을 항시 만날 수 있는 곳이기도 하다. 그곳에서 나는 학생이었고 이제 비로소 그 자리를 바꿔 선생님이라는 이름으로 위치를 바꾸었을 뿐이다. 나를 찾아오는 내담자나 간혹 나의 배움을 나눠 주는 자리에서 최선을 다한다고 생각하면서 말이다. 노력도 많이 했고 그래서 놓친 나만의 시간도 있었다. 하지만 잘한다는 소리를 듣고 싶어서, 실수하지 않기 위해, 질문에 확실한 답을 주기 위해, 최선을 다한 시간이었다. 나와 함께했던 선생님과 그리고 나에게는 학생의 존재였던 그들과 얼마나 마음을 열고 그들을 대했을까 새삼 돌이켜 본다.      


지금도 여전히 나를 이끌어줄 스승이 필요하지만,  파커의 말처럼 나에 대한 신념은 있었지만, 확신은 없었기에 알아차리지 못했던 것은 아닐까 새삼스럽게 반문해 본다. 오히려 확신을 갖지 못하고 찾아만 다니던 태도가 나의 성장을 주춤거리게 했는지도 모른다. 그것을 알아차리니 이제 스승의 입장에 와 있는 나를 만나게 되었다.

화가의 그림이 담고 있는 ‘길 위에서’라는 주제처럼 길 위에서 우연히 마주친 사람이 지나간 나의 시간을 선도 없는 그림으로 재현하게 했다. 길 위에서 나를 알아봐 준 두 사람의 가벼운 스침이 나의 정체성과 신념을 나의 길 위에 온전하고 의미 있게 놓을 것을 다짐하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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