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르투갈, 포르투
도우루 강가엔 내 눈에만 보이는 결계가 있다. 까마득한 내리막길은 보기만 해도 엄두가 나지 않으니 윗동네만 빙글빙글 도는데 사실 어느 곳에서도 강이 잘 보여서 딱히 가야겠다, 생각이 들지 않았다.
샐러드로 이른 점심을 먹고 나니 하늘에 먹구름이 좀 보인다. 뙤약볕은 없을 것 같아 도전을 외친 거 까진 좋았는데. 강까지는 일단 내리막길이니 어쨌든 수월한 걷기. 드디어 눈앞에 물이, 강이 보인다.
하지만 몇 걸음 걷지 않아 다시 해가 쨍쨍쨍 거리기 시작했고, 뒷골목 어느 카페에 앉아 레모레이드로 땀을 식히는데... 바로 앞 도로에 뭔가 간지 나는 트램이 지나간다! 읽은 적이 있다. 도우루 강변을 따라 포르투 서쪽 어촌 마을까지 간다는 1번 트램.
줄은 길었지만 금방 탈 수 있었다. 운전기사에게 왕복 티켓을 사겠다 하니, 오늘 파업이 있을 거라 돌아오는 트램은 없을 수도 있단다. 그래서 편도 티켓만 판다고, 사겠느냐고. 몰라. 거기도 사람 사는 동네일 텐데 버스 정류장쯤은 있겠지.
종점에 내리니 포르투 시내와 딴판의 계절이다. 바닷바람이 냉장고 문을 열었을 때 마냥 시원하고 낚시며 수영을 하는 동네 주민들을 보고 있자니 내 선택에 박수를 쳐주고 싶었다.
노을 구경에 명당인 장소였으나 난 집으로 가는 방법을 모른다. 이제 서둘러야 했다.
다행히 바닷가 산책로 옆에 버스 정류장이 있었다. 동네 주민 아무나 붙잡고 불쌍한 관광객 좀 시내로 보내주면 안 되겠니, 해야 할 판이었는데 정류장 버스 노선 안내판에 떡하니 보이는 상 벤투 역. 만세! 심지어 트램보다 버스비가 더 싸고, 돌아올 때 죽겠구나 하던 오르막길 끝에 내려야 할 정류장이 있다. 만만세!
집으로 가는 길에 미술 용품점이 눈에 들어왔다. 가져온 라인 마커의 잉크가 다 되어 가던 중이라, 이걸 어째? 하던 참이라 잘 됐다 싶었다. 너무나 다양한 펜 굵기에 결정을 못하고 일단 0.3 굵기 펜 좀 보여주면 안 될까, 했더니 친절한 점원 왈, 여기부터 여기까지 다 꺼내 줄 테니 함 써 볼 테야? 한다. 포르투 정말 사랑한다.
게스트 중에 독일에서 온 커플이 있다. 어젯밤 12시 넘어까지 쏘냐와 우쿨렐레로 열창을 해대더니 오늘 아침은 댓바람부터 대판 싸움을... 오래전 시드니의 어느 게스트하우스 복도에서 새벽까지 힙합을 부르던 애들 이후로 다신 안 겪을 일인 줄 알았는데. 에어비앤비 탓이 아니니 어디 하소연할 데도 없고. 오늘 밤도 그러면, 너네 죽고 나 죽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