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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bigjeje Oct 02. 2023

해를 기다리며

동해의 바다는 유난히 물색이 아름답다. 틈틈이 마주하는 크고 작은 해변은 저마다의 이야기로 사람들을 만나고 모래사장에 추억을 새겨 놓는다. 명절을 맞은 동해는 더 많은 이야기를 바다에 전하려 밀려왔다 다시 뒤돌아가기를 반복했다.


초등학교 때부터 삼면이 바다라고 배웠던 지도의 둘레를 성격이 다른 바다가 에워싸고 있어 어디를 가도 쉽게 바다를 볼 수 있다. 물이 나갔을 때 더 아름다운 서해는 수심이 낮고 갯벌이 많아 풍부한 생태환경으로 사람들에게 풍요로운 먹거리를 제공한다. 남해는 따뜻한 난류의 현상으로 계절에 상관없이 많은 사람이 찾는 곳이다. 가장 깊은 바다 동해는 언제 봐도 물빛이 아름답고 파도의 위엄이 강하다. 수심이 깊은 만큼 물이 밀려오는 기세도 크고 웅장하다.  

    

처음 동해를 찾은 것은 결혼하고 아이도 낳은 후였다. 그때 만해도 동해 국도였던 7번 도로는 군인들의 초소가 많아 지금처럼 해변에 자유롭게 들어갈 수가 없었다. 속초 낙산사와 강릉의 해변이 그런대로 핫한 장소였다. 속초는 설악산까지 아우르고 있어 많은 사람이 즐겨 찾는 곳이었고 지금이나 그때나 강릉은 젊은이들의 장소이기도 했다.  

   

첫 동해 나들이에서 설악산을 등반하고 낙산사에 도착했을 때 낙산사 절 아래서 내려다보이던 옥빛 물색을 지금도 잊을 수 없다. 바닥을 그대로 드러낸 바다의 맑은 물은 당장 들어가도 괜찮을 것 같은 착각을 일으킬 정도로 그 깊이를 가늠할 수 없었다. 갑자기 뛰어들고 싶은 충동이 일었다. 맑은 물이 정화제가 되어 탁한 내 삶을 새롭게 씻어 줄 것만 같았다. 생활의 고단함도 사람에 대한 실망과 나의 무능함도 바다가 모두 품어버릴 것 같았다.

     

‘만약 내가 죽는다면 이곳 맑은 물에서 생을 마감하고 싶다. “


초라하고 척박한 인생을 동해의 맑은 물에 희석시키고 싶은 한순간의 충동이었다. 잔잔했던 바다가 물결로 바위를 치고 가며 나의 슬픔에 공감했다. '누군가도 저 바다를 보면서 이런 생각을 했던 걸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그곳은 많은 사람이 몸을 던진 곳이었다. 세월이 흐른 지금은 굵은 밧줄과 인위적인 데크길이 죽음을 막으려는 경고의 문장을 여기저기 걸어 놓고 오가는 사람을 지켜보고 있다.

그 뒤로 힘이 들면 동해의 바다를 찾아와 솟아오르는 해를 보며 가족의 건강과 사랑을 염원하고 내 인생의 운을 점쳐보기도 했다.  

    

동해의 새벽, 차가운 물속을 차고 올라오는 해에는 신비하게 묘한 기운이 있다. 동해의 겨울 해변 아침 해는 그 빛과 열기로 눈 속에 숨었던 모랫바닥을 드러나게도 한다. 흐린 날이 많은 동해의 아침은 뜨는 해의 힘찬 모습을 완벽하게 보는 것을 쉽게 허락하지 않았다. 먼 길을 달려와 구름 속에 숨어있는 해를 두고 돌아서야 할 때는 하루 종일 마음이 찝찝하기도 했다.

지난날 독백처럼 나를 품어달라고 호소했던 동해의 바다를 이제는 그 시절을 추억하며 찾아온다. 추석을 맞이한 동해를 바라보며 세상에서 수고만 하고 돌아가신 부모님을 기억하고 지나간 날들의 나의 수고를 돌아본다.     

이른 새벽부터 해변에 모여 해를 기다리는 무리가 넓적부리 도요새 무리의 날갯짓에 환호한다. 잠에서 덜 깬 모습으로 해를 기다리는 사람들의 얼굴에 작은 도요새의 앙증맞은 걸음걸이가 웃음 짓게 하고 갈매기의 분주한 아침 준비로 바다는 점점 활기를 띠어갔다.

바다에 잠겼던 해가 수평선 위로 붉은빛을 내뿜기 시작하자 한 곳을 주시하던 사람들이 마치 해바라기처럼 해를 향해 고개를 돌린다. 이미 흥분하기 시작한 어린아이들은 떠오르지도 않은 해를 향해 환호하며 손을 흔들어댔다.


기운차게 올라올 것 같던 해가 갑자기 붉은빛을 잃고 멈추었다. 기다리고 있던 회색빛 구름이 올라오려는 해를 감추고 변해 버린 검은 얼굴로 바다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사람들의 고개는 한쪽 방향을 향해 멈춘 채 한동안 움직이지 않았다. 아이들의 몸짓도 환호성도 멈추었다. 해는 보이지 않고, 점점 밝아지는 동해의 뱃길에는 새벽 바다에서 고기를 잡은 어부의 통통배가 들어오기 시작했다. 사람들이 아쉬움을 안고 숙소로 흩어졌다. 그들을 붙잡으려 구름 사이로 잠시 얼굴을 내밀던 해는 다시 검은 구름에 휘감겨 빛을 잃고 사라졌다.  

    

오늘은 해를 보지 못했다. 올 때마다 쉽게 볼 수 있는 해라면 그 신비함도 덜하겠지. 이대로 돌아서도 이제 마음이 찝찝하지 않은 것은 해를 품고 있는 동해는 내 맘속에 있고 난 언제라도 다시 올 수 있는 여유가 생겼기 때문이다.

해를 기다렸던 사람들 각자의 마음에도 그들만의 해를 간직하며 동해를 떠나갈 것이다. 떠나면서 아쉬웠던 마음은 다음 명절에 만날 동해의 해를 기약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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