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16] 리스본 입성

포르투갈, 리스본

by 므스므

왜 나를 다음 목적지까지 데려다주는 교통편의 운전기사들은 달리시는가.


2시 50분경 포르투를 출발한 기차는 무려 30분이나 일찍 리스본에 도착했다. 종점에서 내릴 예정이라 아무 생각 없이 앉아 있다가 모든 사람들이 빠져나간 뒤에야 뭔가 이상한 낌새를 차렸다. 3분도 아니고 기차가 이래도 되나.


오늘 처음으로 the 배낭과 함께 숙소까지 온전히 대중교통과 도보로만 이동해 봤다. 상당히 위치가 좋은 숙소를 구한 덕에 지하철역에서 크게 걷진 않았으나 와... 문제는 건물에 엘리베이터가 없다는 거. 무려 4층인데! 각오는 했지만 계단을 올라가던 도중 뒤로 한번 나자빠졌다. 넘어진 김에 쉬어간다는 말을 실제로 해보다니. 내가 몸개그에 소질이 있는 줄 몰라서 혼자 낄낄댔다.


이번 숙소의 주인은 화가인 크리스티나와 작가이자 번역가로 일한다는 이자벨, 두 사람이었다. 건물과 집 자체는 상당히 낡았지만 집안 곳곳의 소품들 배치가 예사롭지 않다. 나와 메시지를 주고받은 건 크리스티나였지만 전시회를 앞두고 내일까지 제출해야 될 그림에 몰두하느라 나를 응대한 건 이자벨이었다.


아주 키가 크고 말소리조차 조용했던 이자벨은 한때 드라마와 단편 시나리오를 쓰는 작가로 활동했으나 지금은 영어, 스페인어, 불어로 된 책을 포르투갈어로 번역하는 일을 한다고 했다. 알고 보니 크리스티나의 딸 하나는 영화감독이라고. 흠. 그렇다 이거지.


두 사람을 가만 지켜보자니 바쁜 크리스티나를 대신해 이자벨이 저녁을 만들고 그녀의 방까지 배달해주는 걸로 보아 상당히 친한 사이로 보이는데 아직은 곳곳에 의문 투성이. 덕분에 이자벨과 두런두런 얘기하며 같이 저녁을 먹었다. 계단을 내려가기 싫다는 단순한 이유로, 냄비밥 지어 라면 스프 넣고 끓인 죽도 밥도 아닌 이상한 메뉴로 리스본의 첫 끼를 그냥 해결해 버렸다. 여행 오면 정말이지 음식에 욕심이 안 생긴다.

후기엔 두 마리의 고양이가 있다고 쓰여있었는데 '안토니오'라는 17살 된 치즈태비 한 마리만 있다. 안토니오는 이자벨의 고양이고 '우마'라는 크리스티나의 고양이는 작년에 갑작스레 무지개다리를 건넜다고 했다. 노랭이와 성격이나 외향이 쏙 빼닮은 안토니오를 보자마자 위로가 되는 기분이라니.


왠지 리스본에서의 결계는 쉽게 뚫을 것 같은 기분이다.


KakaoTalk_20221030_112250140.png 플라우시나의 집 현관문. 좌회전이든 직진이든, 어느 방향으로 가든 다 괜찮다고 말해 준 숙소


KakaoTalk_20221030_112250140_01.jpg 배낭의 무게가 아직은 버겁다


KakaoTalk_20221030_112250140_03.jpg 힘들게 올라왔지만 내 방 창 밖으로 보이는 경치가 모든 걸 용서했다


KakaoTalk_20221030_112250140_02.jpg 분홍 코의 점까지도 노랭이를 닮은 사랑스러운 안토니오


그림16.jpg 그림일기 #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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