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제들 출장을 다닐 때 실험을 해 본 적이 있다. 서쪽으로 날아갔을 때(칸, 밀라노 등등)와 동쪽으로 날아갔을 때(LA, 토론토 등등), 도착지에서 언제가 더 피곤한지. 내 경우는 확실히 서쪽으로 이동할 때 피곤이 덜했다. 그래서 이번 여행의 방향도 동에서 서로 움직이고 있다.
이건 내 꿀팁이기도 한데, 장거리 비행을 해야 할 때는 보통 전 날 밤을 꼴딱 새운다. 짐 싸기를 미루고 미루다 전날에야 싸거나 묵혀둔 집 청소를 하거나 냉장고 정리를 하면서 무튼 잠을 자지 않고 바쁘게 버틴다. 그러면 비행기 안에서 기내식을 먹으라고 깨우는 게 귀찮을 만큼, 곯아떨어져 자게 된다. (이코노미석에서도 편하게 자는 꿀팁이 하나 더 있는데 이건 차차)
도착을 밤에 했다면 12~3시간을 날아왔으니 호텔에 도착하는 순간 바로 침대와 한 몸이 될 것이고 만약 도착 시간이 낮이라면 밤이 될 때까지 버텨만 주면, 다음 날부터 거의 100% 그 지역 시차에 적응할 수 있다.
그래서일까. 대륙을 넘나들며 대서양을 가로질러 왔는데도 해가 뜨면 일어나고 해가 지면 잔다. 참으로 기특한 몸뚱이다.
그런데 어젯밤 새벽 4시경 잠깐 깼는데 친구 J에게서 카톡이 와있었다. 한참 수다를 떨다 보니 잠이 완전히 달아나버려 이렇게 된 거 미친척하고 '라이언 킹' 공식 티켓 판매처에 들어가 봤다. 세상에나.
사이트가 미쳤나. 체크하는 구역마다 좌석이 있다. 심지어 여행사가 준 것과 비슷한 위치의 좌석임에도 더 싸다!! 전광석화로 예매 완료. 드디어 나는 오늘 '심바'를 만난다. 역시 인생은, 하쿠나 마타타.
오전의 막간(!)을 이용한 자연사 박물관 탐방. 또 혼자 신나게 놀았다.
볼 게 너무 많아서 정말 신이 났다 @미국 자연사 박물관
모든 게 큼직한 미국 @미국 자연사 박물관
기후 위기에 대한 현 상황을 보여주는 대형 스크린 @미국 자연사 박물관
공연 관람 전, 극장 건너편 맥도널드에 앉아 마음의 준비를 하는데 라인 광고가 떡
드디어, 마침내, 진짜로!
마지막을 멋지게 장식해 준 드러머
공연은 음악의, 노래의, 춤의, 연출의, 미술의 천재들이 모이면 이런 결과물이 나오는구나 싶었다. 공연 내내 가슴이 저릿해지는 감동 한 바가지가 휘몰아치고, 가만히 있어도 저절로 웃음이 나는 신기한 경험. 이곳에 앉아있다는 사실 자체가 너무 벅찼다.
1부가 끝나고 인터미션이 시작되는데 바로 내 옆자리에 앉은 한국인 커플의 대화를 엿듣고 말았다.
- 아니 이게 끝이야? 이제 애가 어른이 됐는데? - 그러게 - 오빠, 라이언 킹 봤어? - 응, 옛날에 비디오로 봤지. 그리고 일요일마다 TV에서 했잖아
여보세요, 그건 <밀림의 왕자 레오> 고요...
공연이 끝나고 밖으로 나오는 순간 또 한 번의 시각적 충격. 눈앞에 쏟아지는 타임스퀘어 광고판들의 믿을 수없는 빛들에, 비가 오는데도 불구하고 길거리에 한참을 서있었다. 오늘 갔던 자연사 박물관에서 지구 온난화 이야기를 하며 우주에서 찍은 지구의 밤 모습이 있던데 그 주범이 박물관 코 앞에 자리 잡고 있는 아이러니라니. 그래도 이쁜 건 어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