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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bigjeje Nov 09. 2023

다섯 살 소녀의 마당

       

당신의 가장 어릴 적 기억은 몇 살인가요?   

  

우리는 모두 어릴 적 기억을 가지고 있다. 내가 기억하는 가장 어릴 적 나이는 다섯 살이다. 마치 하나의 영상을 보는 것처럼 황토 색 흙 마당에 혼자 앉아 무언가에 열중하고 있는 작은 아이가 보인다. 소녀가 집 마당처럼 편하게 앉아 있는 곳은 충청도 어느 면 소제지의 작은 성당 마당이다. 붉은 담벼락에는 담쟁이넝쿨이 성당을 보호하듯이 온 벽을 감싸고 있고 나는 그 담을 아주 크고 높게 기억에 담고 있었다.

마당에 앉아 있으면 또래의 두 여자아이가 나와서 나를 지켜보곤 했다. 둘은 마치 영화의 캐릭터 처럼 한아이는 너무 말라 늘 기운이 없어 보였고 다른 아이는 통통하고 성격도 밝았다. 어느 날은 온종일 성당 마당에 앉아 그 아이들을 기다린 적도 있다. 두 아이는 자매처럼 붙어 다녔고 나와 놀 때는 서로만 챙기는 것 같아 서운하기도 했다. 그 아이들은 성당에서 돌보고 있는 고아였다. 나는 항상 붙어 다니는 두 아이가 부러웠다. 나도 그 아이들 속에서 하나가 되고 싶어 고아였으면 좋겠다고 생각 했다.  그 후 기억은 없지만 아마 이런 마음으로 우리는 성당 마당을 오가며 한동안 지냈던 것 같다.


초등학교에 입학하던 날 나는 둘 중 통통한 아이와 같은 반이 됐다. 평소 마른 아이를 챙기고 성격도 발랄했던 아이다. 그 아이만 나와 같은 반이 된 것이 너무 좋았다. 이제 나와 더 친해지기를 기대했다. 하지만 그런 나의 반가움과 기대는 그리 오래가지 않았다. 그 아이는 내게 눈길도 주지 않았지만, 성당에서 가끔 만나도 말없이 혼자 성당에 앉아 제대를 바라보다 사라지 곤했다. 학교에서 마른 아이가 보이지 않아 궁금했지만, 물어볼 수 없었다. 그리고 언제부턴가 같은 반 아이마저 학교에서도 성당에서도 보이지 않았다.  

    

그 아이들에 대한 궁금증은 얼마 가지 않았다. 나는 새 학기가 되기도 전에 서울로 이사를 했고 낯선 학교에 적응하느라 그곳의 아이들은 잊었다. 성인이 되기까지 성당 마당과 담쟁이넝쿨 그리고 아이들의 실루엣만이 낡은 필름이 되어 흐린 영상을 돌려보게 했다. 그때마다 가슴에는 찬바람과 따뜻한 바람이 교차하며 그곳을 그 아이들을 그리워했다.    


40이 훌쩍 넘어서야 난 그곳을 찾아가게 되었다. 기억 속의 성당을 확인해 보고 싶은 호기심과 그리움에 대한 오랜 바람이 만들어준 기회였다.기억의 모습과는 달리 많이 변해버린 동네에 성당은 내가 생각했던 높은 담장은 없었다. 담장이 넝쿨도 보이지 않았다. 오직 흙 마당만이 여전히 황토색을 머금은 채 막 뿌려진 물기를 머금고 작은 꽃나무를 품고 있었다. 자세히 보니 한국의 양식과 프랑스 양식이 함께 하는 아주 작은 성당이었다. 성당 안은 의자 없는 좌식으로 방석들이 줄을 맞추어 놓여있었다. 너무 작고 아담해 마치 영화 촬영지에 와 있는 것 같았다. 이런 성당이 어린 다섯 살의 소녀에게는 유럽의 어느 커다란 성당처럼 크고 거대한 모습으로 기억되어 있었다.  

        

낯선 사람의 방문에 인사를 건네는 수녀님을 보니 지난 시간에 대한 궁금증을 풀고 싶었다. 우선 내가 이 성당을 집 마당처럼 생각하고 살았다고 하니 마치 고향을 찾아온 자매를 맞이 하듯 친근함으로 반가움을 표시했다. 기억에 남아 있는 붉은 담의 담쟁이넝쿨은 신기하게도 존재했던 모습이다. 유서 깊은 성지로 사람들 발길이 많아지며 허물어져 가는 담벼락을 부수고 붉은 흙마당의 운치를 살렸다고 했다. 가장 궁금했던 고아원은 현재 유치원이었다. 내친김에 설마 하면서 두 소녀에 대해 이야기를 꺼내니 그 수녀님이 오히려 매우 놀라는 표정으로 잠시 말을 멈추었다. 그리고 가슴에 성호를 긋고 나의 손을 잡으며 아주 희미하게 미소를 지었다. 나이가 지긋하지만 작은 미소를 짓는 얼굴에는 청초한 아름다움이 스치고 지나갔다.


수녀님은 그 당시에 수녀가 되기 위해 준비를 하면서 아주 잠시 이 성당에서 고아들을 돌보았다고 한다. 그 당시 두 아이를 수녀님도 너무 잘 기억하고 있었고, 나처럼 가슴에 묻어둔 아이들이었다. 둘이 자매는 아니었지만, 고아원에서 자라면서 자매처럼 지낸 사이라고 한다. 한 아이는 몸이 너무 약해 항상 다른 아이가 약한 아이를 돌보고 어디든 함께 동행했다고 했다. 그러던 중에 병을 앓게 된 아이가 학교에 들어가기 얼마 전 죽었고 남아 있던 아이는 매일 기도로 떠난 친구를 그리워했다. 나는 성당 안에서 기도하고 있던 그 아이의 모습을 기억하고 있다. 갑자기 가슴이 먹먹해 오며 목젖을 건드려 숨이 멎는 것만 같았다. 눈물이 나오려다 멈추었다.

그 뒤 남아 있던 아이는 해외로 입양 갔고 결국은 수녀가 되어 지금은 이태리 어느 수도원에 있다고 한다. 한국에 올 기회가 있으면 항상 이 성당을 찾아와 머물다 간다고 했다.


어린 시절 잠시 스쳤던 누군가가 수녀님이 되어 차 한잔 속에 기억을 담아내고 수많은 사연을 증언해 주듯이 들려주었다. 그 시절 그때의 사람이 내 추억의 장소를 지키고 있는 이 순환의 되돌림을 나는 어떻게 무엇으로 설명할 수 있을까.

마치 삶의 한 시나리오를 읽어 내려간 것 같은 수녀님과의 만남을 뒤로하고 햇빛에 더욱 붉게 드러난 흙 마당을 내려다 본다. 두 아이에게 소외감과 질투와 부러움을 느꼈던 성당 마당에는 고아 대신 유치원 아동들이 흙 놀이를 하고 있었다. 여름이 깊어 가는 푸른 하늘에는 수많은 잠자리 떼가 아이들의 머리 위를 날고 아이들은 그 날개를 잡으려고 웃으며 뛰어다닐 때 지나간 기억의 두 아이가 그 위를 함께 좇고 있었다.  

    

100년 이상의 세월 속에서 너무 작게 축소되었던 그 성당(합덕 성당)은 현재 순교지의 한 곳으로 더 크고 다듬어진 모습으로 제법 큰 규모로 모습이 바뀌었다. 흙 마당에는 녹색 잔디가 깔리고 주위는 잘 다듬어진 건물들이 하나둘 들어서서 옛 모습은 찾을 수 없다. 기억에서만 존재하는 그곳의 옛 모습을 이제 누가 그대로 기억하며 찾아온 방문객에게 되돌려 줄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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