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르투갈, 포르투
어젯밤 페북에 글을 올리고 도통 잠이 오지 않아 마당엘 나갔더니 마침 플라우시나도 나와있었다.
오늘 하루 어땠니,라고 그녀가 물었다. 한참을 고민하다 불쑥, 난 지금 여기서 뭘 하고 있는 거 같니?라는 번지수가 한참이나 어긋난 질문을 혼잣말하듯 그녀에게 던졌다.
기세 좋게 세계여행을 하겠다고 떠나서 숙소 밖으론 잘 나가지도 않고 어쩌다 나가더라도 사진이나 몇 장 찍고 돌아오는 이 무슨, 정신 나간 사람의 여행이냔 말이다. 어디서부터 잘못된 걸까.
친구의 소식이야 떠나기 전에 이미 들은 거고 내추럴 본 청개구리인 탓에 유명 관광지들 비껴 다니는 건 애당초 그리 생겨 먹어서 이고 고양이들에 집중하는 것도 좋아서 하는 것이었는데. 대체 어느 지점에서 어긋나 이 상태가 된 것이냐 말이다.
이제 이틀 뒤면 여길 떠나는데 난 포르투에서 대체 뭘 한 걸까? 아픈 친구도 나 몰라라 하며 인스타용 사진을 찍기 위해 내 돈 주고 여길 온 미친년 같았다. 그랬다. 그게 시작이었는지 모른다.
"뭘 그렇게 고민해? 지금 여기가 바로 네가 있어야 할 곳이잖아. 무엇을 하든, 하지 않든 이 순간 네가 이곳에 있다는 사실이 중요한 거야"
그저께 부엌에서 함께 나눈 서로의 이야기 덕에 내가 이 여행을 왜 시작하게 되었는지 아는 플라우시나였다. 엄마와 동생의 이야기를 하며 당시에 난 선택지가 없었다고 하자,
"아냐, 넌 선택지가 있었어. 모든 걸 포기할 수도 있었잖아. 넌 포기를 선택하지 않았고, 그래서 이곳에 있을 수 있는 거야"
우리가 나눈 모든 이야기를 기억하고 그것을 글로 남길 수 있었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내 질문에 정답은 아니라 할지라도 그저 함께 이야기를 나눈 그 시간들에서 난 위로를 받았다.
헤어지기 직전 플라우시나는 '레이키'라는 일종의 명상법 얘기를 했고, 내일 이 레이키 마스터라는 절친이 놀러 오기로 했다며 한번 받아볼 것을 권했다. 인생 뭐 별건가, 나는 그녀의 제안을 수락했다.
[레이키, Reiki]
레이키는 우주의 생명 에너지를 말하며 그 자체로 지혜로운 에너지이기 때문에 그 상황에 필요한 것을 이해하고 그것을 해결할 힘을 지니고 있다. 레이키 에너지는 우주의 긍정적인 균형을 유지시키는 방향으로 작동한다. 레이키 에너지는 신의 의지와 함께한다. 레이키는 개인적인 운명을 따를 수 있게 도와줌으로써 그 사람이 최적으로 진화할 수 있게 해 준다.
무튼 검색을 하니 저런 뜻이란다. '포르투로 여행 온 한국인 여성 므씨가 사이비 종교의식에 빠져 의식불명' 같은 기사 제목이 순간 머리를 스쳤으나, 어디 가서 이런 경험을 해 보겠나.
레이키 마스터 '줄리아'는 엄마는 일본인, 아빠는 중국인, 태어나긴 브라질, 남편은 포르투갈인, 그래서 이곳 포르투에 산다고 했다. 그녀가 준비해 온 도구란 것은 하얗게 말린 정체 모를 허브잎 하나. 방안에 허브잎 태운 향과 뉴 에이지스러운 요상한 음악이 가득 차고 침대에 누운 내 머리맡에서 그녀의 경건한(?) 기도로 레이키가 시작되었다.
글자 그대로 머리끝에서 발끝까지 내 몸에 두 손을 정성스럽게 올려놓는 게 전부. 그렇게 흘러 간 1시간 동안 몸의 긴장이 서서히 풀리면서 꿈도 꾸지 않고 잠이 든 것 같다.
우리가 끝나길 기다리던 플라우시나는 점심을 만들었고 마침 한국인 게스트가 남기고 갔다는 부침가루로 만든 김치 부침개와 함께 우리는 10년을 만난 사람들처럼 웃고 떠들었다. 내가 찍은 사진 속 루아(의 사고 치는 순간)와 친구(플라우시나의 또 다른 반려동물인 강아지인데 정말 이름이 '친구')를 보며 까르르 대고 집사, 캣초딩, 조공 같은 한국식 고양이 언어에도 배꼽을 잡았다. 줄리아도 '포뇨'라는 치즈 태비를 키우는 집사였다.
너무 좋은 사람들과 이렇게 신나게 먹고 웃고 떠들고 났더니 갑자기 세상이 핑크빛이다. 지금 내가 이곳에서 이 사람들과 웃고 떠드는 이 사실이 너무 행복했다. 나란 인간, 역시 사람에게서 답을 찾았다. 관광지도 아니고 고양이도 아니다. 난 이 여행을, 사람을 만나려고 시작했던 거다. 그게 다였다.
그리고 좀 전에 친구 J에게서 온 카톡.
<너두 온 우주의 기운을 받아 명랑하게 지내. 이 얼마나 일생일대의 시간들이냐. 아무나 못하자나. 특별한 그 시간을 왜 그러고 보내. 열심히 놀고, 즐기고, 돌아와서 만나자 칭구>
그런 의미에서 이 밤, 도우루 강변이 아닌 동네 식당에서 늦은 저녁과 포트 와인 한 잔으로 포르투에서의 마지막 밤을 기념했다. 청개구리면 어때. 이게 난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