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34] 테이블 마운틴 영접

남아프리카 공화국, 케이프타운

by 므스므

민박집을 오늘 떠났다.


여행 한달째, 딱 한식이 생각나고 한국말이 그리워질 즈음 이곳에 왔다는 게 행운 같다. 아주머니는 태생이 그러신 거 같긴 한데 떠나는 나를 붙잡고 뭘 더 퍼주지 못해 몹시도 아쉬워하셨다. 과일에 김치까지도 싸주시려던 판이라 라면 3개에서 겨우 합의를 봤다.


밖에서 혹시 우버 못 잡으면 내가 불러 줄 테니 연락해라,

떠나기 전에 한식 먹고 싶으면 언제든 찾아와라,

뭐가 됐든 도움이 필요하면 꼭 카톡 해라,


그러시곤 마지막으로 나를 꼭 안아주셨다.


이곳이 일본 정도만 되어도 정말 1년에 한번은 찾아뵙고 싶은 그런 분. 다시 보자, 는 말이 얼마나 공허한 말인지 우리 둘 다 알지만 그래도 말의 힘을 믿어보기로 했다. 정말 꼭 다시 뵙기를!




원래 이번 케이프타운의 에어비앤비는 커플이 사는 곳이라 또 어떤 느낌일까 싶어 왔더니 남친이 자기 버리고 그리스로 놀러 갔다는 농담을 하며 윙크를 하는 호스트 야니. 야니는 키가 190은 족히 넘어 보이는 아줌마로 원래 전공은 기계공학이라 엔지니어 생활을 꽤 했지만 지금은 남친인 패디와 함께 집 몇 채를 소유(인지 렌트인지는 모르고)하고 본격 에어비앤비를 한단다.


여러 개의 집을 관리하는 게 힘들어서 적어도 본인의 집만큼은 이제 더는 게스트를 들이지 않기로 했다나. 호스트와 함께 머물고 싶었던 나는 야니 커플이 살고 있는 집에 방 하나를 얻은 터였다. 그리하여 스톡홀름에 이어 이번에도 마지막 게스트가 된 나.


우야둥둥 그녀는 꽤나 유쾌하면서도 때 묻지 않은 순박함이 느껴져 일주일 남은 이곳 생활이 무척 즐거울 것 같은 기분이다. 고양이들의 이름을 듣는 순간, 우린 찰떡궁합이 될 운명임을 본능적으로 알았다.


애교만땅의 꼬마 아가씨 '걸캣'


너무 잘 생긴 '보이캣'


대충 짐 정리를 끝내고 차 한잔과 함께 테라스로 나가 앉았다. 어제 케이프타운 시내 어디에서도 보이던 테이블 마운틴이 정말 코 앞에 있다. 아무것도 하지 않고 2시간을 산만 쳐다봤다.


구름이 머물렀다, 해가 비췄다 하며 시시각각 변하는 산의 모습을 그냥 넋 놓고 쳐다보게 되는 희한한 경험을 했다. 야니의 애교쟁이 고양이 걸캣이 내내 친구가 되어주었다.


이곳에 머무는 내내 가장 많이 찍은 조합. 테이블 마운틴+걸캣+커피


갑자기 도전의식이 불타오른다. 그래, 남은 오후 시간을 조~~~오기 보이는 케이블카 타는 곳까지만 걸어 올라가 보자. 야니 말로 30분 정도면 간다기에, 기겁을 하는 언덕길이지만 해볼 만하다고 생각해 출발했다. 정확히 1시간이 걸렸다. 야니의 키가 190이 넘는다는 걸 간과한 결과다.


190인 야니는 30분, 160이 채 안 되는 나는 1시간이 걸린 테이블 마운틴 가는 길


억울해서 유턴은 못하겠고 씩씩대며 승강장 입구까지 겨우 도착하니, 노력이 가상해서 일까. 아침 내내 구름에 덮여있던 산이, 갑자기 해가 비취며 선명하게 보이기 시작했다. 민박집에서 만났던 부산 아가씨는, 이곳을 반드시 날씨 좋을 때 올라가야 한다며 어제 장장 3시간 줄을 서서 겨우 탔다는데. 날씨 예보를 믿고 오늘은 사람들이 안 온 탓일까. 기다림 1도 없이 일사천리로 정상까지 휘리릭.


청개구리 짓이 먹힐 때도 있네. 정상의 느낌은 말로 못한다. 영상으로 대신 느껴보시라.


정상까지 올라갈 생각은 없었는데 갑자기 날씨가 좋아졌다


산 이름이 왜 '테이블'인지 정확히 알게 되었다


그림일기 #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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