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12] 인생사 새옹지마

포르투갈, 포르투

by 므스므

도우루 강가엔 내 눈에만 보이는 결계가 있다. 까마득한 내리막길은 보기만 해도 엄두가 나지 않으니 윗동네만 빙글빙글 도는데 사실 어느 곳에서도 강이 잘 보여서 딱히 가야겠다, 생각이 들지 않았다.


샐러드로 이른 점심을 먹고 나니 하늘에 먹구름이 좀 보인다. 뙤약볕은 없을 것 같아 도전을 외친 거 까진 좋았는데. 강까지는 일단 내리막길이니 어쨌든 수월한 걷기. 드디어 눈앞에 물이, 강이 보인다.


IMG_9367.jpg 건물 사이사이 어느 곳에서나 도우루 강은 존재했다


IMG_9372.HEIC 물은 물이요, 강은 강이로다 @도우루 강가


하지만 몇 걸음 걷지 않아 다시 해가 쨍쨍쨍 거리기 시작했고, 뒷골목 어느 카페에 앉아 레모레이드로 땀을 식히는데... 바로 앞 도로에 뭔가 간지 나는 트램이 지나간다! 읽은 적이 있다. 도우루 강변을 따라 포르투 서쪽 어촌 마을까지 간다는 1번 트램.


줄은 길었지만 금방 탈 수 있었다. 운전기사에게 왕복 티켓을 사겠다 하니, 오늘 파업이 있을 거라 돌아오는 트램은 없을 수도 있단다. 그래서 편도 티켓만 판다고, 사겠느냐고. 몰라. 거기도 사람 사는 동네일 텐데 버스 정류장쯤은 있겠지.


IMG_9404.HEIC 파업의 이유가 궁금했다


종점에 내리니 포르투 시내와 딴판의 계절이다. 바닷바람이 냉장고 문을 열었을 때 마냥 시원하고 낚시며 수영을 하는 동네 주민들을 보고 있자니 내 선택에 박수를 쳐주고 싶었다.


노을 구경에 명당인 장소였으나 난 집으로 가는 방법을 모른다. 이제 서둘러야 했다.


IMG_9405.HEIC 동네 이름도 몰라요. 다시 가라면 못 가요


다행히 바닷가 산책로 옆에 버스 정류장이 있었다. 동네 주민 아무나 붙잡고 불쌍한 관광객 좀 시내로 보내주면 안 되겠니, 해야 할 판이었는데 정류장 버스 노선 안내판에 떡하니 보이는 상 벤투 역. 만세! 심지어 트램보다 버스비가 더 싸고, 돌아올 때 죽겠구나 하던 오르막길 끝에 내려야 할 정류장이 있다. 만만세!


집으로 가는 길에 미술 용품점이 눈에 들어왔다. 가져온 라인 마커의 잉크가 다 되어 가던 중이라, 이걸 어째? 하던 참이라 잘 됐다 싶었다. 너무나 다양한 펜 굵기에 결정을 못하고 일단 0.3 굵기 펜 좀 보여주면 안 될까, 했더니 친절한 점원 왈, 여기부터 여기까지 다 꺼내 줄 테니 함 써 볼 테야? 한다. 포르투 정말 사랑한다.


게스트 중에 독일에서 온 커플이 있다. 어젯밤 12시 넘어까지 쏘냐와 우쿨렐레로 열창을 해대더니 오늘 아침은 댓바람부터 대판 싸움을... 오래전 시드니의 어느 게스트하우스 복도에서 새벽까지 힙합을 부르던 애들 이후로 다신 안 겪을 일인 줄 알았는데. 에어비앤비 탓이 아니니 어디 하소연할 데도 없고. 오늘 밤도 그러면, 너네 죽고 나 죽고다.


IMG_9437.HEIC 플라우시나의 말에 따르면 루아가 게스트와 함께 침대에 있는 걸 처음 본다나. 아잉~ 지지배


IMG_9454.HEIC 내 소중한 분신냥이들조차 가차 없다.


IMG_9449.HEIC 자유로운 영혼, 플라우시나의 집 마당


KakaoTalk_20221025_165832827_02.jpg 그림일기 #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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