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드시 했어야만 하는 어떤 일을 아무런 이유도 없이 하지 않았을 때, 이미 엎질러진 물을 앞에 두고 너무 어이가 없어 너 뭐하는 애니? 하고 스스로에게 묻고 싶을 때 말이다.
아프리카에 가면 이 나이에 '꽃청춘'처럼 텐트를 짊어지고 사막을 가는 일 따위는 할 수 없을 테니, '사파리 투어'가 있다면 한번 해볼까 했다. 고양이 집사가 되면서 좋아하던 동물원이나 수족관을 가지 않게 된 터라 처음엔 사파리 따위, 했었다
하지만 이곳은 아프리카. 어마 무시한 넓이의 국립공원까진 아니라도 동물들의 자유를 일정 부분 보장해 주며 관광으로 돈을 버는, 일종의 타협안을 가진 민간 사파리 투어가 있었다.
사파리 얘기를 꺼내자 민박집 아주머니께서 케이프타운 일등 투어라는 한 에이전시를 소개해 주셨다. 한국에서 오는 단체 여행객 손님들을 연결해 주다 보니, 투어 가이드를 직접 아신다 했다. 그래서 대신 예약을 부탁했다. 투어의 내용도, 요금도 묻지 않았다.
왜지? 어떤 의식의 흐름이면 이런 기본적인 질문들을 하지 않을 수 있지?
투어 당일인 오늘 아침 6시, 내 숙소 앞으로 픽업을 온다는 가이드 연락을 받고 우버 값 아꼈다고 좋아했다. 멀리 가는 것이니 꼭두새벽 출발쯤이야, 뭐.
이런 식으로 투어 참석자들을 하나씩 태우면서 목적지로 가는 시스템인 거 같은데 내가 첫 번째 픽업 게스트였다. 하지만 문제가 하나 생겼다. 드라이버가 게스트 한 명의 픽업 장소를 착각한 거다.
쉽게 말해 서울에서 나를 비롯한 몇 사람을 태워 부산으로 간다고 치자. 마지막 사람을 대전쯤에서 태우기로 했는데 아무리 기다려도 나타나지 않아 연락을 해보니, 대전이 아닌 수원에서 태웠어야 했던 거다.
그리하여 그 월요일 아침, 출근길 교통체증을 뚫고 거꾸로 올라갔다 다시 출발한 셈이 되었다. 2시간이면 가는 곳을 4시간이 넘게 걸렸다. 일이 꼬이려니. 시작부터 조짐이 이상하다.
날 용서할 수 없었던 진짜 문제는 이제부터.
드디어 도착한 '아퀼라 사파리 앤 스파 리조트'. 차에서 내리자마자 주차장 한편에 멋지게 만들어 놓은 간이 테이블에서 샴페인과 주스를 웰컴 드링크로 준다. 멋진데? 하며 리셉션에 들어서 투어 비용을 지불하려고 했다.
- 비용은 23만원인데 카드 할래 현금할래?
- 응? 나 혼잔데?
- 응, 너 혼자. 1인당 23만원.
두 번을 물었다. (그제사) 알고 보니 아주머니가 신청해 주신 투어는, '원데이 투어 코스'였다. 즉 꼭두새벽에 출발한 이유가 이곳에 도착해 여유롭게 아침식사부터 한 뒤 투어를 시작하기 때문이었다. 투어를 마친 뒤에는 점심 뷔페를 먹고 두 시간가량 자유시간을 가진 뒤 오후 4시경 다시 케이프타운으로 출발하는 그런 코스.
밥 먹는 것에 그닥 열정이 없는 나 같은 사람이, 뷔페라고 해봤자 빵과 샐러드와 과일을 먹는 게 다인 나 같은 사람이, 아침과 점심이 다 포함된 이런 투어를 신청했을 리가. 며칠 간의 여행 경비를 훌쩍 넘기는 비용을, 너무 당연한 '그' 질문을 하지 않은 이유로 이렇게 공중에 날려버리다니. 이런 넋 나간 정신머리를 봤나. 정말 사자 우리 안에서 차에서 내려버릴까 싶었다.
내가 첫 번째 픽업 게스트였으니 내리는 것도 당연히 꼴찌였겠지? 나는 오늘 총 13시간 투어 중 7시간을 도로에서 보냈고 2시간을 사파리 투어에 썼으며 아침&점심 먹는 시간 합쳐도 1시간이 안되니 결국 3시간 넘는 시간은 풀장의 물을 바라보며 멍만 때렸다는 소리다. 이 그지 같은 스케줄에 그 돈을 썼다니.
우리가 떠나려던 4시 즈음에 도착하는 팀도 있는 걸 보니, 분명 반날 투어도 있었다는 소리다. 이런 풀코스 투어는 나 같은 배낭여행자는 하면 안 되는 거다. 함께 간 일행들이 일등석만 타고 다닐 것처럼 보인 중년의 부부와 명품으로 휘감은 중동에서 온 커플, 수수한 차림으로 왔으나 픽업 장소가 특급 호텔이었던 젊은 청년인 걸 보면 '있는 사람들이나 하는 투어'지 싶다.
결국 내가 케이프타운의 물가를 너무 우습게 봤기에 은연중 '해봤자 얼마' 하는 생각을 했던 것 같다. 최고 번화가 한복판의 커피값이 2천원, 일주일 먹을 장을 보는데 2만원이 채 안됐지만 고작 10분을 올라가는 케이블카 티켓이 2만원이 넘을 때 알아봤어야 했다.
이곳은 관광객에겐만 결코 호락호락하지 않은 도시라는 걸.
투어 자체는 나쁘지 않았으나 그 정도 돈 값은 아니었으니
내가 오늘 찾아야 할 동물 리스트
적어도 우리에 갇힌 코끼리를 보진 않아도 되어 좋았다
타조야 너도 우리가 신기하니?
초식동물들과 함께 살아야 하다보니 사자 우리만 별도 울타리로 구분되어 있었다. 덩치 큰 고양이도 가끔은 혀 넣는 걸 잊어먹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