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42] (2) 공항에 셀프 감금중

미국, 뉴욕

by 므스므

뉴욕의 에어비앤비 호스트는, 얼리 체크인을 하려면 하루치 숙박비의 90%를 내라 했다.


워낙 싼 숙소라 그리 큰 금액은 아니지만 그래도 하루치 숙박비에 버금가는 돈이니, 제대로 체크인 시간에 맞춰 도착하기로 결정했다. 만약 짐만 먼저 떨구고 싶으면 10달러를 내라는데 이 역시 썩 기분이 좋진 않았다. 뭐가 이리 깐깐해.


그래서 JFK는 아주아주 유명한 공항이니깐 볼 것도, 할 것도 많을 거라 생각하고 카트 이용료 6달러까지 결제하며 신이 났었다. 평소 공항 (놀러) 가는 걸 좋아했기에 이 세계적인 공항도 인천공항 못지않을 거라 생각한 이 모지리를 우얄꼬...


공항을 구경하다 지치면 심카드도 사서 끼우고 홍보책자들 긁어모아 공부도 좀 해보겠다는 야심 찬 계획은, 휑하디 휑한 공항 내부를 둘러보는 순간 와르르 무너지고 말았다. 뭔가 이상했다. 아침 7시였으니 사람들로 북적대지 않은 건 그럴 수 있다지만 조명도 어둡고 문을 닫은 상점들도 많았다.


그래, 내가 도착한 터미널이 제일 작은 규모인가 보다, 다른 터미널로 넘어가면 괜찮을 거야. 카트를 끌고 에어트레인을 타고 다음 터미널로 넘어갔다. 응, 여기도 똑같아.


에어트레인을 타고 다음 터미널로 건너갈 때만 해도 신이 났었지


그래, 일단 밥이라도 먹고 나면 뭔가 다른 계획이 세워질 거야. 맛이라곤 1도 없는 중국식 볶음밥과 커피에 15달러를 지불하고 나니, 이럴 줄 알았으면 짐 보관료 10달러 내고 숙소로 갈 것을. 도대체 왜 그랬을까 시즌 3을 찍으며 뉴욕 도착 6시간째 여전히 JFK 공항.


심카드라도 사볼까 했더니 100달러를 내란다. 응, 안 사.


카트.png 짐 보관료 아껴보겠다고 공항에서 놀더니, 결국 2배가 넘는 금액을 쓴 나는 세상 모지리


그리하여 결국 내가 JFK 공항을 벗어나 향한 곳은... 숙소 근처 라과디아 공항. 이게 무슨 일이냐 하면. 숙소까지 우버를 타면 30달러가 넘게 나오는데 라과디아 공항까지는 익스프레스 버스를 타면 17달러면 되길래 놀더라도 거기서 놀자 싶었다. (이런 배신을 당하고도 또 공항을 찾아가 놀겠다는 내 의식의 흐름을 나도 모르겠다)


뉴욕에 도착해 가장 먼저 하고 있는 일이 미국 공항 도장깨기라니.


라과디아 공항은 한국으로 치면 김포공항 같은 곳으로, 대부분 국내선이 운항하는 곳이다. 땅덩어리가 이리 넓은 곳이니 국내선이 훨씬 활성화가 되어 공항은 정말 많은 사람들로 북적대고 있었다. 하지만 뭔 공항 안에 의자가 없다. 결국 푸드코트에 앉아 애플 사이다를 시켜놓고 그림 몇 개 그리다 일어났다. 나 좀 많이 제정신이 아닌 거 같다. 뻘짓도 이 정도면 재능이다.




심카드가 없으니 공항 와이파이로 겨우 우버를 잡아 타고 숙소까지 왔는데, 차에서 내리자마자 내 앞으로 쏜살같이 달려오는 고양이 한 마리. 마구마구 아는 척을 하길래 길냥이 치고 개냥이네 하다 목걸이를 발견하고 수상하다 싶었는데 역시. 호스트와 인사를 나누는데 어느새 집안에 들어와 있다.


베베의 환영인사


슈퍼에 잠깐 들렀다 오는 길에 다시 숙소 현관 앞에서 마주친 검은 고양이 한 마리. 아니나 다를까. 이 집 고양이 두 마리 베베와 샘슨은 그냥 온 동네 주민들이 함께 키우다시피 하는, 심하게 넉살이 좋은 애들이었다. 게다가 이 집엔 강아지 3마리도 있다.


샘슨도 환영인사


호스트인 다니엘의 숙소 소개글을 보면 No와 Not이 유난히 많았다. 안되고, 하지 말라는 게 뭐가 그리 많은지. 대부분 상식선의 것들인데 누구는 상식이기 때문에 소개글에 아예 적지 않는 것을, 상식마저 없는 사람은 내 집에 들이지 않겠다는 그녀의 철저함(또는 까칠함)이 엿보여서 긴장을 많이 했었다.


사진으로만 본 방도, 뉴욕에서 이 정도 금액으로는 감지덕지해야지 하던 터라 기대조차 없었다. 다만 이 와중에 이 집과 호스트에 대한 차고 넘치는 좋은 후기가 좀 어리둥절하던 차였다. 직접 만난 다니엘은 선하고 활기찬 인상의 아기 엄마로 아주 연로하신 부모님과 함께 살다 보니 그런 '상식적인' 약속이 반드시 필요해 보였다.


드디어, 뉴욕이다.


IMG_2499.HEIC 다니엘의 깔끔한 성격이 엿보이는 내 방


그림42.jpg 그림일기 #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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