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르투갈, 신트라
오늘 종일 비가 온다는 소식에, 그럼 '신트라'나? 했다. (도대체 어떤 의식의 흐름인지는 나 자신도 모르겠다)
배낭에 꾸역꾸역 챙겨 들고 온 우산을 1층까지 내려와서야 떠올렸다. 원래도 잘 안 들고 다니는 우산, 왜 들고 온 건지 나도 모르겠지만 4층까지 다시 올라가느니 비 좀 맞겠다 하고 그냥 출발해 버렸다.
리스본에서 그리 멀지 않은 도시 신트라를 선택한 이유는, 유네스코에 등재됐다는 어느 부자 아저씨의 별장을 보고 싶었기 때문이다. EBS 여행 프로그램에서 보고 한눈에 반해버린 것이다.
온통 나무와 풀냄새로 가득 찬 공간 속에, 당췌 어디로 연결되어 있는지 모르겠는 미로 같은 계단들. 영화 <판의 미로> 세트장에 들어선 느낌이랄까. 비가 온다는 소식에 관광객도 많지 않아, 오늘을 택하길 정말 잘했다 생각했다.
유럽의 서쪽 끝이라는 '호카곶'을 가기 위해 다시 신트라 역으로 돌아오다 폭우를 만났다. 그냥 맞고 갈 수준이 아닌, 거의 태풍급 호우였다. 아니 포르투갈의 집들은 왜 처마도 없는 것인가! 있으나 마나 한 나무 가지들 아래에서 비를 피해 봤으나 글자 그대로 물에 빠진 생쥐꼴이 됐다.
선택의 여지가 없어 눈앞에 보이는 피자 가게로 뛰어 들어갔다. 하지만 이미 운동화 안에서는 발이 첨벙거릴 지경이었고 이러다 감기 들면 큰일이란 판단에 '호카곶'에서 추우면 입으려던 바람막이를 꺼냈다. 이런. 이 옷, 방수가 된다. 방. 수. 가! 이미 홀딱 젖은 경량 패딩 위로 그래도 꾸역꾸역 입었다.
포르투갈의 시골길을 둘러둘러 가는 버스를 타고 달려가 만난 유럽의 서쪽 끝 호카곶에선, 비도 맞으면 아프다는 사실을 처음 알았다.
리스본으로 돌아오는 길은, 청개구리답게 신트라가 아닌 카스카이스에서 출발하는 기차를 선택했다. 해안가를 따라 달려보고자 한 것이었으나 바다는 개뿔. 비가 너무 심하게 내려 창 밖은 거의 보이지 않았다.
리스본의 기차역에서 집까지 걸어오는 동안은 쏟아지는 비를 그대로 맞으며 이제는 무념무상...
[오늘의 교훈]
비가 오는 날, 관광지가 한산한 건 다 이유가 있는 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