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13] 장기 투숙자란 오해

포르투갈, 포르투

by 므스므

오늘은 그냥 집 근처조차 나가지 않기로 했다.

뭐 원래도 뭔가를 죽도록 하고 싶었나만은.


침대에서 뒹굴거리며 노트북에 사진 저장시키고 '고양이는 정말 귀여워'(온라인 게임) 마을에 사는 고양이들에게 밥 좀 배달하고 내 방에 놀러 온 루아랑 놀다 보니 오전 시간이 후딱 사라져 버렸다.


좀 이른 점심으로 냄비밥(나에게 이런 재능이 있다니)과 반찬으로는 오이무침을 해 먹고 다시 뒹굴거리고 있자니 마침 플라우시나가 점심 준비를 하러 부엌엘 들어왔다.


IMG_9451.HEIC 나에게 이런 재능이 있다니


플라우시나의 집은 게스트 하우스에 가까운 숙소다. 자신은 마당과 연결된 1층에 살고 있지만 부엌이 있는 2층 전체와 1층 구석방을 게스트들에게 빌려주고 있었다. 장기 투숙자인 '젠'을 비롯해 미국에서 온 '쏘냐'와 독일 커플, 그리고 나까지 총 다섯 명이 머물고 있었다. 이렇게 많은 손님을 관리하는 게 힘들지 않냐고 물었다.


"몸이 아파서 하던 일을 접고 쉬고 있었는데, 집도 있고 방도 있겠다 에어비앤비나 하자 싶어서 시작했지. 처음엔 집 안 구석구석 먼지 하나 없어야 한다고 생각해서 스스로도 엄청 스트레스를 받으며 운영했거든. 근데 이젠 안 그래. 원래 정리하는 건 좋아하니깐, 그냥 그 정도 기준에만 맞추기로 한 거지. 그리고 게스트들의 후기도 잘 읽지 않아. 우리 집이 좋으면 좋은 대로, 싫으면 싫은 대로 어쩔 수 없는 거 아냐? 난 최선을 다했으니깐. 어후! 옛날의 나였다면 상상도 못 하지. 나는 사람들이 우리 집에 와서 서로들 좋은 관계를 맺고 가는 게 훨씬 더 중요하다고 생각해. 스트레스 안 받고 사는 게 제일 중요한 거 같아. 아프고 나서 인생이 변했어"


저 말이 무엇을 말하는지 뼛속까지 와닿기에 크게 고개를 끄덕였다. 사람과의 관계든, 회사의 일이든, 내가 과연 어디에 방점을 찍고 그것들을 대할 것인가를 정해 놓으면 사실, 스트레스란 건 있을 수가 없다. 경험자의 말이니 믿어도 좋아요.


"여긴 11월부터 4월까지가 관광 비수기라 손님이 거의 없거든. 그래서 여름에 진짜 많은 사람을 받아. 여름 동안 벌어서 겨울을 난다고나 할까. 비수기철엔 나도 여행을 자주 다녀. (그럼 루아랑 미아는?) 주변에 사는 친구들에게 부탁하기도 하고 루아 같은 경우는 여행에 데리고 다니기도 해. 한 번은 캠핑엘 데려갔는데 풀 냄새 맡고 나무 냄새 맡고 밤에는 내 배 위에서 꾹꾹이 하고 무튼 너무 좋아하더라. 루아는 지금도 밖엘 나가곤 하는데 호기심 대장이야"


(한국에선 그랬다간 큰일 나거든)


"문화 차이 아닐까 싶은데. 미아는 거리에서 너무 고생을 했는지 아예 밖으로 나갈 생각을 안 하는데 루아는 천방지축이야. 고양이가 집 안에만 있는 건 불행한 거야. 우리 엄마만 해도 집안에서만 고양이 키우는 거 완전 이해 못 해. 모래가 더러우면 그냥 화단에 나가서 싸고 가고 싶은 곳이 있으면 어디든 가고. 동물의 본능이니 존중해 줘야 하지 않을까?"


서양인들의 동물 존중 사상(우리나라는 동물을 존중하지 않는다가 아니라 그 인식의 기준이 서로 다르다)을 어느 정도 예상 못한 바는 아니나 이렇게 직접 듣고 보니 생각이 많아진다.


그렇게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수다를 떨다 보니 새로운 게스트가 도착해 있다. 자연스럽게 먼저 인사를 건냈더니 나더러, 너 여기 장기 투숙자야? 한다. 음. 내가 봐도 그래. 이 날 좋은 주말 오후에 아무 데도 안 나가고 호스트와 몇 시간씩 수다나 떨고 앉았으니, 그리 보일 법도. 정작 진짜 장기 투숙자 젠은 남친 만난다고 이틀째 집에 안 들어오고 있는데.

KakaoTalk_20221025_165832827_01.jpg 그림일기 #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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