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아프리카 공화국, 케이프타운
말로 설명하기 힘든 어떤 감정에, 마음 한켠이 찌르르했던 어젯밤.
내가 만난 호스트들 모두는 저녁을 먹고 나면 일찌감치 자신들의 방으로 사라졌다. 그 시간부터 자는 건지는 잘 모르겠지만 일단 거실에 조차 머물지 않았다. (어쩌면 에어비앤비의 특성상 게스트와의 공용 공간인 거실에서 뭔가를 한다는 게 불편해서 일수도)
이 여행을 하며 일찍 자고 일찍 일어나는, 내 평생 해본 적 없는 바이오리듬에 적응을 하고 나니 크게 힘들이지 않고 나도 그들의 패턴을 따르게 되었었다.
그런데 어젯밤은 달랐다. 함께 저녁밥을 먹고 내 후배 녀석 하나가 식물 씨앗이라면 환장을 한다고 하니 야니 본인이 가진 각종 '아프리카산 씨앗' 한 종류 한 종류를, 이름이 적힌 메모와 함께 일일이 지퍼백에 넣어 포장을 해주고 내가 오후에 사 온 아프리칸 밴드의 CD와 로드니게즈의 앨범 전체를 들으며 그렇게 둘 다 거실에서 밍기적거렸다.
급기야는 야니가 웃긴 영상을 보여주겠다며 거실 TV로 유튜브를 켰다. 자기가 볼 때 SA에서 가장 웃긴 스탠딩 코미디언이라는 '트레버 노아'의 영상을 여러 편 함께 봤다. 그가 말하는, 왜 SA에는 폭탄 테러가 없는지에 대한 상황극은 정말 울면서 봤다. 궁금한 사람은 유튜브로 한번 보시라. https://youtu.be/yhStB5KIP9w
나의 밍기적,은 아침까지도 이어졌다. 마지막으로 테이블 마운틴에게 인사를 하고 도대체 보이캣은 집이 아닌 어디서 그렇게 공사가 다망하신지 한번 쫓아나가 봤으나 빌라 복도의 난간을 타고 휘리릭 사라져 버렸다. 흥칫뿡이다 이놈아. 대신 웬 일로 현관문 밖까지 나온 걸캣은 복도에 놓인 화분의 식물들을 좀 드시더니 다시 들어가 버렸다.
야니는 아침부터 분주했다. 이 빌라에는 야니 커플이 관리하는 에어비앤비가 몇 개 더 있었는데 내일 새로운 게스트가 온다고, 그중 하나의 스튜디오를 환기시키고 가볍게 청소를 하고 있었다. 이런 야니의 뒤를 졸졸 따라다니며 사진을 찍다 보니, 이젠 정말 떠나야 할 시간이다.
외출했다 돌아오면 늘 무엇을 꽂아야 하는지 헷갈리던 수많은 열쇠 꾸러미를 반납하고, 배낭을 몸에 맞춰 매고, 계단을 내려와, 마지막으로 배웅 나온 야니를 꼭 안았다. 눈이, 마음이, 찌르르했다. 둘 다 코를 훌쩍거렸지만 결국엔 웃었다.
내가 이곳을, 아프리카를 언제 다시 와보겠냐 싶던 마음이 그녀 때문이라도 꼭 다시 한번 오리라 다짐하게 됐다. 그땐 꼭 한 달은 살아봐야지.
자, 이제 이번 여행 중 가장 긴 시간이자, 가장 우려스러운 비행이 시작된다. 케냐 항공을 타고, 잠비아의 리빙스턴을 거쳐 케냐의 나이로비를 다시 경유하여 뉴욕까지 가는, 장장 22시간의 최장거리 비행.
체크인 카운터에서 그라운드 스태프의 동작 하나, 비표 한 줄까지 꼼꼼하게 보며 확인에 또 확인을 했다. 사람은 경유지인 나이로비에서 새롭게 체크인을 해야 하는데, 내 배낭은 한방에 뉴욕까지 간다니. 못 믿어, 못 믿어. 여행 다닐 때마다 나의 짐 분실 사고는 한두 번의 이벤트가 아니니깐.
꼭 다시 만나자, 란 얘기를 야니뿐만 아니라 내 배낭에게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