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스트리아, 비엔나
말로만 듣던 가사도우미 마리아 님이 오셨다.
자그마한 체구의 그녀는 청소를 하는지도 모를 만큼 조용히 움직였다. 영어가 서툰 마리아에게, 고양이 집사들의 필수템이라 할 수 있는 돌돌이 종이가 다 떨어졌길래 손짓 발짓해가며 설명을 했으나 소통 불가. 혹시 혼자 숨겨놓고 쓰거나 하는 건 아니겠지?
마리아가 청소를 하는 동안 테라스에서 모시모시가 노는, 혹은 쉬는 모습을 눈으로 쫓았다. 올해로 18살이라는 모시모시는 질리언이 뉴욕에 살 당시, 아이들이 하도 고양이 노래를 불러서 보호소를 통해 입양했다고 했다. 일본 문화에 심취해 있던 아이들이 즉석에서 지어준 이름이 바로 모시모시. 뜻은 알고 지었겠지.
당시에 벌써 8살이던 모시모시는 동상으로 인해 귀 끝을 잘라야 했단다. 처음 봤을 때 스코티쉬 종류인가, 했으나 그런 사연이 있었다. 고관절이 좀 안 좋은 거 빼고는 건강에 큰 문제도 없어, 바람에 살랑거리는 화분의 꽃들에도 냥펀치를 날리고 그 꽃들에게 찾아온 벌에게도 겁도 없이 덤벼댔다.
모시모시에게는 악취미가 하나 있었으니. 빗물로 인해 테라스 바닥에 고인 물을 마셔댔다. 질리언의 말로는 아무리 깨끗한 물그릇을 둬도 쳐다도 보지 않는다고. 모시모시 너하고 싶은 거 다해, 마인드로 어깨 한번 으쓱하고 마는 질리언.
오늘도 질리언은 점심을 먹기 위해 집에 들렀다. UN 구내식당의 밥이 그렇게 맛이 없다네. 오늘은 오후 일정이 크게 바쁘지 않다고 해 함께 점심을 먹으며 이런저런 얘기를 했다.
이미 장성한 딸과 아들 하나는 영국에, 다른 딸 하나는 미국에 살고 있다고 했다. 이 글로벌한 가족들이 1년에 꼭 한번 크리스마스에는 다 같이 모이는데 올해는 집이 아닌, 뉴욕이 될 거란다. 친구 중 하나가 고향으로 돌아가며 자기 집이 빌 테니 쓰고 싶으면 쓰라고 했다고.
다음 달 페루에서 국제회의가 하나 있는데 일주일 휴가를 붙여서 아들과 함께 갈 예정이라고 했다. 아들이 남미 음식에 관심이 많은 요리사란다. 그렇게 출장이나 휴가가 잦으면 모시모시는 어떡하냐고 물었다.
"보통은 게스트들에게 부탁을 하기도 하고 게스트가 없으면 마리아의 아들이 와서 밥과 물을 챙기기도 해. 매년 1월경에 긴 휴가를 가는데 그땐 관광 비수기라 게스트가 없기도 해서 난감할 때가 있거든. 올해의 경우는 운 좋게도 한 달을 묵겠다는 게스트가 있어서 숙박비를 조금 깎아주면서 부탁을 했지. 다들 모시모시를 예뻐해 줘서 문제가 된 적은 한 번도 없었어. 이번 금요일에 의학 관련 회의가 있어서 말레이시아에 가거든. 다음 주 일요일에 오는데 게스트 하나가 금요일에 오고 일요일에 한 명 더 올 예정이야. (열쇠는?) 마리아가 매번 도와줘"
올해로 에어비앤비를 한 지는 5년 정도 되었지만 정말 답 없는 게스트들을 만나면 진이 다 빠져서 내가 이 짓을 왜 하나 싶기도 한다고 했다. 질리언이 경험한 최악의 게스트는 인도인들이라는데, 주로 부잣집 애들이 여행을 오며 자기를 하인 부리듯 하고 욕실 작다고 투덜거리고 낮에 나가면서 온 집안 불 다 켜놓고 나가고 어쩔 땐 수돗물도 틀어져 있었다고 한다.
또 한 번은 오스트리아 시민권자라는 어떤 남자 게스트가 러시아인 여자 친구랑 묵은 적이 있었는데 여자가 이미 결혼한 유부녀란 걸 자신의 집에 와서야 알게 됐다고. 둘이 대판 싸우면서 이웃집 신고로 경찰이 출동하고 난리도 아니었던 적도 있다 했다.
"난 상식적인 사람인데 그렇지 못한 사람들을 만나면 정말 피곤해. 요즘은 숙박 승인을 하기 전에 게스트들의 프로필을 유심히 봐. 그러면 대충 감이 오거든. 너도 아주 좋은 느낌을 받았어"
고양이들을 만나고 싶어서 여행을 한다, 적어놓은 내 프로필이 한몫을 했을까.
무제한 티켓이 만료되기도 했고 질리언이 추천해 준 'Museum of Applied Art, aka MAK(한국말로는 응용미술박물관 쯤 되는 곳)'가 집에서 멀지 않아 또 어슬렁 집을 나섰다. 매주 화요일 저녁엔 입장료가 반값도 안 한다길래 딱이다 싶었다.
연간 기획 전시인지는 모르겠지만 'AI'에 대한 여러 정보를, 단순 구경 차원이 아니라 직접 체험해 보고 고민도 해보라고 마련된 여러 가지 '놀거리'들과 너무 놀았다. 밖으로 나오니 그제야 내가 또 시간 개념 상실하고 놀았다는 걸 깨달았다. 너무 허기가 져 마침 눈앞에 나타난 한국 식당으로 돌진, 비빔밥을 시켰다. 아직까지 딱히 한국 음식이 그리운 건 아니지만 그래도 역시 쌀밥이 최고긴 하다.
내일이면 이제 비엔나도 마지막 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