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43] 아몰랑 폴더의 부작용

미국, 뉴욕

by 므스므

뉴욕에서 '하고 싶은 것' 목록 중 첫 번째로 꼽았던 건 브로드웨이 뮤지컬 <라이언 킹> 보기였다.


근데 예매를 안 했다. 한국에서부터 싼 티켓 찾아 삼만리를 하긴 했다. 하도 경우의 수가 많길래 또 아몰랑 폴더에 넣어버리고 잊은 것이다.


아침부터 좌석을 찾아 헤맸지만 모조리 솔드 아웃이다. 우리나라 네티즌들을 믿어줬어야 했다. 여기 오면 뭔가 방법이 더 있을 줄 알았다. 왜 그렇게 생각했냐고? 그게 아몰랑 폴더의 기능 방식이니깐.


현지에 와서도 이렇게 네이버 검색이나 하고 있을 줄 알았으면 하라는 대로 얌전히 예매를 했어야 했다. 할 수 없이 어젯밤 여행사 사이트를 뒤지다 케이프타운의 사파리 투어에 버금가는 금액으로(그리고 보니 라이언 킹도 일종의 사파리네??) 구매 가능한 곳이 있어 눈 딱 감고 예약을 넣었다.


그런데 아침에 문자를 받았다. 극장 측에서 매진 처리를 늦게 해 줘 이제야 알린다며 내 표는 취소되었단다. 아니 이런 뭣.... 상황이 이리되고 보니 라스베이거스에서 할 일 첫 번째로 꼽았던 '르레브' 공연도 걱정이 되어, 한 달이나 넘게 남았지만 앞뒤 재지 않고 예매를 해버렸다. 꼭 이런 식이지...


그러면 라이언 킹은 이대로 포기를 할 것이냐, 좌석이 나올 때까지 매일매일 좌절을 맛볼 것이냐. 이럴 땐 뭐다? 아몰랑 폴더에 구겨 넣기. 습관은 어디 안 간다.


IMG_2521.HEIC 아침에 베베가 골라줬다. 오늘은 여길 가




전철을 타기 위해 길을 나서며 일단 동네 한 바퀴를 천천히 돌았다. 거리를 다니는 주민들의 생김새와 가게들의 이름을 보니 이곳은 남미에서 온 이민자들의 동네란 걸 한눈에 알겠다. 아침에 잠깐 부엌에서 마주친 다니엘의 부모님도 브라질에서 이민을 왔다고 했다.


워킹맘인 다니엘 대신 아기 마키엘라의 밥과 기저귀와 잠은 할아버지가, 식구들의 식사는 할머니 몫이란다. 아기는 영성체를 앞두고 있고(거의 신생아란 얘기) 강아지 한 마리는 전남편이 버리고 간 것, 이라는 걸 보니 이혼한 지 얼마 되지 않은 것 같다. 한국이든 여기든 싱글맘이자 워킹맘의 생활은 고단할 수밖에 없나 보다. 부모님의 이런 도움과 그리고 에어비앤비 덕에 경제적 문제를 해결하고 있을 테니.


할로윈.png 온 동네가 할로윈 데코레이션으로 정신이 없다


어쨌든 맨해튼으로 건너는 왔고 오늘의 목표는 딱 두 가지. 구겐하임과 센트럴 파크. 사실 구겐하임보다는 모마가 더 관심의 대상이었는데 내가 떠나는 날까지 임시휴업이란다. 이런 걸 운명이라 하는 거지. 모마는 포기해야 하는 운명.


여행을 다니며 사진으로만, 텍스트로만 보던 어떤 것들을 '직접' 눈으로 본다는 사실은 늘 경이롭다. 비엔나의 에곤 실레 전시가 그랬고 암스테르담의 고흐 박물관이 그랬다. 미술에 대한 지식 한 톨 없지만 살면서 너무 익숙하게 알고 있는 정보들이니깐.


구겐하임도 그랬다. 현대 미술은 나에겐 너무 어려워서 전시 자체보다는 건물을 둘러보고 감탄하고 그렇게 하는 구경. 내가 뉴욕에 와 있다는 사실이 아직 믿기지 않는다.


구겐하임.png 건축물을 이렇게 지을 수도 있구나 @구겐하임


분명 맨 윗층까지 걸어올라 가는건데 그걸 못 느끼게 만드는 구조라니 @구겐하임


구겐3.png 현대 미술은 어렵다 1 @구겐하임


구겐2.png 현대 미술은 어렵다 2 @구겐하임



센트럴 파크를 와보고 싶었던 건 <CSI:뉴욕> 때문이라지


그림43.jpg 그림일기 #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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