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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bigjeje Nov 11. 2023

엄마의 문을 닫고 나와서

외할머니와 엄마 그리고 나, 어느 집이나 세 여자의 관계는 아름답고 오묘하다.

7남매의 막내였던 엄마는 유독 외할머니에게는 마음이 쓰이는 자식이었다. 일찍 세상을 떠난 

남편대신 큰 아들이 가장이 되어 집안을 거두니 이들과 며느리에게 시어머니로서의 권위나 대접은 

기대를 할 수도 없었다. 그런 환경에서 막내딸의 결혼은 더욱 할머니의 가슴을 아리게 했고 평생 딸 때문에 

편한 잠을 들지 못했다. 

그중 가장 큰 이유는 엄마는 아이를 셋 낳았지만 두 아이는 돌도 지나지 않아 가슴에 묻었다. 나도 돌 전에 크게 병치레를 하고 살아나 그나마 엄마의 유일한 자식이 되었다. 그 뒤로 엄마에게 아이가 찾아오지 않았다.

아들은커녕 더 이상 아이가 들어서지 않은 딸 때문에  할머니는 사위의 눈치를 살펴야 했다. 시댁에서 자식문제로 숨도 못 쉬고 사는 딸을 위해 무언가라도 해 보고 싶은 심정이었지만 차마 사위의 얼굴을 볼 면목이 없다는 이유로 보고 싶은 딸을 찾아가는 것도 쉽지 않았다.

아들이라도 하나 낳으면 그나마 면목이 설까 해 임신에 좋다는 갖가지 단방약을 준비하고서도 문 앞에서 전해주고는 발길을 돌려야 했다. 


할머니는 딸의 생리 주기에 맞춰 임신에 도움이 된다는 약초물을 아주 오랫 동안 준비를 했다. 선인장 꽃물, 흰 접시꽃 뿌리 달인 물, 익모초 등 할머니의 정성에도 엄마는 결국 나 하나로 마음을 접어야 했다. 

새로운 약초물을 엄마에게 먹일 때마다 할머니는 어린 나에게 똑같은 질문을 던지곤 했다. 그 질문을 하기 전에 할머니 손에는 늘 무지개무늬의 사탕이 손에 들려 있었다. 

' 원아 엄마 뱃속에서 나올 때 문 닫고 나왔니 열고 나왔니'

평소에 사나운 말소리도 조용하고 부드러워진다

' 꼭 닫고 나왔는데'

'왜?'

할머니의 외마디 소리가 갑자기 높아지지만 나는 여느 때처럼 답한다.

' 쥐가 좇아 올까 봐 무서워서'

'에구 저 망할 것 백번을 물어도 백번을 다 문을 닫고 나왔다고 하네 '

농담 같지만 어린아이의 한 마디에 할머니는 새로 달여온 약초의 효과를 점치며 기대를 하는 거였다. 나에게는 할머니의 부드러운 음성도 손에 쥔 무지개 사탕도 효력이 없었나 보다. 

나는 결코 기억할 수 없는 세 여자의 웃픈 에피소드가 결국 나를 외둥이로 자라게 했다. 엄마의 소중한 문을 닫고 나온 대가로 할머니도 엄마도 그리고 나도 외로웠고 아픔을 겪기도 했다. 그로 인한 고통은 세 여자 모두를 스스로 강해지게 했다. 


할머니가 돌아가시기 전 딸에게 와서 마지막 일주일을 함께 보냈다. 기력이 많이 떨어져 보이는 할머니는 당시 중학생이었던 나에게 힘없이 질문을 했다.

'원아 어째 매번 너는 엄마 문을 닫고 나왔다고 한겨..'

엄마가 곁에서 씁쓸한 미소를 지었다.

'엄니 아직도 그것이 그리 궁금해요.'

' 어떻게 잊어, 어쩜 어린것이 한 번도 말을 바꾸지 않는지.. 조화여..'

글쎄 나는 왜 그렇게 고집스럽게 애타는 할머니의 속내를 외면했을까. 내 운명이기에 그랬을까.


나는 아들 둘에 딸 하나를 낳았다. 첫아이는 아들이었다. 엄마는 산모인 딸은  아랑곳하지 않고 막 뱃속애서 나온 손자의 아랫도리를 먼저 살폈다. 아들이라며 좋아했다. 그리고 나에게 고맙다고 했다. 그때는 고맙다는 엄마의 뜬금없는 말을 이해하지 못했다. 그 말에는 엄마의 자식에 대한 염원과 아들에 대한 한이 담겨 있었다. 그때 엄마는 안도의 웃음을 짓고 있는 할머니의 모습을 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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