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17] 가사도우미 청년의 열심

여행을 가기 위해선 온 마을의 도움이 필요하다

by 므스므

[D-17] 가사 도우미 청년의 열심


떠날 날은 다가오고 임시 집사님의 점검차 방문도 있는데 오른팔은 림프부종으로 인해 거대 로봇 팔이 되어 있으니 별 수가 없다. 부엌 싱크대, 가스레인지와 후드의 찌든 때, 화장실의 막힌 세면대와 하수구, 냉장고에 눌어붙은 묵은 때까지 내가 손 하나 까딱 안 해도 집안이 빛날 걸 생각하니 그저 좋다.


이 모든 일을 4시간 안에 끝내겠다며 5년 경력의 25살 청년이 클리너로 온단다. 그래, 집 안이 깨끗해진다는데 외간 남자를 집으로 들이는 것쯤이야... 바라건대 그 좋은 힘으로 이 모든 일을 3시간쯤만에 끝내고 방청소&걸레질까지 해주면 더 바랄 게 없겠다 생각했다.


청년은 배낭 하나만 달랑 매고 버스를 타고 우리 집엘 왔다. 맨발로 씩씩하게 들어오더니 오늘의 청소 계획을 짧게 브리핑하고는 곧장 화장실로 들어가 문을 닫는다. 뚝딱뚝딱. 바리바리. 영차영차. 가스레인지 점화 불량이던 건전지도 갈아 끼워주고 후드 속 팬까지 닦으면 만원 추가지만 서비스해주겠다며 한순간도 쉬지 않고 일했다.


그 옆에서 난 한 손으로 냉장고 음식물들을 정리, 아니 거의 다 버렸다. 덕분에 청소가 빨리 끝나겠다며 더 원하는 곳이 있으면 얘기해 달랜다. 제 머리 속이요,라고 대답할 뻔했다.


왼쪽 귀 뒤에 한자로 사랑 '애'자를 문신으로 새긴 25세 가사도우미 청년은 4시간을 꽉 채워 열심히 일하고 돌아갔다. 가는 길에 비비빅을 손에 쥐어줬다. 좋아하며 가더라. 젊음은 '씩씩'인 건가...



[D-15] 임시 집사님에게 가이드북 전달


두 달을 꼬빡 붙잡고 있었던 <슬기로운 집사 생활 가이드북>(무려 22페이지)을 출발 2주 전인 오늘 마무리하고 임시 집사님인 그녀에게 전달했다. 나 별난 거 인정.


하지만 탈고(?) 순간의 희열이라니!


집사생활가이드.png 임시 집사님을 위해 작성해 본 <고양이와 우리 집 설명서>



[D-14] 우여곡절의 끝, 여행자 보험


본의 아닌 사건사고가 생길 가능성이 높은 장기 여행이 아닌가. 여행자 보험이라도 들어두어야겠다. 검색을 통해 S화재를 선택, 1차 시도했더니 총 65만 원이나 나왔다. 문제는 할인율 높은 보험은 보장 기간이 최대 90일인데 100일이 넘어가는 나의 경우는 유학생 보험으로 넘어가 이리 큰 금액이 나온 거다.


나 죽으면 사망보험금 수억을 받을 사람도 없는데 싶어서 보장 금액들을 몇 개 조정했더니 25만 원까지 떨어졌다. 다이렉트로 가입하면 또 할인해 준다 해서 다시 도전. 여기도 날짜가 걸리길래 여행 초반엔 좀 조심해서 다니겠지 싶어 개시 날짜를 뒤로 미뤄 90일에 맞췄더니 금액이 10만 원대까지 떨어졌다.


이 정도면 양호하다 싶어서 가입을 결정한 순간, 최근 5년 안에 수술&입원 이력과 10대 중증 질환을 앓은 사람은 상해와 질병 보장 가입 불가란다. 이런 뭣... 결국 상해와 질병 보장을 뺀 상태로 사망보험금 2억 원, 휴대폰 도난&파손 최대 50만 원, 항공기 지연&수하물 분실 최대 10만 원(이 돈을 주는 게 아니라 지연 시간에 먹은 밥값 영수증 첨부하면 그것만큼만 주는 거)이 내가 받는 주요 보장의 끝이다.


질환을 앓았던 적이 있는 사람에게 질병 보장이 안 되는 거까진 이해할 수 있다. 그런데 상해는 왜 안되는데?? 교통사고 나서 다치는 거랑 암이랑 무슨 상관인 건데? 엉? 엉?


그리하여 내가 낸 최종 금액은 58,000원.

돈 아꼈다고 기뻐할 일인가...



[D-13] 호스트들을 위한 기념 선물


여행 중 내가 도움을 받게 될 외국인들에게 줄 한국 기념품을 준비했던 건 90년대 초반에 떠났던 동남아 여행이 마지막이었다. 그 후론 대부분 호텔에 묵거나 업무 관련 출장이라 그닥 기념품의 필요를 모르고 살았었다. 그러다 이번엔 호스트와 매우 가깝게(거리상) 지낼 예정이니 뭐 하나쯤은 있으면 좋겠다 싶었다.


언젠가 제천영화제에서 열린 북 마켓에 전시 된 이 <조선에 놀러 간 고양이>를 보자마자, 집사였던 동행인에게 선물을 했었다. 이번에 출판 기획서 준비를 하며 유사 책들을 찾다 다시 한번 이 책이 눈에 띄었고, 호스트들에게 맘에 드는 그림을 한 장씩 고르라 한 뒤 찢어 주면 아주 좋은 선물이 될 것 같아 무릎을 쳤다. 한국 고유의 그림 기법에, 전통의상과 생활상, 그리고 무엇보다 주인공이 고양이들이라니.


시간이 광속으로 흐르고 있다.


조선고양이.JPG 기념품 대신 가져간 <조선에 놀러 간 고양이>. 저자인 아녕님과의 에피소드는 케이프타운 편에 나온다



[D-7] 짐 싸기 1차 도전 실패

짐 싸기 모의 훈련을 시도했으나 실패. 가져갈 짐들을 모조리 꺼내 방바닥에 널부러 놓고 보니 저것들을 전부 배낭 안에 쑤셔 넣을 생각에 지레 질려서 시작도 못하고 의욕상실....



[D-5] 임시 집사님 알현


임사 집사님이 답사차 집에 오셨다. 사회성이라곤 눈곱만큼도 없는 두 마리는, 진즉에 이불 속에 들어가 코빼기도 보여주지 않았다. 그렇게 숨어 있는 모습조차 너무 이쁘다고 어쩔 줄 몰라하는 임시 집사님을 보니 동물 좋아하는 사람치곤 나쁜 사람 없다는 말이 확 와닿으며 덩달아 기분이 좋아졌다.


아직 짐 싸기 전이라 집이 많이 어수선했지만 이대로도 괜찮다며 더 안 치우셔도 된다는 은혜로운 말까지... 경력자 집사를 채용(!) 한 것도 감지덕지인데 인성까지 은혜 로우니 난 복 받은 사람이다.


남은 며칠, 집사님 체취에 익숙해지게 하려고 옷가지를 들고 오라 부탁했더니 어젯밤 입은 옷이라며 또 성실히 들고 오셨다. 이 눔 시끼들, 떨떠름한 얼굴을 하고 해먹에 들어는 가고 싶은데 뭔가 낯선 물건이 있으니 서로 눈치 게임 중이다.


오늘부터 특훈이닷!!


1.png 임시 집사님의 체취에 익숙해지는 훈련 중



[D-3] 각종 관공서, 은행 업무 마무리


출발이 월요일 오전이다 보니 평일 영업만 하는 여러 기관들의 업무를 무조건 오늘 내로 마쳐야 했다.


- 신용&체크카드 핀넘버 등록 및 확인

- 원화 결제 차단 서비스 신청

- 건강보험 납입 일시 중지 신청

- 암센터 영문 진단서 발급

- 호르몬 약 180일 치 처방

- 테니스 엘보 집중 치료(진통소염제를 정맥 주사로 맞기)

- 실비 보험료 청구


이 외에도 임시 집사님의 차량 주차를 위한 방문증 받기, 세관 제출용 푸드 리스트 출력하기, 여분의 안경을 위한 안경점 가기, 연례행사인 목욕탕 가기, 이불 빨래하기, 도서관 책 반납하기 등 어째 자잘한 일들이 끝이 없다!



[D-1] 짐 싸기 2차 도전 실패


기적은 일어나지 않았다.


배낭 안으로 짐을 욱여넣는 거 하나는 자신 있었기에 테트리스 하듯 차곡차곡 넣은 것까진 좋았으나...

배낭을 아예 들 수가 없다.


노트북과 각종 전자기기가 들어간 보조가방의 무게도 만만치가 않다. 어찌하나. 그리하여 이 밤, 난 모든 짐을 꺼내 놓고 초심자 마인드로 나와의 싸움을 다시 시작하고 있다.


100일 치 약의 무게가 이렇게나 클 줄 몰랐고 몇 가지 안 된다고 생각한 비상식량의 무게가 이럴 줄 몰랐고 노트북과 하드커버 저널 북의 무게가 이럴 줄 몰랐다. 모든 게 배신이다. 부피보다는 무게가 문제다 보니 양말 한 켤레 빼는 걸로는 간의 기별도 안 갈 판이다.


무얼 어찌해야 할까. 머릿속으로 100일의 시간을 그려보며 하나하나 챙긴 짐인데 이 그림을 다시 그려야 하다니.


약과 여권만 챙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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