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곳이 어디 어디의 끝이기에 일부러 가본다기 보다는, 그런 곳들 대부분이 멋진 경치를 가졌기 때문에 들러보고 싶은 욕심이 생겨서다. 생각해보면 '땅(절벽)의 끝에 바다가 있다'는 풍경은 다 똑같지만 말이다.
하지만 아프리카에서는 '끝이라서' 가보고 싶었다. 대륙의 남쪽 끝, 바다 건너 저기 어디쯤에 남극 대륙이 있는 그곳을 말이다.
관광객들이 가장 많이 이용하는 시티버스를 타고 희망봉으로 향했다. 그냥 버스를 왕복으로 타고 갔다 오는 투어인 줄 알고 별 기대란 게 없었는데 엄연히 가이드가 있었다.
버스 안에서 마이크를 잡은 이 아저씨, 전치사 하나까지 들릴 정도로 또박또박한 발음과 속도로 천천히 '썰'을 푸시는데. 재밌다.
물론 아무리 그렇게 배려심 돋는 영어를 써도 어찌 다 알아듣겠냐만은 (어느 정도의) 정보가 있고 없고는 눈앞의 모든 것을 달리 보이게 만든다.
가는 길에 보이던 '케이프 플랫(평평)'이란 이 웃긴 지명의 유래가 12,000년 전 이곳이 바다 아래 있던 곳이라서 그렇다던가, 향신료라는 걸 알게 된 유럽인들이 기를 쓰고 인도로 가는 루트를 개척하려던 이유가 4천 년간 너무 맛없는 음식만 먹어서 그렇다던가, 터키가 독점하던 이 향신료 시장에 영국과 네덜란드가 뛰어들면서 인도와 동아시아로 가는 루트를 개발하며 케이프타운이 그 거점이 되었다던가, 희망봉이 처음엔 '케이프 오브 스톰'(지구상에서 가장 바람이 심한 곳이라)으로 불리다가 이곳에서 너무 많은 선원들이 죽어나가자 미신을 믿던 포르투갈 왕이 '케이프 오브 굿 호프'라는 이름으로 바꿨다던가, 이곳의 식물들이 척박한 모래땅과 엄청난 바람으로부터 살아남기 위해 수많은 잔가지와 잎사귀들로 서로를 묶어서 지탱하는 생존법을 택했다던가, 하는 정보들.
희망봉으로 가는 내내 이곳의 지리와 역사, 자연사까지 읊어주고 버스 옆으로 지나가는 동물에 대한 설명까지 라이브로 듣고 있자니 2시간이 금방이다.
걸리면 다 털린다는 깡패 원숭이, 바분 무리
그렇게 도착한 아프리카 대륙 최남단의 풍경은 뭐랄까, 이 넓은 땅덩어리의 기개가 느껴졌달까. 뉴질랜드의 레잉가곶도, 오키나와의 헤도곶도, 포르투갈의 호카곶도 다들 어디 어디의 끝이라고 표현하지만 저 바다 건너 어디쯤이 남극대륙이라서일까, 내가 갈 수 있는 땅의 진짜 끝이구나 하는 생각이 훅 와닿는다.
9,635킬로(암스테르담)를 날아왔다가 12,541킬로(뉴욕)를 날아가야 하는구나
청록색이 어떤 색깔인지 명확히 보여주는 희망봉의 바다
물거품이 마치 우유를 쏟은 것 같다
자세히 보면 카메라가 새를 쫓고 있습니다
감개무량
말로 표현 못할 바닷물의 색깔과 힘이 넘치던 파도와 도처에 널린 희한한 생김새의 식물들 때문에 더 감정적이 되었는지도 모르겠다. 살면서 이렇게 식물 사진을 많이 찍어보기도 처음일세. 가이드의 말에 따르면 이 일대에 나무와 덩치 큰 동물들이 살지 못하는 이유가 척박한 땅(대부분이 모래)과 너무 심하게 부는 바람 때문이라고 했는데 직접 그 바람을 맞아보니 무슨 말인지 절실히 알겠다.
거의 땅에 붙어 자라다시피 하는 식물들 모두가 가지도 작고 잎도 작다. 자세히 들여다보니 가지와 잎들이 어디부터가 시작이고 끝일까 싶을 만큼 한데 엉켜있었는데 마치 '이 대열이 무너지면 우린 정말 끝이야'하고 외치는 듯 보였다.절벽으로 난 길을 아슬아슬하게 걸으며 나도 허리 하나쯤 동여맬 동행이 있었음 좋겠다고 생각했다.
신기함을 넘어 경외감까지 갖게 만든 희망봉의 식물들
케이프타운으로 돌아오는 길엔 펭귄 서식지를 돌아봤다. 가이드는 우리가 오늘 운이 좋단다. 지구상에서 날지 못하는 새, 타조와 펭귄을 모두 봤다고. 어허. 나는 두어 달 후에 키위도 보러 갈 건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