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르투갈, 리스본
불운 1
어제 샀던 24시간 교통 패스의 마감 시간이 끝나기 전에 뽕을 뽑아야 한다. 걸어갈 수 없는 어딘가를 검색하다 힙하다고 소문난 'LX factory'를 찾았다.
불운의 시작은 눈앞에서 타야 할 버스가 떠난 것부터. 다른 노선버스들이 2대씩 왔다가도 내가 탈 버스만 감감무소식. 마음을 놓아버리기엔 몇 시간 남지 않은 패스의 유효 시간이 사람을 초조하게 만든다.
불운 2
코메르시우 광장 앞 강변에서 파도 소리를 듣고 앉아 있자니 또 우울해지는 것 같기도 하고 이제 정말 마지막으로 딱 한번 버스를 탈 수 있을 시간이라 서둘러 일어났다.
또 눈앞에서 떠나는 버스. 내 버스만 또 안 와. 한 정거장만 가면 되는 거리라 더 기다릴까, 걸을까 한참을 고민하는 새 유효 시간 땡.
불운 3
어차피 이렇게 된 거, 숙소까지의 길만 동서남북으로 파악해 두고 여기저기 해매 다니기 시작했다. 익숙한 동네 거리가 나타났길래 바로 눈에 띈 카페에서 좀 쉬었다 가자 싶었다. 알쓰인 주제에 우아 좀 떨어보겠다고 시킨 리스본산 화이트 와인을 테이블 위에 그대로 쏟. 았. 다. 딱 두 모금 생존.
불운 4
저녁으로 토마토 스파게티를 해 먹고자 면부터 삶고 양파도 다지고 온갖 준비를 다 했는데. 소스병이 열리지 않는다.
뜨거운 물에 담가도 보고 나무주걱으로 통통 두드려도 보고 고무장갑을 끼고 돌려도 봤으나 꿈쩍을 안 한다. 두통이 밀려오기 시작했고 어느새 면은 다 익었고. 1분간 고민하다 이자벨에게 간장을 빌리고 라면 스프를 넣어 함께 볶아 버렸다. 오늘 하루 모든 불운에 대한 보상을 하고도 충분할 만큼 맛있었다.
크리스티나의, 영화감독이라는 딸이 주말에 온단다. 자, 페친님들! 우리 다 현역 또는 왕년에 영화인들이었잖아요? 나 떠나기 전에 필요한 거 있음 다 얘기하랬으니 지금 그 찬스 쓸랍니다.
'Salome Lamas'라는 포르투갈 출신 감독의 정보란 정보는 다 긁어 저에게 주세요. 영어권 감독이 아니라서인지 검색도 수월치 않아요. 이미 IMDB는 뒤졌으니 딴 거. 카톡 환영.
특히 J 모 기자님? 2017년 베를린 가셨죠? 뭐 기억나는 거 없어요? 좀 더듬어 봐요.
아놔. 오늘 하루 너무 웃겨.
ps. 이 글을 정리하고 있던 오늘 오전에 크리스티나에게서 DM을 받았다. 검은 하트 하나를 보냈길래 순간, 안토니오가 무지개다리를 건넜나 싶어 심장이 쿵쾅거렸다. 잠깐, 그러면 하트 일리가 없는데.
그렇다. 이태원에서의 끔찍한 소식을 뉴스로 접하고 나에게 조의를 표한 것. 고마워, 크리스티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