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아프리카 공화국, 케이프타운
어젯밤 야니에게 <조선에 놀러간 고양이> 그림을 선물했다.
여행 다니며 호스트들에게 줄 기념 선물로 들고 온 이 책은 작가가, 조선 시대의 생활상을 그린 그림(한국인이면 아주 익숙할)의 사람 주인공을 고양이로 대체시킨 신박한 책이다. 그림책들이 그렇듯 책 표지가 굉장히 단단한 하드커버로 되어 있어 배낭에 넣어도 절대 구겨질 염려가 없다. 게다가 고양이가 주인공이니 내 여행에 최적화된 선물이랄까.
그림을 고르게 하는 방식은 일단 책 전체를 찬찬히 넘겨볼 수 있도록 한다. 가끔 호스트 중에 책 자체가 선물인 줄 알고 '이른 감사'를 하는 경우가 있는데, 즉시로 감동 파괴. 미안하지만 나 아직 만나야 할 호스트가 많아.
그다음은 자연스레 호스트들의 질문이 따른다. 이건 뭐니? 여긴 어디야? 이게 김치야? 등등. 비엔나에서 만난 질리언처럼 그림 모두가 너무 예뻐서 뭘 골라야 할지 모르겠다고 호들갑을 떨기도 하고 리스본의 크리스티나처럼 색감 하나하나에 집중하며 굉장히 천천히 음미(화가시다 보니)하는 경우도 봤다.
야니는 걸캣과 보이캣을 닮은 고양이들 그림을 특히 좋아했는데 최종적으로 고른 그림은 대장간 그림이다. 왕과 왕비의 그림에서도 눈을 떼지 못하길래, 기까이꺼 하나 더 가져, 했다.
갑자기 야니가 분주해지기 시작했다. 뭘 하나 했더니 액자로 만들어 걸어두겠다고 재료들을 가져와 뚝딱거리더니 금세 액자 2개를 완성시켰다. 그림에 코멘트를 남겨달라는데, 꼭 한글로 적어달래서 약간 머쓱해하며 몇 자 적어주었다.
이렇게 찍은 사진 몇 장을, 책 제목에 해쉬태그를 달고 인스타에 올렸더니 작가인 '아녕'님이 좋아요를 눌렀다. 헉. 본인의 책을 이렇게 찢고 다니는데??
변명이 좀 필요하다고 생각되었다. 이러저러, 여차저차한 사정으로 당신의 책을 '뜯고' 있으니 너무 맘 상하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DM을 보냈다. 그랬더니 예상치도 못하게 작가님에게 바로 답장이 왔다.
이렇게 의도하지 않은 타이밍에 또 하나의 인연이 이어졌다.
저널북을 챙겨 오면서 100일간의 여행이고 100개의 그림을 그리겠다고 했으니 50페이지(25장) 짜리 노트 2권을 가져왔었다. 한 권의 노트가 얼추 채워져 가길래 노트 회사를 믿지 못하고 장수를 세어봤다.
페이지는 50이 맞았지만 내가 첫 페이지 한 장을 건너뛰고 그림을 그리기 시작하면서 총 49페이지가 되어버렸다. 게다가 이제와 보니 암스테르담 도착 날짜를 헷갈리며 일기가 하루씩 밀려 쓰여 있는 게 아닌가. 도대체 왜 그랬을까, 시즌 2.
누가 내 머리 좀 가져다가 세탁기에라도 돌려주세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