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다
출발이다.
시간이 언제 이렇게 흘렀냐, 따위의 말은 식상하다. 그저 지긋지긋하고 스트레스 만땅이던 준비 과정을 끝냈다는 것만으로도 홀가분하다. 옷도 음식도 헤어제품도 세제도 덜어냈음에도 여전히 배낭은 무겁고, 이 무게가 내 족쇄가 될 걸 알면서도 일단은 밀어붙인다. 여행을 하며 인생을 돌아본다는 것을, 짐 싸는 순간부터 깨닫는다.
앞으로 100일 동안 이 짐들만이 나에게 유일하게 낯설지 않을 것들이어서 일까. 물건 하나하나에 감정이입이 되더니 급기야 돌아앉은 깜장이 뒤통수만 쳐다봐도 울컥거린다. 나 잘할 수 있을까. 씩씩하게 지낼 수 있을까.
이런 여행 두 번 다시 못 할 경험이므로 잘해보자, 잘 다녀오자, 정말 글자 그대로 두 주먹을 불끈 쥐어보았다.
여기까지 새벽 감성에 충만하여 글을 적었으나...
집 출발 직전까지 짐과 씨름하다 비즈니스 라운지는 개뿔, 10분 후 탑승이라 게이트까지 겨우 시간 맞춰 도착했다.
정말 가나보다.
살아서, 돌아올게요!!
ps. 울지들 마시게나, 로 시작하는 내 유서는 책장 추리소설 코너 <그리스 관의 비밀> 옆에 꽂혀 있으니 참고들 하시게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